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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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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로 가는 길

[ EPUB ]
이서윤 | 가하 | 2011년 08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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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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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7.8만자, 약 5.7만 단어, A4 약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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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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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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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은 클럽의 뒷문을 통해 거리로 나섰다.
신데렐라가 따로 없군, 훗!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딱 1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허락한 시간의 한계는 무의식중에도 살아나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그녀를 일깨웠다.
춤을 추는 동안에는 자신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익명이 주는 장막에 가려 온몸을 꽉 채웠던 모든 상념을 잊었다. 한도연이라는 주어진 이름도 잊고,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도록 완벽하게 자신을 비웠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잊었다.
“후후!”
앞으로 쏟아진 풍성한 붉은색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도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녀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 사람을. 한 번 보았지만 결코 잊지 못할 그 얼굴을.
왜 당신이 여기 있지? 우연일 거야. 어쩌다보니 뉴욕에 왔겠지. 당신은 나를 알아본 거야? 한 번 봤을 뿐인 나를?
도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궁금해했던 그의 모습은 강렬히 자신에게 각인됐지만 그는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건만.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 도연은 확신했다. 누구도 이 밤의 퇴폐적인 파미나가 고풍스런 담장 안에서 고이 길러진 한도연이라는 난초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오늘따라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져갔다. 허전함을 메울 수 있을 거라 시작한 일조차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는지 공허함은 메워지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로 이 일탈과 도피도 끝이다.
순간, 도연은 또다시 떠오른 남자의 모습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심장을 두드리는 강한 비트의 음악이 사라지는 동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차분히 가라앉곤 하던 그곳이, 오늘은 지금까지도 둥둥 울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점을 향해 조금씩 올라가는 그 순간처럼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짜릿해졌다.
한도연, 너 여기서 더 할 수 있어?
아니……, 그럴 수 없다. 처음 본 순간부터 멈출 수 없이 끌리던 그 남자를 밀어낸 것도 이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외면할 수는 있어도 결코 깨고 나올 수 없는 자신의 굴레를 그녀는 간과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절대 안 돼.
도연은 둥그렇게 뜬 달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지독한 우연이야. 이런 상황에서라니.
피식대던 웃음은 어느새 씁쓸하게 변했다. 툭, 어깨가 떨어져 도연은 지끈 입술을 물었다. 더 이상의 미련은 부질없었다.
밤이 되어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자 전신을 감싼 검은 코트 깃을 더욱 올리며 도연은 걸음을 재촉했다. 클럽의 앞길로 나가 택시를 타도 10시면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으려면 조금 빠듯했다. 그러다 한순간, 도연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

그녀의 가는 손목을 움켜쥔 힘에 멈칫하며 걸음을 멈춘 도연은 돌아보지 못했다. 차가운 밤공기에 섞여 느껴지는 상대의 체취가 상당히 익숙한 탓이었다. 순간 어지럽게 울렁대는 심장을 도연은 안간힘을 다해 눌렀다.

“도망가나?”

그가 도연을 확 끌어 당겼다. 상당히 거칠었지만, 그렇다고 무례하지는 않은 힘. 상대의 한 팔이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이미 클럽 안에서 느낀 그의 단단한 가슴이 벽처럼 그녀를 감쌌다. 갑작스런 바깥 공기에 바짝 긴장됐던 몸에 따스한 온기가 다가왔다. 기분 좋은 느낌이지만 결코 기댈 수 없어 도연의 몸이 바짝 긴장을 했다.

“네버(Never). 갈 때가 돼서 나왔을 뿐이야.”

입가를 올려 웃으며 도연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냉랭했지만, 가슴은 평정을 잃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당신, 설마 나 기억하는 거야?
도연의 눈가가 희미하게 경련했다.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남자의 눈빛에 타오르는 것은 분명한 욕망이었다. 저건 한도연을 보는 눈빛이 아니다. 그저 미친 듯이 욕망의 춤을 추던 파미나를 보는 눈빛이다. 도연은 단정지었다. 이 남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훔쳐보던 한도연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당신과 나, 만난 적 있어?”
“글쎄. 여기는 내가 처음인데?”
자신은 무슨 대답을 원했던 걸까? 감정 없는 그의 대답을 들으며 도연은 꽉 닫힌 입 안에서 이를 악 다물었다. 비스듬히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시선을 맞춘 그의 눈빛이 엷은 웃음을 담았지만, 그의 눈은 보다 큰 욕망에 젖어 있었다.
당신이란 남자도 결국 어쩔 수 없구나. 하룻밤에도 여자를 안을 수 있는 여느 남자와 다르지 않은 남자. 그저 여자가 필요해 따라 나온…….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도 묘한 오기가 치솟아 올라 도연은 한순간 눈빛이 움찔거렸다. 이상했다. 가슴에서 바람이 빠지듯 기대가 꺼져가는 것 같은 느낌에 그녀의 기분이 점차 알싸해졌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도연은 표정을 지우며 입을 열었다.

“한국인인 줄은 어떻게 알았지?”

