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쟁이와 기술쟁이의 구분은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퍼시 스노가 우려한 ‘단절’이 현대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스노는 유명한 에세이 《두 문화》에서 인문학과 과학 종사자들 사이에 생긴 단절을 한탄했다. 그는 인문학을 배운 사람과 기술 및 과학을 배운 사람 사이에는 서로 공유할 만한 가치가 많고, 그래서 양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통적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이 미래의 기술 주도 경제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처럼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야말로 빠르게 진화하는 경제 상황에서 성공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_p. 7, 〈저자의 말〉 중에서
그들은 인문학 교육이 기술의 힘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슬랙의 설립자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자신이 성공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조사를 통한 논리적 귀결을 따라간 덕분이라고 말한다. 버터필드가 빅토리아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양쪽에서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버터필드가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링크트인의 설립자 리드 호프먼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억만장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페이팔의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틸은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피터 틸과 함께 팰런티어를 설립한 CEO 알렉스 카프는 법학 학위를 따고 나서 신고전주의 사회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_p. 21, 1장 〈기술쟁이의 세상, 인문쟁이의 역할〉 중에서
대부분의 기술쟁이들은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검색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카는 데이터에서 최고의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그런 과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로 ‘어떻게’ 처리할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무엇을’ 처리할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데이터에 인간의 직관을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우리는 그 과정에 인간을 포함시킬 방법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에 인문쟁이와 기술쟁이를 둘러싼 인식을 바꾸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둘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전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동등한 일부이기 때문이다._p. 78, 2장 〈빅데이터의 인간적 요소〉 중에서
우버는 자동차의 위치, 교통 상황, 목적지까지의 경로 등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우버는 그 모든 데이터를 보유하기 위해 자체 스토리지를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자체 데이터 센터를 만드는 편이 더 경제적인 때가 올 때까지 우버는 최고의 클라우드 컴퓨팅 옵션 중 하나인 아마존 웹서비스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2000년보다 100배나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우버 앱은 문자 서비스를 이용해서 탑승자와 운전자 사이에서 소통하지만 자체 문자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는 없었다. 우버는 또 다른 종류의 인기 웹서비스 제공자 중 한 곳인 트윌리오의 기술을 사용한다. 트윌리오는 2016년 6월에 성공적으로 상장되었다. 또한 우버는 자체 지도 기술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 맵스를 사용하면 되니까. 탑승자에게 영수증을 이메일로 보내는 데는 센드그리드라는 이메일 제공자를 이용한다. 센드그리드는 온라인 결제 회사이다. 우버의 모든 거래는 브레인트리가 처리한다. 이런 집짓기 블록들은 겨우 몇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블록들이 이 밖에도 아주 많다. _p. 107, 3장 〈기술 툴의 민주화〉 중에서
이렇게 하고 보니 알고리즘을 이용한 선별이 독자들에게 노출되는 콘텐츠를 얼마나 크게 왜곡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고리즘은 더 넓은 시각을 향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점만 강화시키는 ‘메아리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뉴욕 타임스〉 같은 간행물이 자신들만의 1면 헤드라인을 선별해서 이슈 프레임을 짜온 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기능이 ‘데이터를 기초로 한’, 그래서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기술’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_pp. 153-154, 4장 〈지배하지 않고 봉사하는 알고리즘〉 중에서
