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봉암은 19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꼬시래기 횟집이 유명했다. 강 한가운데 원형으로 만든 봉암 수상 꼬시래기 횟집들은 전국에서도 유명하여 많은 미식가들을 불러 모았다. 이곳에는 꼬시래기를 사고파는 장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횟집이름은 ‘봉암장’, ‘여사장집’, ‘청학장’, ‘제일옥별장’ 등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곳을 지나가다가 들러서 꼬시래기회를 먹어본 뒤 여름마다 진해에 들를 때면 반드시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고고학자이자 문인화로 이름난 삼불 김원룡 선생도 진해 웅천패총 발굴현장에 왔다가 웅천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꼬시래기를 먹고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면 마산어시장에서 꼬시래기회를 맛볼 수 있다. 창원의 마산만 일대에는 지금도 꼬시래기가 잘 잡히지만 아침 일찍 어판장으로 가야 구할 수 있다. 조금만 늦어도 이미 다 팔려 나가 버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 28쪽, 미식가들이 평생 잊지 못한다는 꼬시래기, 문절망둑
복어의 맛은 중국 송나라 소동파(1036~1101)가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를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후지산을 보여 주지 마라”고 할 정도로 그 맛을 일품으로 생각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숫복어의 정소인 이리를 중국의 최고 미인인 월나라 서시西施의 젖乳에 비유하기도 했다. 서시 때문에 오나라가 패망했듯이 복어 이리도 맛있지만 잘못 먹으면 죽기 때문에 이같이 비유했을 것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아니라 경국지미傾國之味라고나 할까. 또한, 복어는 ‘福魚’, 즉 복이 많은 물고기로 인식되어 복어 껍질로 지갑을 만들어서 가지면 재물이 불어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것을 복쟁이 욕심이라고도 한다. - 55쪽,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맛의 유혹, 복어
생선 중에도 귀하고 천한 것이 있다. 즉 신분의 귀천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접받는 물고기는 단연코 조기일 것이다. 조기는 모든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향교의 석전대제나 재실의 향사, 시제, 기제사 등에는 물론이고 마을의 당산제나 굿당이나 신당의 제상에도 올라간다. 또한 옛날 환갑잔치나 혼례식, 생일, 돌 등 관혼상제의 중요한 행사 때 차려지는 상에도 조기는 번듯하게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중 참조기는 첫손으로 꼽는다. 참조기가 이렇게 대접을 받는 이유는 조기가 기운을 돋우는 생선 즉 ‘조기助氣’로 알려져 있는데다 비늘이 많아서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기는 민어과에 속한다. 참조기, 보구치〔백조기〕, 수조기, 부세, 흑조기, 민어조기 등이 이에 속한다. 조기는 한자로 머리에 흰 돌과 같은 것이 있어서 석수어石首魚 혹은 종어?魚라 부르며 서해안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남해안에서도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다. 그 종류도 매우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에는 조기가 나는 곳으로 진해(지금의 진동), 웅천(지금의 진해), 창원도호부, 칠원(지금의 구산면) 등 필자의 주변 지역 바다를 모두 언급하고 있다. 현재의 김해, 창원, 고성, 거제 앞의 바다에서도 조기가 잡혔다는 말이다. - 95쪽, 그 맛을 모르면 평생 후회한다는 조기
