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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걸 2

교열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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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00g | 128*188*20mm
ISBN13 9788950971236
ISBN10 895097123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동기 에쓰코는 직장 여성 잡지 《라시》의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근성을 발휘해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 동기인 후지이와 역시 문학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열정을 품고 출판업계에 들어왔다. 나는 해외로 나갈 수 없었으니까, 일본에 남은 친구들이 모두 매스컴 관련 업종에 종사하니까 나도 그냥 따라서 들어왔다. 혹시 예전에 신세를 졌던 편집자가 아직 남아 있다면 일하기 편하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입사시험을 쳤는데, 정말로 그 편집자에게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 편집자가 부편집장으로 있는 잡지에 배속되었다. 그게 《C.C》였다.
다음날 콘티 회의 때 3월호에 배정된 기획의 콘티를 편집장과 부편집장에게 제출하고 세세한 지적을 받았다. 패션업계에서 2월은 옷이 제일 안 팔리는 시기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독자들에게 지름신을 내릴 것인가, 구매 욕구를 부추기는 코너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각 기획마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발끝부터 활기찬 봄을 맞이하자!’와 ‘겨울 끝자락에 싹트는 귀여운 봄 네일♡’이라는 기획을 담당했다. 둘 다 내가 내놓은 기획안은 아니지만 우리 편집부에서는 기획안을 낸 사람이 꼭 그 기획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번 기획은 메인 특집이 아니라서 필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코너를 전부 꾸며야 한다.
수정해야 할 점을 지적받은 콘티를 돌려받았다. 어쩐지 바로 손댈 기분이 들지 않아 《라시》 편집부와 우리 편집부를 가로막은 캐비닛(모든 발행처의 패션 잡지가 전부 자료로 수납되어 있다)에서 《앙 주르》 이번 달호를 꺼내 와서 내 자리에 앉아 팔락팔락 넘겨보았다.
“저어, 모리오 씨. 우리 회사로 오지 않을래요?”
어제 헤어질 때 야쓰루기 씨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어째서요? 야쓰루기 씨, 내가 맡은 코너를 본 적도 없으시잖아요.”
나는 ‘제가’라고 낮추어 말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물어보았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에디터가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은 얼굴도 예쁘니까 어디에 내놔도 통할 거고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경범사에 들어갈 거였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 회사에 오지 그랬어요?”
야쓰루기 씨는 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경범사에 입사했다’고 했다. 왜 경범사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내 마음을 꿰뚫어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도 보람차고 재미있는걸요.”
“프랑스어와 영어를 할 줄 알고, 어릴 적부터 패션 쪽 경험을 쌓았죠. 당신의 그런 실력을 해외 컬렉션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일반 잡지에서 정말로 살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는 수 없지만.”
일반 잡지. 고급 모드 잡지 편집자가 자신들의 매체와 구분하기 위해 그런 말을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처음 듣는 건 처음이었다. 경멸이 살짝 담긴 그 어조가 가시처럼 마음에 탁 걸렸다.
---「제1화. 모리오·교열걸 주변의 걸」중에서


실은 문학 편집자가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고, 앞으로도 회사에서 그러한 꿈을 밝힐 생각은 없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예전에 소녀 소설을 썼던 작가 시조 마리에에게 심취했던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뒤 마리에 님에게 내 꿈을 의탁했다. 내 손으로 마리에 님에게 무슨 상이라도 안겨주겠다는 포부를 품고 편집자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을 식사 시간에 가족에게 이야기하자 형은 나중에 개인적으로 말렸다.
“미쓰오, 너 게이지?”
대학교 3학년이 되어 개강했을 무렵이었다. 형이 방으로 불러서 말했다. 딱히 숨기지도 않았으니 들켜도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그것도 가족이 물어볼 줄은 몰랐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마 그쪽에 가까울 거야.”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공룡이나 고대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언젠가 멸망의 길을 걷는다면, 즉 번식을 도외시한다면 성별을 꼭 남녀로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러한 구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마음은 변함없다.
“네 모습과 말과 행동을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널 게이라고 추측할 거야. 넌 그런 생각을 부정하지도 않겠지.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면 편집자가 되어도 상관없겠지만 감출 생각은 없을 테고.”
“왜 감춰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럼 분명 마음 아픈 일을 당할 거다. 네가 얼마나 착한 녀석인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해. 자신의 책임이 아닌 악의와 싸워서 이길 만큼 넌 강하지 않잖아.”
