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든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미는 일 온전히 스미도록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는 일 ―「마음에 들다」 중에서
여보씨요 동네 사람들, 바쁠 텐디 나 죽었다고 이렇게들 와서 거들어주고 울어주고 웃어주고 몰아줘서 참말로 고맙소 노상 슬픔을 바다에 묻고 살아온 우리들인디 새삼시럽게 초상집이 울음바다가 될 필요 있것소 나같이 오래 산 늙은이가 죽으면 경사로다 축제를 벌이는 것이 대대로 우리 동네 전통 아니것소 그랑께 오늘밤은 만사 작파하고 한판 신명나게 놀다 가씨요~잉 그래사 나도 기분좋게 저승길에 들것소 ―「섬의 리비도5―밤달애 망자의 말」 중에서
우윳빛 봄바다와 뻘물투성이 여름바다를 거쳐 쪽빛 투명한 피부로 빛나는 남녘 가을바다 거기 이미 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사내 하나 있어 종일토록 바닷가에 앉아 쪽빛 편지를 읽어내리면 지난 사연들이 모두가 쪽빛으로 되살아나겠다 ―「쪽빛 편지」 중에서
굴복하지 않은 자존들이 섬들로 떠 있는 추자도 나도 그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근 섬이 되어 깨끗한 외로움 하나를 담금질하고 싶다 ―「추자도에서」 중에서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엔 나무가 있다 까마득한 그리움의 거리가 있다 직립한 채 하늘 향해 두 손 모으는 간절할수록 이파리가 무성한 기도가 있다 그리하여 찬바람 부는 늦가을이면 제 메마른 이파리들을 아낌없이 털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나무의 사랑법이여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이여 ―「나무의 사랑법」 중에서
아무도 없는 변방의 숲속 반딧불 한 점 켜져 있다
휘황한 불빛에 밀려 꺼질 듯 깜박이고 있다
별이고 꽃이었던 밤은 끝난 것인가
신화처럼 살아서 반짝이던 것들은 어디 갔나
다들 어디 갔나 ―「반딧불 한 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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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은 낡고 오래된 것들의 덕목을 건져올려 다시 말갛게 씻어 말리고 싶었다. 그 깊이와 향기로 천리를 가고 싶었다.
현대라는 시간을 믿지 않는다. 내 시는 끝까지 문명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살 것이다.
예술이 생동하는 형식을 통해 가장 탁월한 생명을 지니면서, 다른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힘을 지니는 것에 그 본질이 있다면 김선태의 시들은 예술이 갖는 그 본질에 가장 충실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런 시들이 지니는 미학적 효과가 다른 생명체에게 가서 한과 신명을 동시에 상기시키며 종국에는 ‘흥겨움’으로 승화돼 현재의 삶을 수긍하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김선태의 시는 생명이 지녀야 할 힘과 예술적 지고성을 동시에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경복(문학평론가, 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