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꿘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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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74g | 120*188*20mm
ISBN13 9788990492999
ISBN10 8990492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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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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꿘투

관장님께 권투는
권투가 아니라 꿘투다
20년 전과 바뀐 것 하나 없는 도장처럼
발음도 80년대 그대로다
가르침에도 변함이 없다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란다
관중의 함성을 한데 모으는 KO도
쨉 때문이란다
훅이나 어퍼컷을 맞고 쓰러진 것 같으나
그 전에 이미 무수한 쨉을 맞고
허물어진 상태다
쨉을 무시하고
큰 것 한 방만 노리면
큰 선수가 되지 못한다며
왼손을 쭉쭉 뻗는다
월세 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20년 넘게 아침마다 도장 문을 여는 것도
그가 생에 던지는 쨉이다
멋없고 시시하게 툭툭
생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도장 벽을 삥 둘러싼 챔피언 사진들
그의 손을 거쳐 간 큰 선수들의 포즈도
하나같이 쨉 던지기에 좋은 자세다

--- p.40


열쇠 구두

구두는 열쇠다
한 평짜리 구두수선가게의 말이다
창문 한 짝씩 나란히 사이좋게
구두와 열쇠라 적혀 있다

구두만 보면 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그 사람의 항로가
블랙박스에 기록되어 있다

세일즈맨 정씨도 닳고 닳은 굽으로 와서
문이 확 열려버렸다

정씨처럼 앞코가 둥글고 굽이 낮은 구두가 좋지
평범하지만 부지런한 성격이거든
이렇게 구린내 나는 신발이 좋아
발바닥에 땀 나도록 산다는 거니까

이런, 앞코에 상처가 났네
쯧쯧쯧 좀 참지 그랬어
그래도 구두를 구겨 신지 않는 걸 보니
자넨 아직 미래가 창창해

창창하게 반짝거리는 구두
빤히 들여다보던 정씨
열쇠를 신고 간다
구두로 문을 열 일만 남았다

--- p.42


오독

약을 악으로 읽고도 몰랐다
책 세 장 넘길 때까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약과 악 사이의 상관관계가
약으로 버틴다를 악으로 버틴다로 읽게 했다
그렇다면 악으로 일해서 약값을 벌고
다시 악으로 사는,
하루 종일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는
우리 시대의 오독일까
약이 귀하던 시절
약 대신 악으로 살다가
이젠 오른 약값 때문에
악으로 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약이 귀한 시절
그래서 우리 시대는 가난한 거다
가난하거나 말거나
여전히 살아내는 할머니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의 약값을
악으로 벌고 있다
남편과 약과 할머니와 악의 순환관계
순환의 핵심은 악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를 살리는 것은
약이 아니라 악이다
민간요법의 승리다

--- p.52


母子의 시간

아내의 가슴이 울고 있다
입고 있는 면티 젖꼭지 닿은 부분이
흥건히 젖은 줄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아내
때맞춰
젖먹이 아들이 잠에서 깬다

저 母子 사이를 흐르는 시간에는
때가 살아 있구나
비워야 할 때와 채워야 할 때
가슴이 부르고 배가 부르는 때
세상 그 어떤 시계와도
사이클이 맞지 않는
그들만의 간격으로 흐르는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내가
아들 입에 젖을 물린다
쪽 쪽 쪽
태엽 감는 소리가 힘차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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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근의 시는 정직하다.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 이장근의 시는 따듯하다. 연민을 알고 울음을 아는 손으로 쓴 시라서 따듯하다. 그는 구두, 장갑, 삼천리자전거, 하모니카 같은 평범한 것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눈을 지니고 있다. 「오독」 「엄마 공장」 「꼬리의 근성」 등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꿘투」라는 시가 좋다. 인생이란 훅이나 어퍼컷 같은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뻗는 쨉의 힘이 밀고 가는 것임을 알려주는 「꿘투」는 재미있는 시다. 멈추지 않고 쨉을 뻗는 팔처럼 꾸준히 자신의 생을 밀고 가는 한결같은 힘, 그런 저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그의 시도 평범한 듯하면서 쨉처럼 쭉쭉 뻗는 힘이 있다.
도종환(시인)
이장근의 시집을 통독하면서 반갑게도 나는 이 시집이 민중의 노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황규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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