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해병
공정식 장군은 해군으로 5년, 해병대로 15년, 도합 20년 동안 군인으로 살았다. 그가 군복을 벗은 지 올해(2016년)로 만 50년. 강산이 다섯 번 바뀌었으니 이제는 민간인 냄새가 날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군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운명적으로 무골(武骨)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무인(武人)으로 살아온 진정한 군인이요, 영원한 해병이다.
중국의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하나인 오자병법(吳子兵法)을 저술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장 오기(吳起)는 부하를 제 몸처럼 아껴 병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어느 날 진중을 시찰하던 오기는 다리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는 늙은 병사를 발견하게 된다. 고통에 신음하는 병사를 바라보던 오기는 서슴없이 그 병사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뽑아냈다. 오기의 간호로 몸을 회복한 그 병사는 얼마 후 전쟁터에서 오기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후 그 병사의 아들도 종기로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도 오기는 그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뽑아내 주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오기가 종기를 빨아 남편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의 종기를 빨았으니 곧 아들까지 죽겠구나.” 하며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한다.
공정식 장군이 바로 오기 같은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병사들과 같은 잠자리에서 잤으며, 병사들과 고락(苦樂)을 함께했다. 그는 병사들을 친형제처럼 아낀 타고난 덕장(德將)이었다. 그가 수많은 전투에서 무적해병의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또한 공정식 장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맹장(猛將) 중의 맹장이다. 그런 기질 때문에 그는 군 생활 20년 동안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결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전장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총알이 피해간다.”는 말이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공정식 장군이 타인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별명이 ‘영원한 해병’이다. 그만큼 그의 해병대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병대 사랑은 공정식 한 사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정식 일가는 해병가족으로 유명하다. 공정식 장군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는데, 세 아들 모두가 해병대 출신이다.
장남 공용우는 해병 224기로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차남 공용대는 해간 62기로 해병 1사단에서 정훈장교로 복무했고, 해병 369기인 삼남 공용해도 해병 1사단 7연대에서 복무했다.
어디 그뿐이랴. 차남 공용대의 외아들 공원배(해병 924기)와 삼남 공용해의 장남 공현배(해병 965기)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공정식 일가는 3대에 걸친 해병 명문가(名門家)인 것이다.
해병 명문가의 명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식 장군의 손자들도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해병대에 보내겠다고 하니, 해병 명문가의 전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2008년 9월 28일, 대한민국 국군은 건군 60년을 맞아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명장(名將) 18명(육군 6명, 해군 5명, 공군 3명, 해병대 4명)을 선정했다.
육군에서는 김백일(1917.~1951.), 김용배(1921.~1951.), 김성(1923.~1993.), 이순호(1928.~1952.), 고태문(1929.~1952.), 홍창원(1932.~1952.)이 선정되었으며, 공군에서는 최용덕(1898.~1969.), 이근석(1917.~1950.), 김영환(1921.~1954.), 해군에서는 손원일(1909.~1980.), 함명수(1928.~), 현시학(1924.~1989.), 이태영(1927.~1951.), 지덕칠(1940.~1967.), 그리고 해병대에서는 김성은(1924.~2007.), 공정식(1925.~), 정경진(1936.~2015.), 이인호(1931.~1966.)가 선정되었다.
2016년 현재, 18명의 명장 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공정식(91세) 장군과 해군의 함명수(88세) 제독 두 사람뿐이다. 공교롭게도 두 원로는 해군사관학교 1기동기이며, 생사를 넘나든 몽금포작전에서 아름다운 전우애의 꽃을 피운 친구 사이다.
지금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두 원로는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해군과 해병대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두 원로가 지금도 해군과 해병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해군과 해병대의 행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식 장군과 함명수 제독이 더욱 장수하며 오래오래 군의 정신적 지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