형은 그때 이미 사회인이었다. 이공계 대학을 나와서 의료 계열 연구직에 취직했으므로 문과와는 인연이 없을 텐데도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제약 회사의 의학 정보 담당자가 교수를 접대할 때 데려가는 긴자의 룸살롱에 편집자와 작가도 온다고 했다. 작가는 싫은 티를 낼 수 없는 젊은 여자 편집자를 옆에 앉혀서 가슴을 주무르고(가게 호스티스에게는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 그런 실례를 저지르지 않는다나) 남자 편집자에게는 팬티 한 장만 입고 엎드려서 접시에 담긴 술을 핥아 먹게 한다. 하룻밤에 100만 엔을 써서 접대해도 이득인 소중한 ‘작가 선생님’이 편집자를 노예처럼 부리는 광란의 현장은 세상의 온갖 어두운 면을 본 의학부 교수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준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담당하고 싶은 마음은 모르지 않아. 하지만 직업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어. 너, 사람과 직접 만나는 일을 하면 분명 괴롭힘을 당할 거야. 특히 이 나라에는 주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도마 위에 올려서 웃음거리로 삼아도 된다는 인식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어. 만약 그런 문화가 뿌리 뽑혔다면 괴롭힘당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비극은 한참 전에 사라졌겠지. 아무리 일이라지만 그런 취급을 견딜 수 있겠어?”
그때는 조금 울컥해서 견딜 수 있다고 대답했다. 우수하고 언제 어느 때든 모범적인 형에게 작은 반발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고심해보고 역시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별다른 차별을 당하지 않은 것은 분명 기적이겠지. 학교라는 제한된 세상 밖으로 나가면 지금까지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다음날 옛날에 문영사 《로빈》 편집자에게 받은 낡은 엽서를 서랍 속 보물 상자에서 꺼내서 형에게 보여주러 갔다.
“형, 이거 봐. 교열이란 게 정말로 나한테 잘 맞을까?”
형은 낡은 엽서를 받아들고 읽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 교열이라면 괜찮겠네.”
“어떻게 알아?”
“나도 논문 쓸 때 신세를 지거든. 그쪽은 의학 분야가 전문인 프리랜서 교열자이지만. 교열자는 기본적으로 메일만 주고받을 뿐 저자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야.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렇게 말하고 형은 통근 가방에서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게 교열자가 지적한 부분, 하고 연필과 빨간 펜으로 쓴 글씨를 보여주었다.
“형은 진짜 모르는 게 없구나.”
“너보다는 형이니까.”
“있지, 안 힘들어? 형은 반항기도 없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아왔잖아. 힘들지 않아?”
내내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자 형은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난 깔려 있는 레일 위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나아가는 걸 좋아하거든. 게임도 공략본대로 진행하면 틀림없이 높은 점수를 얻고 끝판도 깰 수 있잖아. 그거랑 똑같아.”
“이상해.”
“넌 레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유형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부러워.”
“비꼬는 거야?”
“아니, 진심이야. 넌 나 대신 레일 밖으로 나가서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와.”
---「요네오카·교열걸 주변의 걸인지 보이인지?」중에서


“응, 굉장해. 이렇게 아름다운 논문은 역시 구우 땅밖에 못 써.”
태블릿에서 고개를 들자 구우 땅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우는가 싶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만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리온 땅이 나한테 대단하다고 말해준 거, 여덟 달 만이야.”
“그랬나? 그나저나 그걸 헤아리고 있었어?”
“그래, 계속 불안했으니까.”
“……미안해.”
스스로도 왜 사과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사과했다.
구우 땅이 손바닥을 얼굴에서 떼자 안경에는 지문이 잔뜩 찍혀 있었다. 더러워진 렌즈 너머로 보이는 조그마한 눈이 강아지처럼 동그래서 가슴이 뭉클했다. 아아, 난 역시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리온 땅,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변했어. 내가 아는 리온 땅이 아닌 것 같아.”
“리온 땅은 리온 땅인데?”
“내가 아무리 애써도 못 데려가는 비싼 밥집에 갔잖아. 내가 아무리 애써도 묵을 수 없는 호텔의 파티에도 갔었고. 처음에는 나 같은 게 가도 되느냐고 걱정했으면서 점점 익숙해졌는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제 질렸으니까 긴자 말고 다른 데서 밥을 먹고 싶다고 했어. 그런 리온 땅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
확실히 구우 땅 말이 맞기는 맞다. 머릿속으로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도를 정리하고 나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가슴이 빵빵하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멋쟁이 여자한테 한눈을 판 거야?”
