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종 생산물이 철학적 탐구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이론적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교량이 되기를 바란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실천적 과학과 분리된 철학이란 없다. 이 책은 분명 철학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p.21
자연은 흔히 여성으로 묘사된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자연의 개념은 복잡하고 멍청한 메타포를 동반하는데, 자연의 여성성처럼 만연하고 고질적인 메타포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을 대우하는 방법이 자연을 대우하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외적 자연처럼 여성은 인간이 지배하고, 억압하고, 황폐화하고, 낭만화하려는 대상이다. 여성은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복과 침략의 대상이다. 이 언어의 의미는 정확하다. 여성들은 존중되지만 그들의 사회적 지배는 한 번만 보장된다. 자연의 개념이 정확히 그런 것처럼 낭만주의는 통제의 한 형태가 된다. 그러나 여성은 완전히 외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성은 출산력과 생물적 재생산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은 보편적 자연의 요소, 어머니와 양육자, 신비한 “여성 직관”의 소유자 등으로 묘사된다. --- p.55
‘자연의 지배’라는 주장이 우울하고 일차원적이며 탈모순적인 미래를 의미한다면, ‘자연의 생산’이라는 사고는 기술적 필연성보다는 정치적 사건과 힘에 여전히 결정되는 역사적인 미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과 힘은 정확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성격과 구조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서에서 이러한 자연관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다. --- p.82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무엇이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사회통제를 위한 투쟁이다.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가치이고 무엇이 가치가 아닌지를 통제하는 투쟁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이는 시장에 의해 판단되었으며, 자연의 결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사회주의는 시장이나 시장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교환가치와 이윤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의해 필수품을 판단하기 위한 투쟁이다. --- p.131
인간은 스스로 생계 수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동물과 분리시켰으며, 스스로를 점점 더 자연의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 지구적 규모에서 인간 노동과 자연의 생산을 통해 인간 사회는 자신을 거리낌 없이 자연의 중심에 위치시켜왔다. 엄밀하게 자연의 중심성은 자연을 실제로 통제하기 위한 자본의 미친 탐색에 기름을 붓는 일이지만, 자연을 통제하려는 이념은 꿈이다. 이는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며 자본과 자본가계급이 매일 밤 꾸는 꿈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연의 생산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인간에게는 이것이 실현 가능한 사회주의의 꿈이다. --- p.133
핵심은 이러한 지리적 패턴들이 서로 모순적인 경향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첫째, 사회 발전이 사회로부터 공간을 해방시킬수록 공간적 고정성이 더 중요해진다. 둘째, 차별화와 보편화 내지는 균등화라 불리는 상반된 경향들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동시적으로 유발된다. 이러한 모순적 역학이 현실에서 매우 특정한 패턴을 따르는 공간을 생산해낸다. 공간은 완전히 균등화되지도, 무한히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패턴은 일반적 의미가 아닌 공간의 생산을 유도하는 모순적 역동성의 특정한 산물로서의 불균등발전이다. 불균등발전은 자본주의하의 공간 생산의 구체적 현상이다. --- p.173~174
차별화 경향처럼 균등화 경향도 자본에 내재한다. 교환의 개별 활동이 사회적 등가를 창조하기 때문에 세계시장과 유통 과정에서 균등화의 경향이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유통 영역은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을 실현하려고 분투한다. 그러나 유통에서 실현되는 것은 생산에서 나오고, 이것이 바로 균등화 경향의 사례가 된다. 생산 조건과 수준의 균등화는 차별화 경향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노동이 보편화한 산물이다. 마르쿠제는 균등화에 눈이 멀어 차별화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상반된 경향이 역사적으로 특정한 지리를 함께 생산한다. --- p.216
차별화와 균등화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추상적으로 마르크스의 상이한 언급과 생각을 해석하고 추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축적의 리듬과 위기에 대한 강조에서 이런 논의를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위기 가운데 발생하는 자본의 업종별 일반적 감가는 확실히 즉각적인 경고를 울린다. 예를 들어 탈산업화 과정은 가치절하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특정 업종이나 지역에 특수적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 p.232
마르크스가 자본의 전체 구조와 발전을 분석하기 위해 살피는 차이와 불비례, 불균형 상태는 자본의 보편화 경향에 있는 지리적 차별화의 수많은 근원으로 탈바꿈한다. 자본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 조건과 생산수준의 지리적 균등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생산력의 발전이다. 자연의 생산은 균등화의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균등화는 지리적 공간의 차별화에 의해 꾸준히 좌절된다. 공간적 조정 수단으로서의 차별화는 그 자체가 조정해야 할 문제가 된다. --- p.265
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현 위기가 훨씬 긴박한 중요성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지리학의 운이 트인다는 사실은 21세기 지리학의 특징을 꼬집는 소름 끼치는 촌철살인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지리적 공간을 의제로 삼는 것은 단지 전쟁만이 아닐 수 있다. 몇 차례에 걸친 투기의 물결이 휩쓸고 난 뒤 위기가 엄습해오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폐(모든 인식 가능한 종류의 부채)가, 실제적인 생산능력이나 상품 속의 어떤 유형으로 스스로를 고정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 p.273
자본주의의 체계적인 불균등발전이 시작되던 시기에 레닌은 경제적 경쟁은 위기를 통해 군사적 경쟁과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오늘날의 현실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불균등발전,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핵심은 우리가 이 책에서 그렇게 관심을 기울였던 경제적 논리가 역사의 군사적 결정을 위해 유예된다는 데 있다. 전시에 일어나는 자본의 대대적인 감가는 경제적으로는 횡재이다. 하지만 이는 군사적 갈등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불균등발전의 경제적 논리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결코 경제학의 보편적인 우위를 철학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 p.276
패배가 폭넓게 확산된 와중에도 불균등발전 패턴의 종식을 원한다면 노동계급의 운동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것은 실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하는 패턴이자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균등발전의 정치적 처리에 다시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의 목표가 고지식한 “균등발전”이라서가 아니다. 이는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 있다. 그보다 우리의 목표는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진정한 사회적 선택을 동력으로 하는, 사회적으로 결정된 차별화와 균등화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 p.276
지리적 규모는 정치적이다. 왜냐하면 기술에 따라서 사건과 사람은 말 그대로 “공간에 담기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규모는 공간을 구획하고, 사람은 자신을 위해 [공간을] “차지하거나” 만들도록 공간화한다. 따라서 규모에서는 공간의 억압적·해방적 가능성들, 공간의 죽음과 생명이 순화된다. 마찬가지로 규모는 민족주의, 지방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어떤 형태의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주의 등과 같이 순화된 공간적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제시한다. 따라서 비록 많은 정치적 담론에서 공간적 투쟁은 경계분쟁에서 드러난 것만큼이나 흔히 장소의 명칭, 즉 이름 정하기를 둘러싼 주장에 함의되기도 하지만, 규모의 생산과 재현은 공간화된 정치의 핵심을 차지한다. --- p.297~298
물론 하비의 ??자본의 한계??는 단지 지리적 또는 공간적 불균등발전에 초점을 둔 저술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자본??, 그리고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이론 일반에서 누락된 공간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자본순환 과정 전반에 관한 이론을 매우 종합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스미스의 이론보다 더 포괄적이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미스의 불균등발전은 하비의 이론과는 달리 자연의 물질적·이데올로기적 생산과 공간의 생산(규모의 생산을 포함)에 관한 개념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 세계에 원용한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 및 제국주의적(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 관한 설명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유의성을 가진다.
--- p.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