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협은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산물이었다. 그 열기가 남아 있었던 만큼 초창기 인의협 활동은 민주주의와 노동자·민중을 향해 집중되었다. 즉 민주주의를 외치다 군홧발에 짓밟힌 억울한 죽음,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몸을 독성물질에 노출시켜야 했던 노동자,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했던 가난한 민중, 이들의 부름에 인의협은 기꺼이 응했다.” --- p.52
“인의협이 탄생한 지 꼭 10주년이 되는 1997년에 한국 사회는 다시 커다란 혼란과 변화를 겪었다. 바로 IMF 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경제위기와 50년 만의 선거를 통한 야당으로의 정권교체였다. 인의협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정권과의 관계가 과거와 분명 달라졌지만 그것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그 민주주의가 사회 곳곳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전문가 단체로서 역할을 고민해야 했다. 이는 의사 사회와 의료 제도를 바꾸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자세’와 민중과 함께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도주의의 실천’을 인의협에 요구했다.” --- p.120
“의약분업과 의보 통합을 둘러싼 보건의료 분야의 진보와 보수 세력의 대립은 2002년 대통령 선거로 일단락되었다. 국민들은 민간 의료보험도입 등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보다 의료보장률 80퍼센트로 강화, 공공의료 비율 30퍼센트로 강화를 내세
운 노무현 정부를 선택했으며,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내세운 민주노동당에도 100만에 가까운 표를 몰아주었다. 그 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10석을 얻는 정치 지형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공약인 의료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 강화는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기대에 못 미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공 부문 민영화,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인의협은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주당 정부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더욱 분명하게 비판을 가했다.” --- p.170
“[2008년] 4월 21일 월요일, 인의협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이명박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2008년 4월 29일에는 MBC [PD수첩]에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즉각적 대응과 [PD수첩]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열기는 행동으로 이어져 5월 2일 광화문 광장에 첫 ‘광우병 촛불’이 켜졌다. 이명박 정부가 부랴부랴 ‘광우병 괴담’ 해명 관계 부처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이미 붙은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5월 2일에 이어 5월 3일에도 1만 명의 촛불이 타올랐다.
갑자기 뜨거워진 촛불에 정부 측도 바빴지만 시민사회단체들도 바빠졌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협상 내용과 광우병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 측과 맞서야 하는 인의협을 비롯한 전문가 단체들의 역할도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사실, 2006년 한미 FTA 협상 때부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인의협은 이미 상당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209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아니 사실상 당선되자마자 민생과 복지는 폐기되었다. 대표 공약이었던 ‘4대 중증 질환 100퍼센트 국가 책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미 인수위 때부터 비급여 제외를 천명했고, 출범 후 간병비·선택진료비·차등병실료 같은 핵심 비급여는 완전히 제외한 채 일부만 별도로 보장성 강화를 논의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또 다른 핵심 복지 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도 누더기가 되었다. 그렇게 치워진 민생과 복지의 자리에는 각종 민영화 정책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그 중심부에 의료 민영화 정책이 똬리를 틀었다.
인의협은 박근혜 정권 내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의료 민영화도 큰문제였지만 인의협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의협은 진주의료원 폐원, 의료 민영화 정책,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국정농단 사태 속 의료
게이트 등 각종 사안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1987년 이후 가장 거대한 변화의 동력이라고 하는 탄핵촛불을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