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수근의 나이는 마흔셋입니다. 미술계의 중진으로 불려도 좋을 나이에 낙선이라니……. 박수근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력도 없고 스승도 없이 오직 그림만을 위하여 매달려 왔던 지난 세월이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변변한 개인전 한 번 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뜻을 갖고 걸어온 화가의 길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박수근-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본문 37쪽)
그림 중에는 눈에 보이는 색이나 선을 중요시하는 그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기 때문입니다. 담겨진 뜻을 알고 났을 때 더욱 좋아 보이는 그림이 바로 '세한도'와 같은 그림이지요. 가만히 보면,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림을 그릴 때, 눈에 보이는 것을 억지로 모두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그림입니다. (〈김정희-난초를 닮은 서화가〉 본문 35쪽)
따라 그리기는 공부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중략 ~) 그러나 신사임당은 중국의 그림본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우리 것으로 바꾸어 그리기도 하고, 검은색인 먹을 주로 써서 표현하는 수묵화 대신, 색을 칠하여 그리는 채색화로 풀과 벌레들을 그렸습니다. (〈신사임당-풀과 벌레를 즐겨 그린 화가〉 본문 21쪽)
물질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또 이미 발달된 문명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만 살 수도 없습니다. 백남준은 자연과 문명 모두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텔레비전 정원'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텔레비전과 삶의 터전인 자연을 서로 친구가 되게 하였습니다. (〈백남준-새로운 세계를 연 비디오 예술가〉 본문 28쪽)
느낌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을 추상화라고 하는 거야. 사랑과 행복은 차희처럼 많은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이나 글로 사랑과 행복에 대해 말했지만, 모두를 이해시키기는 힘들었어. 아직도 사람들은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단다. 아저씨는 그런 것을 그림으로 그리려 했지. 생각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누구나 그것을 보면 사랑과 행복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 (〈김환기-꿈을 그린 추상화가〉 본문 8쪽)
"바보란 덜 된 것이지요. 예술도 끝이 없는 것이어서 언제나 덜 될 수밖에 없지요." 그의 말처럼 '바보 산수' 그림을 보면 덜 그린 듯, 엉성한 듯 보입니다. '바보 산수'는 산수화이지만 자연의 풍경만 나오지 않고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 늘 같이 나옵니다. (〈김기창-장애를 딛고 선 천재 화가〉 본문 32쪽)
정선은 서른여덟 살 때 위수라는 첫 벼슬 자리를 얻었습니다. 낮은 벼슬이었지만 정선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된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하였습니다. (〈정선-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화가〉 본문 26쪽)
체면은 틀에 박힌 생활 방식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만들려면 틀에 박힌 것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자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체면 같은 것은 진작 다 잊어버렸다."고 말하던 장욱진에게 덕소의 외딴 화실은 용기의 마음을 기르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장욱진-새처럼 날고 싶은 화가〉 본문 29쪽)
이중섭 자신은 게, 물고기, 소, 닭, 아이들과 어울려 뒹구는 친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띱니다. 장난을 하면 서로가 서로를 잊어버립니다. 이중섭은 사람과 동물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장난이 필요했던 거지요. (〈이중섭-아이를 닮으려는 화가〉 본문 32쪽)
고양이, 말, 소, 양, 뱀 등 많은 동물을 돌로, 테라코타로도 만들었습니다. 흔히 뱀은 길고 긴 형태로 생각하지만 권진규는 네모 난 돌 속에 숨어 있는 뱀의 모습을 끄집어냇습니다. 권진규는 가만히 돌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어떤 형태가 느껴지고, 그것을 찾아서 안으로 쪼아 들어갑니다. 그러면 돌에 숨겨져 있던 형태가 나타나게 되지요. (〈권진규-흙을 구운 조각가〉 본문 26쪽)
아름다운 금강산을 직접 본 뒤 많은 금강산 그림을 그린 김홍도는 이전과는 다른 세련된 화풍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화를 더욱 사실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김홍도-조선을 그린 화가〉 본문 28쪽)
오윤은 고된 노동으로 생긴 그들의 팔다리, 어깨 근육의 꿈틀대는 모습을 많이 그립니다. 막걸리와 안주를 마련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노인정에 갑니다. 오윤의 친구들도 자주 찾아와 가오리 사람들과 함께 슬에 취하고 노래합니다. 그는 동네 할머니의 작게 오그라든 가슴이 온 세상을 품은 것처럼 넉넉하다고 좋아했습니다. (〈오윤-희망을 새긴 판화가〉 본문 18쪽)
이인성 수채화의 특징은 연속적인 짧은 터치입니다. 1934년에 그린 '아리랑 고개'와 '여름 실내에서'는 팔레트의 물감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원색의 작은 터치들로 가득합니다. (중략~) 이인성은 한 가지 화풍만 고집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이인성-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본문 17쪽)
오지호에게 항구는 마음의 안식처였으며, 바다는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출항을 앞둔 배에서 느낀 생생한 감동을 거침 없는 붓질로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꿈꾸던 자유로운 세상이 화면에서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오지호-빛과 색채의 화가〉 본문 32쪽)
그는 돌의 질감과 나무의 결을 최대한 살려 조각했습니다. 작품에 지나친 기교를 부리려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단순한 형태의 작품을 눈을 감고 만져보면 미묘한 곡선의 흐름과 표면의 우툴두툴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답니다. 이처럼 돌이나 나무를 억지로 다듬지 않고 재료가 지닌 형태를 거의 그대로 살려 조각을 한 것은 사물의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소중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종영-생각을 새긴 조각가〉 본문 35쪽)
관찰과 사생은 상상의 경치를 주로 그렸던 이전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입니다. 현실적인 것을 중시하는 그의 실학적인 사상은 대상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사생하는 방식으로 이어졌어요. 윤두서가 그린 인물은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말은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윤두서-시대를 앞서간 선비화가〉 본문 30쪽)
사람은 다 힘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누구든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자기 안의 힘을 깨닫게 되지요. 이런 힘이 있는 자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때 평생 처음으로 나의 힘을 알게 되었고, 행복했습니다. (〈나혜석-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 본문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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