5초쯤 후에 구우 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말이라고 해!”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츠린 구우 땅보다 소리 지른 내가 더 놀랐다.
“나는 직장인이야. 출판사에서 작가 선생님을 상대로 일을 한다고. 구우 땅이 비싼 밥을 사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파티가 열리는 호텔에 구우 땅이랑 같이 가고 싶었던 적도 없어. 난 그저 구우 땅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행복해. 구우 땅이 논문을 써준다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내가 멀리 갔다고 멋대로 착각하지 마. 그건 구우 땅의 망상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가슴은 만들 수 있어! 그 여자 가슴도 뽕일지 몰라!”
내가 마구 쏘아붙이자 구우 땅이 바로 되받아쳤다.
“나는 그 일이라는 것도 너무 상스러워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출판사는 문학을 엉망으로 만들어. 리온 땅이 그런 짓을 돕고 있다니 난 용서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도 그대를 들여다보니,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전통 예능인 가부키랑 노도 원래는 대중오락이었어! 클래식 음악도 처음에는 궁정 사교 모임을 위해 만들어진 거고! 어쩌면 100년 후에는 산다이메우오타케 하마다시게오(1963년 효고 현에서 출생한 시인이자 음악가 - 옮긴이)가 니체 뺨치는 대접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내 직업을 부정하지 마! 구우 땅도 나도, 다른 길에서 저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 받아들이라고!”
“산다이메우오타케 하마다시게오랑 니체는 애당초 분야가 달라!”
“나도 다 알고 한 말이거든!”
---「제3화. 후지이와·교열걸 주변의 걸이랄까 우먼이랄까」중에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밑반찬인 숙주나물도 볶는다. 철판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비싼 고기를 굽고는 그 위에 숙주나물을 얹는 거냐!”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안심은 100그램에 대강 만 오천 엔. 숙주나물은 한 봉지에 30엔. 가격 차이가 장난 아니네.
(철) “나는 목숨 걸고 고귀한 고기님을 굽고 있어. 여기는 너같이 비천한 숙주나물이 함부로 올라오면 안 되는 곳이야. 썩 꺼져!”
(숙) “앗, 죄송해요, 철판 씨. 아앙, 뜨거워.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철) “멍청한 것, 그렇게 빨리 수분을 배출하다니! 이제 흐늘흐늘해지겠군!”
(숙) “하지만 철판 씨가 뜨겁게 달구니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철) “그러니까 너처럼 가냘픈 채소 나부랭이가 함부로 올라오면 안 된다고 한 거다! 종업원! 빨리 숙주나물을 접시에 옮겨라!”
(숙) “철판 씨…… 값싼 숙주나물이지만 잠깐이나마 당신에게 볶아져서 행복했어요…… 안녕…….”
(나) “수, 숙주나~물!”
“가이즈카 군, 표고버섯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
“아, 네, 드세요.”

옆자리에 앉은 명단사의 우라베 마사미가 젓가락으로 내 그릇에서 둥글납작한 표고버섯을 집어서 가져갔다. 종업원이 철판 근처에 있던 빈 접시에 김이 피어오르는 숙주나물 볶음을 담아주었다. 숙주나물…… 이런 꼴이 되다니…….
출판업계 문학 분야에는 ‘대기 모임’이라는 이벤트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교열걸1』 제2화를 읽어보면 알 테니 생략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행사가 너무 싫다. 아니, 물론 내가 담당한 작가가 상을 받으면 참으로 기쁘다. 하지만 상을 받지 못하면 작가를 달래고 보듬어주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귀찮은지 모른다.
보통 유서 깊은 문학 출판사에서는 작가 한 사람당 잡지, 단행본, 문고 이렇게 세 명의 담당자를 붙인다. 그러나 경범사 같은 ‘문학 분야의 신참’ 출판사에서는 편집자 한 명이 그 세 역할을 도맡을 때가 많다. 낙선한 작가들이 인간의 존엄성은 개나 주고 왔다는 듯이 마구 날뛰거나 침울해져서 술을 왕창 마시고 토하거나 인사불성이 되더라도, 대형 출판사라면 쓴웃음을 금하지 못할지언정 셋이서 나누어 뒷감당할 수 있다. 경범사에서는 나 혼자다. 작가님들, 나도 죽을 맛입니다.