도연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뚝 서 달빛을 가리고 있는 그에게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놓인 탄탄한 가슴을 밀치고 싶었지만, 단단하게 끌어안은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저 눈빛이. 확 긁어주고 싶은…….
그녀의 날선 물음에 상대는 피식 웃었다.

“한국인인 줄 몰랐는데? 내 질문에 대답한 건 너야.”

도연은 난처함에 지그시 붉은 입술을 물었다. 한국어로 그가 물었고, 당황한 자신이 대답했으니, 도연으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라고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연은 인정하기 싫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상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바로 기억해 낸 자신을, 그리고 그 눈빛 아래 온몸을 떨고 있는 자신을.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이 남자의 눈빛에 순식간에 휘둘리고 흔들렸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우연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를 이 넓은 미국 땅, 뉴욕에서 다시 만나다니…….
그녀는 아연했다. 처음으로 재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그날, 이형이 곁에 있었음에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남자는 너무도 짧은 시간 그녀를 사로잡았었다. 숨이 막혔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군신(軍神)과도 같았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압박하는 섹시한 매력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오늘 그를 우연히 만난 클럽. 그로인해 전신을 뒤흔든 쾌감과 야릇한 흥분을 맛봤다는 것은 그녀 자신을 감추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비밀을 간직해서일까? 그것이 그녀를 숨을 쉴 수도 없이 달아오르게 했다.
강력한 페로몬을 풍기며 다가온 남자는 그녀의 숨통을 조여 왔다. 그녀에게 숨결이 맞닿을 만큼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지만, 숨이 턱턱 막혀 도연은 결국 먼저 백기를 든 셈이었다. 도망을 왔으니까.
미쳤구나, 한도연.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다. 이 남자와의 하룻밤은 어떨까? 이 남자에게 안기면 어떤 기분일까? 다시 한 번 우연을 바라며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왜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는지 도연은 스스로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다리와 다리 사이 은밀한 곳에 무언가가 확 몰려 따뜻해지는 느낌으로 도연은 당황했다. 이 남자를 두고 일탈을 생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온몸이 가눌 수 없이 휘청거렸다.

“파미나? 네겐 밤의 여왕이 어울리는데, 왜 그녀의 딸을 사칭하는지 모르겠군.”

빈정거림이 분명한 음색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낮고 선명한 저음, 하지만 녹아날 듯 부드러운 음성. 어둠에 희미하게 드러난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점점 더 짙어지는 그의 기운에 도연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의 체취는 깊은 숲에 들어간 것같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지만, 또한 나른하게도 만들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

“넌……, 싫다는 여자 붙들고 농락하면서 너무 말이 많아.”

도연은 희미하게 웃었지만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한 번쯤, 그래 한 번쯤 내가 나를 용서해 줄 수도 있겠지. 당신이라면.
어느새 그녀도 모르게 도연의 온몸을 감았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차츰 풀려갔다. 평소 웃지 않아 쓰지 않던 근육조차 희미하게나마 떨려왔다. 스물일곱 해를 살아온 그녀의 가슴이 단 두 번 진동을 했다. 모두 이 남자를 보았던 그때였다.

“나한테도…….”

어느 순간 그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눈을 감고도 기억해낼 만큼 각인되었던 입술이 마주 닿았다. 섹시하고 근사했던 느낌이 그대로 다가와 그녀의 입술 위에서 속삭였다.

“침묵의 고행을 하라는 뜻이라 생각하지.”

그의 숨결이 간지러워 도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늘여 웃고 말았다.
흡!
한순간 숨이 막혔다. 그의 강한 팔이 작은 몸을 덥석 당겨 안자 그의 가슴과 맞닿은 도연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단숨에 강렬하게 파고들어 혀를 감는 그는 뜨겁고, 그만큼 달콤했다.
그때와 같은 모순이다. 이성은 상대를 밀어내야 함을 아는데 한 번 녹아버린 감성이 그의 머리를 당겨 안았다. 도연은 풀리지 않을 만큼 그녀를 옭아매고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그 남자를 열렬히 맞았다. 달콤하고 또한 사악한 입술을 맞은 숨결이 거칠게 뛰었다. 입 안의 여린 점막을 훑어가던 그의 혀가 깊고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단숨에 그녀를 먹어치울 듯 빨아 당겼다.

“하아…….”

가로등마저 깜빡거려 으슥하고 어두운 곳에서 도연은 자신을 짓누르는 검은 그림자를 끌어안았다. 결국 그녀가 지고 만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코트 자락을 헤치고 들어온 커다란 손이 그녀의 볼륨 있는 가슴을 리듬감 있게 어루만졌다. 바짝 달아오른 두 몸이 하나인 듯 엉겨 붙었다. 나른하고 짜릿한 감각이 중심으로 치달았다. 심장이 두근거려 도연은 훅 하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딱딱한 무언가가 도연의 아랫부분과 맞닿았다. 놀란 그녀가 눈을 뜨자 뜨겁게 쏟아지는 남자의 시선이 닿아 도연은 움찔거렸다.

이 남자……, 위험해.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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