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은 지호를 응시했다. 방을 나가던 여자의 쓸쓸한 눈빛과 달리 지호의 눈은 열기로 가득했다. 지호의 눈도 그 여자처럼 쓸쓸할까 봐 두려웠던 시현은 마음을 정했다. 시현은 마음에 있던 그 여자를 보내겠다는 지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렸을 땐 이렇게 켜지는 비상등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감지하고 불이 켜질까 하면서요. 조금 더 컸을 땐 이런 센서가 얼마나 허술한지, 깨닫고 실망했죠. 여기 이렇게 서 있어도 금방 불은 꺼지잖아요.”
시현과 지호를 비추던 비상등이 꺼지면서, 입구가 어두워졌다.
“다시 움직이면, 불이 또 켜지겠지.”
“그런가요? 그렇지만 난 그냥 이렇게 서 있어도 내가 여기 있는 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시현이 지호의 심장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지호의 숨결이 빨라졌다.
“나, 윤지호 씨가 다 비우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마음먹었어요. 가만히 이렇게 있어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알아줄 거죠?”
사랑이란
사랑은
구걸해서는 안 된다
강요해서도 안 된다
사랑은
자기의 내부에서
확신의 힘을
가져야만 된다
그러하면 사랑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겨지게 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언니! 결혼하니까 뭐가 좋아요?
시현은 새언니가 낳은 작고 예쁜 아이를 품안에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가씨도……. 좋은 거 같긴 한데 뭐가 좋은지 말하라고 하시니까 딱히 떠오르질 않네요.
그나저나 아기 이름을 윤수라고 지은 거 알면 엄마는 무덤에서도 무척 슬프겠죠?
아가씨.
매일 반짝거리기만 해서 시현의 상처는 잊어버렸던 연희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기만 쳐다 보는 연희를 보고 시현은 웃으며 팔을 휘휘 저었다.
아니에요. 엄마가 욕심내서 아빠를 차지하고, 시혁 오빠의 엄마인 한윤수 씨를 밀어 냈던 것 다 알아요. 아마 엄마도 이해했을 거예요. 언니, 나는요, 절대로 나 싫다는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나만 보고, 나만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엄마처럼 등만 보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