조선 시대에는 여름 보신탕으로 첫째 민어탕, 둘째 도미탕, 셋째 개장국이라고 했다. 민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쓸개를 제외하고는 버릴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머리 고기와 껍질, 부레를 일품으로 친다. 머리 고기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민어 껍질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밥을 싸 먹는데 이것 때문에 논밭을 다 팔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민어 부레는 그 속에 소를 채워 순대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날것으로도 먹으며, 약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부레는 말렸다가 풀로 만들어 접착제로도 썼다.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어풀이 따로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가는 풀로 쳤다. 일반적으로 풀이라고 하는 아교는 소 껍질을 재료로 한 아교가 가장 대표적이며, 민어 부레만을 이용해서 만든 부레풀〔어교魚膠〕은 각궁 등의 활과 목기의 제작 및 보수에 최고급품으로 쓰였다. 특히 성능이 우수한 각궁, 즉 물소 뿔로 만든 활은 민어 부레풀을 접합한 것인데 궁력이 강하고 크기가 짧아 우수한 무기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민어가 위장을 열어 식욕이 없는 사람의 입맛을 돌게 하고 배뇨를 도와준다고 한다. - 91쪽, 여름 최고의 보양식, 논밭 다 팔았다는 민어 혹은 철갑상어
물메기는 껍질의 얼룩이 표범과 같아서 표어豹魚라고 불렀고 무늬가 있어서 문표어文彪魚라고도 했다. 생긴 모양이 메기와 비슷하고 입이 커서 물메기라고도 부른다. 원래 물메기는 꼼치과에 속하며 정식 학명은 꼬치다. 지역에 따라서는 꼼치, 물미거지, 메거지, 물곰이, 물잠뱅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원래 잡으면 바로 바다에 버려지는 물고기여서 물텀벙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최근 수산과학원에서 미거지, 꼼치, 물메기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각각 다른 물고기라고 밝혔다. 미거지는 울진 이북 해안에서 잡히며 가장 크고 귀한데 색이 누런색이다. 꼼치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잡히고 중간 크기이며 얼룩무늬로 회색이다. 물메기는 주로 서남해안에 잡히고 가장 작은데 약간 누렇고 붉은색을 띤다. 이들을 얼핏 보아선 서로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 95쪽, 천대받던 물고기에서 효자 어종으로 변신한 물메기, 꼼치
홍어와 가오리의 구분법은 우선 코의 모양이 홍어는 뾰족하고 가오리는 둥글거나 모가 나 있다. 둘째는 생식기 부분인데 홍어는 수컷의 생식기가 둘이어서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다리처럼 두 가닥의 생식기가 나 있지만 가오리는 없다. 셋째는 꼬리인데 홍어는 굵은 꼬리 윗부분에 지느러미 2개와 가시가 2~4줄 늘어서 있지만 가오리는 가시가 없다. 넷째는 치인데 가오리는 치가 있고 홍어는 없다. 가오리는 날것으로 회, 국, 무침, 구이, 찜을 하고 말려서 찜으로 요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홍어는 싱싱한 것을 구하기 힘들므로 대개의 경우는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쏘는 맛이 나도록 삭혀서 묵은 김치와 비계가 있는 돼지 수육을 합쳐서 먹는 삼합이 유명하다. 이때 막걸리를 곁들이므로 ‘홍탁’으로도 유명하다.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는데 ‘일코, 이애, 삼익’이라는 말이 있다. 즉 홍어를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것이 첫째가 홍어의 코, 즉 홍어 앞의 뾰족한 부분이며, 둘째가 홍어 내장, 즉 홍어 애이며, 셋째가 날개, 즉 지느러미의 결이 진 부분과 꼬리의 뼈가 들어 있는 오도독뼈 부분이고, 마지막이 몸통 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홍어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꼽는 별미는 홍어의 아가미인 구섬치인데 이는 갓 잡은 신선한 홍어에서만 맛볼 수 있다. 하루만 지나도 먹지 못하므로 직접 잡는 사람만 아는 진미라고 한다. - 117쪽, 가오리와 홍어, 무엇이 다를까 가오리, 홍어
청어는 그 이름에서 보듯 대표적인 등 푸른 생선이다. 『우해이어보』에 “진청眞鯖은 청어다. 길이는 한 자 다섯 치이며, 맛은 감미롭고 부드럽다. 구워 먹으면 그 맛이 더욱 좋으므로 참으로 진귀한 생선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주에서 나는 청어를 제일로 친다. 한나라 때 다섯 제후들이 매우 호사스러워서 청어를 즐겼는데, 후세 사람들이 물건 중에서 귀한 것을 오후청五侯鯖이라 빗대어 말했다”고 청어의 크기와 맛을 소개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즐겨 먹기로는 구워 먹는 방식을 제일로 쳤다. - 141쪽, 겨울철 별미의 대명사, 과메기 청어
