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처럼 신중한 문제가 걸릴 경우, 점잖은 영국인이라면 절대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제가 80일 이내, 그러니까 1,920시간, 다시 말해 11만 5,200분 이내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걸 놓고 2만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입니다.」 스튜어트, 폴런틴, 설리번, 플래너건, 랠프가 합의를 본 뒤 대답했다.
「좋습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말했다. 「도버행 기차가 8시 45분에 출발합니다. 저는 그 기차를 타겠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요?」 스튜어트가 물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요.」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그는 수첩의 달력을 보면서 덧붙였다. 「오늘이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12월 21일 토요일 저녁 8시 45분까지 리폼 클럽 휴게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베어링 형제 은행의 계좌에 예치되어 있는 2만 파운드는 법적으로 여러분 소유가 됩니다. 여기 2만 파운드 수표가 있습니다.」
내기에 관한 계약서를 여섯 명의 내기 참여자가 그 자리에서 작성하고 서명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침착하게 있었다. 그가 내기를 한 이유는, 분명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2만 파운드를 내기 돈으로 건 이유는, 나머지 2만 파운드는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어려운 과제를 해내는 데 사용해야 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내기 상대들은 동요된 듯했다. 내기 액수 때문이 아니라, 이런 조건에서 내기를 해도 되는지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 pp 32-33
쥘 베른은 1870년 잡지 『마가쟁 피토레스크』에 실린 기사를 읽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당시 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목판화로 만든 삽화를 곁들여 소개해 대중적인 백과사전 역할을 했던 이 잡지는,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세계 일주 기간이 3개월 단축되어 기차와 선박을 이용해 파리에서 출발해 세계를 돌고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80일이라는 계산과 함께 상세한 일정표를 게재한다. 세계 여행과 남극 탐험을 기록한 모험가 뒤몽 뒤르빌과 장님이 된 후에도 세계 여행에 나서고 여행기를 남긴 모험가 아라고를 동경하고 이들의 책을 탐독했던 쥘 베른은, 이 기사를 바탕으로 자신의 인물들이 벌일 상상의 세계 일주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해운 회사의 연결망을 면밀히 검토하고, 팸플릿을 모으고, 프랑스 ? 영국 ? 인도 ? 미국 등의 열차 시간표를 열람했다. 시차로 인해 내기의 결과가 바뀌는 역전극은, 그가 존경하는 작가였던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일요일이 세 번 있는 일주일」(1845)을 읽고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포의 단편에서는 런던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되돌아오는 사람, 런던에 남아 있는 사람, 런던에서 동쪽으로 출발해 여행을 마치고 온 사람이 모여 각자의 시간 논리를 펼치고 하루 차이로 일요일이 나란히 세 번 이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쥘 베른은 여기에 착안해 결말을 이끌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