도널드 노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삶에 포함된 기술이 무언가를 강요한다면 우리의 사고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사회적 판단, 능력, 심지어 생각도 우리를 돕는 기술의 본성에 뚜렷한 영향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그 영향이 너무나 교묘하게 잘 스며들어서 우리는 종종 우리 신념이 기술의 임의성 때문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 기술 전문가들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보지도 않고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것을 제작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기술 전문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기술의 기교에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문제에는 종종 무지하거나 심지어 때로는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_pp. 188-189, 5장 〈더 윤리적인 기술〉 중에서
리마인드를 도입하기 이전에는 부모들과 연락할 방법을 찾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P.A.는 이렇게 회상했다. “유치원생이 부모에게 메시지를 제대로 전해주길 바라야 했죠.” 이제 그는 주머니 속에 언제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700명의 부모를 넣고 다닌다. “중요한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낼 때 써요. 단축수업일이라는 걸 알려줄 수도 있고, 아이가 수업시간에 주목을 받았다고 말해줄 수도 있지요. 선생님들은 리마인드를 이용해서 숙제를 알려줍니다. 또 부모에게 이런 말도 하죠. ‘아이가 오늘 이런 것을 배웠어요. 이런 질문을 해주세요.’ 제 아들은 1학년이라 하는 얘기가 뻔하죠. ‘오늘은 뭐가 좋았니?’ ‘쉬는 시간이요.’ ‘오늘 뭐 배웠니?’ ‘몰라요.’ 그런데 리마인드를 이용한 다음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오늘 도마뱀에 관해 배웠다며? 도마뱀에 관해서 몇 가지나 기억할 수 있니?’ 아이와 연결될 수 있고 집에서 학습을 강화해줄 수 있는 방법이에요.” _pp. 245-266, 6장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그때가 2012년이었다. 현재 오픈거브는 정부가 재정을 관리하는 데 쓰이고, 시민들이 세입이나 세출에 대한 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게 해주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활약하고 있다. 1,000개가 넘는 주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오픈거브를 사용해서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는데, 샌타페이, 마이애미, 피츠버그, 워싱턴 D.C., 미니아폴리스 같은 대도시도 여기 포함된다. 이 서비스는 여기서 더 진화하여 여러 툴을 제공하고 있는데, 당초의 비전이었던 데이터 시각화뿐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더 수월하게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해주는 툴도 제공한다. 핵심목표는 예산을 더 잘 설계하고 정부가 예산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시민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시 공무원들의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_p. 285, 7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중에서
쿠네빈 프레임워크와 아세모글루와 오터의 반복적 · 비반복적 작업 구분을 결합하면 왜 애매모호한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아주 많은 일에서 여전히 아주 소중한 인재로 남을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단순한 상황에서 수행되는 반복적인 육체작업과 인지작업은 엄격하게 몇 가지 모범사례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에 차차 자동화될 것이다. 예컨대 물류에서 포장, 배송, 운반대 위에서의 제품집하 같은 일은 기계가 맡게 될 것이다. 독일의 특송물류회사 DHL은 이미 물류설비의 20퍼센트를 자동화했다. DHL은 백스터라는 로봇을 만든 리싱크 로보틱스와 함께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앞서 말했듯 숙박업에서는 엘리베이터와 복도라는 고도로 통제된 환경에서 이뤄지는 체크인이나 룸서비스 배달 같은 업무가 자동화될 것이다. p. 311, 8장 〈일자리의 미래〉 중에서
1952년 작 《자동 피아노》에서 작가 커트 보니것은 기계 자동화에 관해 “처음에는 육체노동, 다음에는 반복적 노동, 그다음에는 어쩌면 두뇌 노동”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기술적 변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오늘의 두려움을 맹목적 낙천주의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앞날을 짐작할 수 없는 역동적 세상에서 우리를 소외시키지 않을 항구적 능력을 고려한다면, 이 진짜 능력을 공동체 내부에서 개발할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누구고, 무엇을 원하고, 왜 중요한지에 관한 인문학적 질문들을 피해가지 않고 육성하는 것이다. 인문쟁이를 기술쟁이와, 기술쟁이를 인문쟁이와 짝지어준다면 우리 앞에 놓인 나날이 빨라지는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제품, 기관 들은 모두 한편으로는 인문학적이고 한편으로는 기술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상적이다. 그래야만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주도의 미래에서 아직 우리가 모르는 기회를 분 활용할 수 있다. _p. 338, 결론 〈쌍방향 파트너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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