담정은 어희魚?를 숭어의 한 종으로 봤다. 그는 『우해이어보』에서 “숭어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에 어희라는 종류가 있는데, 민간에서는 이것을 ‘숭어 사촌’이라 부른다. 또 ‘모장’이라는 근연종도 있다. 모두 숭어와 비슷하지만, 숭어보다 조금 작다. 그중에 가장 작고 색깔이 흰 것을 ‘아지 모장’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 글에서 보듯 담정은 숭어보다 조금 작아 숭어 사촌이라 불리는 어희와 그 가운데서 가장 작은 몸집을 가진 하얀 녀석을 아지 모장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작으니 아지阿只다.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에서 보듯 아지 또는 아기는 어린 것을 이르는 우리 옛말이니 그렇다. 이렇듯 같은 어족에 대해 이런 다른 이름을 가진 숭어는 농어, 방어, 전갱이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출세어出世魚다. - 176쪽, 숭어 중에서 가장 어린 모치
도다리를 포함한 가자미목 가자밋과와 넙칫과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목比目이라 한 눈의 위치이다. 『우해이어보』에서는 “눈이 나란히 붙었고, 등은 매우 검다”고 했다. 이것만으로는 가자밋과의 어느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비목이라 한 것은 변태 이후 눈이 한쪽으로 쏠리고, 배를 바다 바닥에 붙이고 생활하는 습성 때문에 눈이 등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중국에서는 이 고기를 몸의 한쪽에만 눈이 있다고 여겨 비목어比目魚라 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설 속의 외눈박이 물고기로 암수 두 마리가 함께 있을 때만 제대로 하나가 된다고 하여 비익조比翼鳥와 더불어 연인과 부부의 금슬을 상징했다. 종종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처럼 사랑 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 185쪽, 옛날에는 봄도다리가 아니라 가을도다리였다, 도다리
미더덕이라는 이름은 물+더덕으로 알려져 있다. 물은 여러 음으로 변형되는데 미나리, 무지게, 몰밤, 말밤 등에서 앞에 붙은 ‘ㅁ+모음’은 모두 ‘물’이다. 즉 물에서 나는 더덕 모양의 생물, 즉 물더덕이라는 의미이다. 현재 창원시 진동 미더덕은 전국 미더덕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남해안 진동만의 청정 해역에서 자연의 혜택을 물씬 받으면서 자라 향이 독특하면서 입안으로 퍼지는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미더덕’은 노화 예방 성분과 항암 효과,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고 동맥경화, 고혈압 및 뇌출혈의 예방에도 아주 좋다는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미더덕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누리게 됐다. 미더덕은 불과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지방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다 생물이었다. 반면 창원 일대에서는 봄철이면 미더덕 찜, 미더덕무침, 냉이 미더덕 된장찌개 등으로 요리되어 애용됐다. 최근에 미더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지자 미더덕 요리도 다양해졌다. 미더덕 영어조합營漁組合에서는 미더덕 젓갈 및 미더덕 내장을 가공한 덮밥을 특허를 내면서 요리법이 더욱 다양해진 것이다. - 194쪽, 물에서 나는 더덕, 미더덕
옛 문헌에서는 게를 해蟹 자로 쓰기도 했지만 『현산어보』 같은 책에는 해蟹 자와 함께 궤? 자로도 적었다. 바로 참게를 한자의 뜻과소리를 빌려 진궤眞?라 한 것이 그런 사례다. 게를 궤라 한 것은 남송南宋사람 나원(1136~1184)이 쓴 『이아익爾雅翼』에 “게는 다리가 여덟 개에 집게발이 두 개다. 여덟 개의 다리가 굽어져 무릎을 꿇은 형태를 하고 있으므로 궤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개介라고 적기도 했는데, 『현산어보』에서 갑각류와 패류를 개류介類로 분류한 데서 그런 사례를 볼 수 있다. 옛 문헌에는 게의 특징으로 갑甲으로 묘사된 단단한 껍질과 옆으로 가는 것을 주로 묘사했다. 이런 특이한 보행법은 일찍이 『주례』의 고공기에 “옆으로 가는 것이 게의 한 습성이다”라고 한 것이 시초였다. 이와 같은 게의 보행 특성에 빗대어 옆 방旁 자를 써서 방해旁蟹라거나 횡행개사橫行介士라 의인화해서 부르기도 했다. 또한 후위後魏의 장읍張揖(220~265)이 쓴 『광아廣雅』 같은 책에는 암수를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대개 배꼽[배마디]이 날카로운 놈이 수놈이고, 배꼽이 둥근 놈이 암놈이다”고 적었다. - 197쪽, 게
