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 하나님께 나의 것을 바치는 신앙행위로 감사의 표현이라야 한다. 또 그것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비밀 사항이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주보에까지 이름을 발표하는 것은 헌금 액수를 올리려는 교회의 천박한 모금 방법이며, 간접적인 강요 행위이고, 헌금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사기극이라고 비꼬는 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미태복음〉 6장 3절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구제 사업도 그만큼 은밀히 하라고 하였거늘 하물려 인간이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무슨 의도로 인쇄하여 세상에 공개까지 하고 있는가?
--- 「제1장 〈교회의 존재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중에서
사실 기독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독교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정복한 대표적인 종교였다. 예를 들면 천주교가 ‘선교 복음화’라는 미명하에 중남미 대륙으로 들어가서 원주민들에게 범한 침략, 약탈, 살인, 파괴, 그리고 정복의 죄과는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 원주민들이 쌓아올린 그 찬란했던 잉카(Inca) 문명, 타이노(Taino) 문명, 아즈텍(Aztec) 문명 등을 말살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죄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그곳을 복음화 시켰다고 스스로를 자화자찬하지 않는가. 그들은 총칼과 폭력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정복하고서도 오히려 복음화 하였다고 감사 미사를 드렸던 것이다.
--- 「제2장 〈기독교 세계 선교는 성령의 역사인가, 사탄의 역사인가?〉」 중에서
콜럼버스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종교나 경제력을 가진 나라들이 그것을 무기로 하여 지금도 WTO나 IMF 등을 앞세우고 상호협력과 지원을 약속하면서 약소국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침략과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배와 예속, 즉 어떤 하나의 문화가 타문화를 지배하거나 또 어떤 하나의 종교가 타종교를 배척하는 것 등 그들은 종교간, 인종간, 민족간, 국가간의 대립분쟁을 변함없이 계속 조장해 왔다. 그 수단과 방법, 규모, 형식 등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의 근본적인 지배욕과 독선에는 큰 차이가 없다.
--- 「제3장 〈콜럼버스는 성자였는가, 악마였는가?〉」 중에서
모두가 자기의 종교를 위하여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으로 타종교와의 성전을 불사하려고 한다면, 인류는 전멸하거나 혹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때 살아남은 자들이 지상의 평화를 즐기면서 그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타종교인을 말살할 수도 없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말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예수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종교인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타인종들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근거로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종교라고 고집할 수 있을까?
--- 「제4장 〈십자군은 하나님의 군대였는가?〉」 중에서
종교단체가 영리목적으로 무엇인가를 팔고 돈을 받는 사업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기독교가 부(富)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전락하면 어떠한 설명이나 변명이 있어도 사회적인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와 신앙을 돈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돈이 그러한 수단이 된다면 그러한 종교는 돈과 신앙을 동반자로 만들었거나 상호간에 필요한 것을 서로 팔고 사는 고객관계로 만들어 버린다. 권력에 집착하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나 종교인 역시 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신앙은 타협이나 지배 또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러한 신앙이나 위선, 기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생명의 위험이 있어도 권력이나 부에 아부하지 않고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때의 예수는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잊어서는 안된다.
---「제5장 〈로마 천주교의 존재는 인류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