오늘은 동충하초사가 주최하는 이소로쿠 상의 심사회가 열리는 날이다. 심사는 엄청난 파란을 겪고 있는지 밤 열 시 반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후보자는 여섯 명, 그중 한 명은 내가 담당하는 작가다. 후보작은 경범사가 아니라 인조사에서 출판됐지만, 자사 책이 아니라도 작가의 담당 편집자는 대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관례다. 오후 다섯 시부터 이례적으로 다섯 시간 반이나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조사가 예약한 호텔의 철판구이 집 객실에서 서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대화를 나누며 발표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쳤을 무렵에 동충하초사 담당자가 전화로 낙선을 통보했다. 방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아, 지옥 같은 하룻밤의 시작이로구나.
요 몇 년간 난 지금 뭘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현재 스물여덟 살, 내년에 스물아홉 살. 매스컴 말고 제조나 유통, 소매 분야에 취직한 친구들은 조그마한 직함을 달기 시작하는 나이다.
오전 일곱 시 반에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후줄근해진 양복과 셔츠, 양말을 뱀이 허물을 벗듯이 차례대로 벗어던지며 세면실로 가서 가볍게 샤워를 했다. 두 시간 정도는 잘 수 있겠지.
이번에 낙선한 미야모토 사이코는 이번까지 합치면 이미 네 번이나 이소로쿠 상 후보에 올랐다. 데뷔한 지 26년, 현재 마흔아홉 살이다. 경범사에서 내내 그녀를 담당해온 베테랑 남자 편집자가 작가 말고 자기 애인(긴자의 호스티스)을 위해 회사 경비를 썼다는 사실을 사장에게 들켜버렸다. 뭐, 경범사에서는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지만 유용한 돈이 4,000만 엔도 넘었기 때문에 묵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제의 장본인은 관련 회사로 전출되었고 내가 미야모토를 담당하게 되었다. 담당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원고는 아직 단행본으로 낼 만큼 모이지 않았다. 미야모토의 데뷔작이 나온 출판사는 명단사다.
“당신들이 처음에 좀 더 제대로 교육해줬으면 지금쯤 나도 이소로쿠 상 정도는 받았을 거야!”
철판구이 집 다음으로 이동한 노래방의 큰 방에서 단행본 담당 우라베 마사미를 비롯한 명단사 담당자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다른 출판사 편집자들은 벽에 찰싹 붙어 서서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쓰치다! 뭘 실실대고 있어!”
내 옆에서 인조사의 단행본 담당자인 쓰치다 이치코가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번 후보작을 만든 편집자다.
“이거 전부 당신 탓인 거 알지? 이번에야말로 상 좀 타보자고 내가 그랬잖아! 심사위원 영감탱이들에게 무릎 꿇고 부탁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겠지?”
---「제4화. 가이즈카·교열걸 주변의 회사원」중에서


편집자로 현역에 있었을 때 아오이 씨에게 셀 수 없이 자주 호출당했다. 한밤중이든 이른 아침이든 30분 안에 안 오면 죽겠다고 협박하니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해해서 이마나 정강이가 깨졌을 때는 상처를 치료하고, 마구 날뛸 때는 방을 청소하고,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겠다면서 울 때는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어야 했다. 휴대전화는 인간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자유 시간을 빼앗아갔다.
“내 전화만 받아. 내 원고를 받고 싶으면 나만 담당해.”
아오이 씨가 그렇게 말하며 망가뜨린 휴대전화만 스물여덟 대다. 결국은 경비로 처리할 수가 없어서 자비로 휴대전화를 바꾸어야 했다.
“이제 사쿠라가와 아오이하고는 손을 끊어도 돼.” 휴대전화가 스물여덟 대 망가졌을 때 부장은 그렇게 말했다. 이미 아오이 씨를 담당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나는 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불규칙한 생활과 극도의 수면 부족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피도 몇 번이나 토했다. 그런데도 단편 원고 하나 받지 못했다. 내게 주겠다며 쓴 200매짜리 원고는 어째서인지 인조사에 넘겼다.
“그 원고를 넘기면 더 이상 쇼온이 날 만나러 안 올 거니까.”
그래서 인조사에 넘겼다고 한다.
“아닙니다,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돌려달라고 하세요. 부탁입니다. 인쇄소에 넘기지 않았다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쟁이, 편집자는 다들 내 원고밖에 관심이 없어. 쇼온도 마찬가지야.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원고만 탐낼 뿐이잖아.”
“거짓말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믿어주시겠어요?”
“그럼 지금 여기서 나랑 같이 죽자. 쇼온이 먼저 죽어. 나도 뒤따라갈게.”