대게는 담정이 『우해이어보』를 쓴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우해를 비롯한 남해안에서도 두루 잡히던 수산자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경북도 연안의 냉수대에서부터 울릉도와 독도 근해, 울진(죽변, 후포), 영덕(강구, 축산), 포항(구룡포), 울산(정자) 등에서 주로 잡힌다. 이런 사실은 당시와 지금의 해양 환경에 큰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하나의 지표로서 『우해이어보』에 실린 대게와 청어가 잡히던 시기에는 그즈음의 해양 환경이 소빙기小氷期였음을 일러 주고 있다. 『우해이어보』에는 대게를 붉은 게, 자해紫蟹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자해는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이름으로 나오는데, 그 까닭은 몸빛이 붉기 때문이다. 달리 대게를 죽해竹蟹나 죽촌竹寸으로 불렀고, 다리의 마디가 여섯이라 죽육촌竹六寸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실제 다리를 떼어 보면, 네 마디뿐인데 짧은 두 마디는 몸통에 붙어 있다. 달리 몸집이 커서 대해大蟹, 발〔다리〕을 강조하여 발게라 부르고 발해拔蟹로 적기도 했다. - 199쪽, 대게
단원 김홍도(1745~?)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에 나오는 게가 참게다. 제목은 그림처럼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으로,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으레 이런 그림에는 재밌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림에 나오는 갈대의 한자는 노蘆 자인데, 이 글자는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려 주는 고기인 려? 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한 것이다. 소리 값이 같은 갈대를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지는 게처럼 반드시 과거에 합격하라는 축원을 담았다.
또한 그림에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이라는 화제가 있는데, 그 뜻은 “바다 용왕이 계신 곳에서도 게걸음 포기하지 말고 소신껏 횡행橫行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비록 용왕이 있는 자리라 하더라도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행동하라는 뜻이다. 불현듯 이 그림 속의 게가 공천 때문에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요즈음 정치인들에게 “나처럼 소신 행보하라고 전하라”고 일갈하는 듯하다.- 203쪽, 참게
담정은 녀석의 특징을 “게와 비슷하지만 색은 온통 희다. 크기는 참게와 같다. 흙냄새가 난다. 이곳 사람들은 흰게라고 부른다”고 했다. 크기가 참게와 같고 몸이 흰색인 게라면 달랑게를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몸빛이희다고 한 것은 모래 색과 비슷한 밝은 미색을 그리 본 것일 게다. - 208쪽, 달랑게
전복은 『우해이어보』에는 복鰒, 『현산어보』에는 복어鰒魚, 『전어지』에는 생복生鰒으로 나온다. 담정은 『우해이어보』에서 “전복도 조개 종류다. 전복 껍질의 색깔도 조가비 색깔과 같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복 껍질을 가짜 조개라고 한다. 전복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어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살아 있는 것을 생포生包라고 하고, 말린 것을 전복全鰒이라고 한다. 포는 방언으로 전복이라는 말이다. 『한서』 「왕망전」에서 ‘전복을 먹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고 했다. 이 글에서 왕망이 전복을 먹었다고 하는 고사는 전한前漢에 이어 신新을 세운 왕망(BC45~AD2)이 건국 스트레스로 입맛을 잃고 병서를 읽으며 술과 전복만을 겨우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아울러 『현산어보』는 조조(155~220)도 전복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에게 한 주州에서 바친 양이 겨우 100마리뿐이었다고 하니 그것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알 만하다. - 222쪽, 전복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