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로 나왔으나 좌회전을 하지 못해 돌아가야 할 도시를 뒤로 하고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유턴지점이 있겠지.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상쾌한 속도를 냈다. 도시와 더불어 내 집 또한 뒤로 뒤로 멀어져 가는 기분이 상쾌했다.
--- p.243 꿈꾸는 인큐베이터 중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p.78
옛날 옛날에, 어느 가난한 집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왔더란다. 식량은 빤한데 군식구가 생겼으니 어서 갈 날만 기다려질 수밖에. 손님 역시 가난한 처지인지라 끼니 걱정 안하는 맛에 마냥 머물고 싶어도 염치가 있는지라, 언제 언제 떠나겠다고 날짜를 멀찌감치 받아놨더란다. 주인은 일각이 여삼추로 그날만을 기다리다 마침내 그날이 와 손님이 떠날 채비를 하는데 문 밖에서 부슬부슬 비가 오더란다. 문 밖까지 나온 손님은 희색이 만면해서 허어 이슬(있을)비가 오네, 하자 주인은 펄쩍 뛰면서, 아닙니다, 가는 비가 옵니다, 라고 했더란다.
--- p.158-159
나는 무서워서 피하던 생각과 이제 두려움없이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잃은 게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고 해도 애통이 조금이라도 덜하진 않았겠지만 남드이 나를 덜 불쌍하게 여기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그건 인정하자. 그러나 내가 나를 아들 딸에 의해 더 불쌍해하거나 덜 불쌍해하지는 말자. 어디선지 모르게 그런 자신이랄까, 용기 같은 게 생겼다. 수녀님들 덕분이다.
---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