그때 우리는 조그마한 보트를 빌려 타고 이나와시로코 호수의 중간쯤에 나와 있었다. 인조사에 원고를 넘겼다는 사실을 다른 출판사 편집자를 통해서 듣고 급히 전화했더니 원고를 받고 싶으면 후쿠시마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겠다느니 죽으라느니 했지만, 설마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죽으라고 할 줄은 몰랐다. 아오이 씨는 흔들리는 보트에 서서 내 머플러를 난폭하게 잡아당겼다.
“어차피 쇼온도 날 위하는 척할 뿐이잖아.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당신이 먼저 전화한 적 있어? 그런데 인조사에 원고를 넘겼더니 바로 전화가 오네. 결국 원고가 먼저다 그거지? 원고를 넘기면 그걸로 끝이야, 난 없어도 그만이잖아! 난 도대체 뭐야, 뭘 위해서 사는 건데?”
보트가 기울어지자 얼음장같이 차가운 늦가을 호수 물이 손등과 뺨에 튀었다.
분명 작가는 편집자에게 원고를 만들어내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원고를 돈으로 바꾸어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정말로 오직 돈 때문에 이렇게 죽도록 고생하는 걸까. 과연 피를 토하면서까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돈 때문일까.
……아니다. 돈 때문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나는 노를 놓고 아오이 씨의 가늘고 싸늘한 손목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같이 죽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머플러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하지만 여기는 싫습니다. 익사체는 너무 추해요. 아오이 씨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등지면 좋겠어요. 그러니 일단 뭍으로 돌아가죠. 근처에 방을 잡겠습니다.”
아오이 씨는 입술을 꼭 깨물더니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병실에서 아오이 씨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시들지 않는 꽃을 창가에 놓고 속이 비칠 듯이 창백한, 꽃잎을 닮은 아오이 씨의 눈꺼풀을 살짝 어루만졌다. 손길에 반응하여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아오이 씨의 긴 속눈썹이 내 귓불을 간질였던 기억이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되살아났다.
그날 해가 호수로 내려앉으며 남기고 간 포도색 저녁 안개에 감싸인 방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육체관계는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파멸과 지옥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다. 나는 3년 반 동안 아오이 씨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송두리째. 그래서 그동안 함께 자는 걸 거부해왔던 것이다. 같이 자면 ‘작가와 편집자’라는 우리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원고를 넘기면 끝’이라고 믿었던 아오이 씨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아주 작아. 글을 쓰면 그만큼 더 작아져.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나는 없어질 거야. 결국 죽고 말겠지.”
그러니까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고, 너의 피와 살을 모두 바쳐라.
아오이 씨는 애정과 먹을 것에 굶주린 어린아이처럼 몇 번 몸을 섞어도 만족할 줄 몰랐다. 우리는 막다른 길에 몰려 절망에 신음하던 밤을 지나 개벽하듯 펼쳐지는 주홍색 아침노을을 맞이했다. 이 가녀린 몸 어디에 그만한 정욕을 받아들일 그릇이 있는지 신기했다.
우리는 그로부터 1년 동안 관계를 유지했고 아오이 씨는 그동안 뭔가에 씐 듯한 기세로 원고지 1,200매짜리 대작을 써냈다. 비교를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교열걸1』은 원고지로 환산해 257매다. 이렇게 쉽게 써낼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잘걸 그랬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던 것은 비밀이다. 경범사에서 출판된 『눈을 가리고 보는 저 끝』은 그때까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던 아오이 씨의 반생에 얽힌 이야기로, 자전적인 소설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중에는 마음의 병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다들 원해서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거나 뇌 속의 특정한 호르몬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아오이 씨도 그런 사람이었겠지.
소설에는 주인공이 여덟 살 때부터 스물세 살 때까지 15년간 폐쇄 병동에서 보냈던 모습이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약물을 투여해 억지로 잠을 재우고 깨어나면 풍선 카테터(끝에 풍선이 달린 가느다란 관. 혈관 등의 내부에서 풍선을 부풀려 치료에 이용한다-옮긴이)를 삽입해서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묶어둔다. 죽고 싶어도 죽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넓은 방에서 잠시 편히 지낼 때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인정사정없이 폐쇄 병동으로 돌려보낸다. 병원 내 학교에서 배운 내용, 면회를 오지 않는 부모님, 친하게 지내던 아이의 자살, 간호사의 학대 등의 내용이었다. 취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자료도 건넨 적이 없었다.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이었다.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나는 없어질 거야. 결국 죽겠지.
---「제5화. 다케하라·교열걸 주변의 펑가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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