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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왕, 루프스 3

늑대왕, 루프스 3

윤하영 | 뮤즈 | 2018년 01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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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66g | 140*210*30mm
ISBN13 9791104915666
ISBN10 1104915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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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어깨에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유채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찢겼던 어깨는 깨끗한 붕대로 감싸여 있었다. 흐릿한 초점을 맞추었다. 화려한 천장이 보였다. 유채는 그나마 멀쩡한 왼쪽 팔로 침대를 짚으면서 일어섰다.
“일어났군.”
잘 알고 있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에 증오스러운 남자인 루프스가 누워 있었다. 그의 청회색 짐승의 눈이 유채를 담았다. 유채는 몸을 뒤로 빼려고 하였으나, 루프스(Lupus: 늑대 수인의 수장이자 수인들의 왕의 호칭)가 빨랐다. 루프스는 유채의 왼쪽 팔을 잡아당겨서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였다. 유채는 루프스의 가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루프스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유채의 목선을 쓸었다. 루프스의 손끝에 유채의 목에 걸려 있는 금색의 고리가 걸렸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재미?
유채는 실소를 터뜨렸다.
“당신한테는 사람 목숨이 오고 가는 게 재미인가요?”
죽을 뻔했다. 자신과 블루벨 모두 끔찍하게 죽을 뻔하였다. 자신은 둘째 치고 블루벨이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의 변덕이 아니었으면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 암컷 토끼는 죽든지 살든지 내 알 바가 아니지만, 나는 내 펠릭스 다우스가 망가지도록 두지는 않아, 레티티아.”
유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람의 죽음과 삶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듯이 구는 루프스의 오만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펠릭스 다우스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고 자신의 목에 개 목걸이 같은 것을 걸어두고 사람을 제 소유의 물건인 양 다루는 루프스의 뻔뻔함이 두 번째 이유였다.
“난 레티티아가 아니라 한유채예요! 그리고 난…… 아악!”
루프스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유채의 오른쪽 어깨를 억센 손으로 눌렀다. 유채는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수그렸다.
“마레 위르(수인이 아닌 보통 인간)들은 말이야. 너무 오만방자해.”
유채의 어깨를 누르는 루프스의 손의 힘이 강해졌다. 유채는 너무 아파서 이제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상처가 다시 터질 것 같았다.
“같잖은 자존심에 제 처지도 자각 못 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지.”
루프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유채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레티티아, 너처럼.”
루프스의 입꼬리가 비웃음을 품고 올라갔다. 유채의 어깨를 감싼 하얀 붕대에 핏방울이 번지기 시작했다.
“멍청하고 한심한 나의 레티티아에게 내 친절히 설명해 주자면 펠릭스 다우스는 나 루프스의 살아 있는 소유물을 뜻하지. 마레 위르의 말로 하자면…… 애완동물쯤 되겠군.”
루프스가 마치 개를 다루는 것처럼 유채의 턱을 만졌다. 보통 때였다면 유채는 굴욕적인 대우에 그의 손을 쳐 내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가 누르고 있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 자존심으로 저 증오스러운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내가 너의 옷을 찢어발겨서 배를 맞추고 너를 품어도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고, 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누구도 내게 뭐라 할 수 없지.”
꽤나 잔혹한 말이었다. 루프스는 눈을 곱게 접었다.
“나는 잔혹한 만큼 너그럽고 자애롭지. 나는 내 마음에 드는 펠릭스 다우스에게는 상을 내려줄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다, 레티티아.”
유채는 헛웃음을 뱉었다. 너그럽고 자애로워? 지금 다친 어깨를 누르고 있는 자가 할 말은 아니었다. 결코 어울리는 말도 아니었다. 사람을 애완동물 취급하는 이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루프스는 유채의 건방진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펠릭스 다우스는 제게 공포심을 가지고 복종해야 했다. 제 앞에 있는 암컷 마레 위르는 공포심은 차치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표독스러운 눈으로 제게 대들고 있었다.
건방져도 너무 건방졌다.
루프스는 유채의 어깨를 더 강하게 눌렀다. 이미 어깨의 상처는 다시 터진 지 오래였다. 루프스의 악력에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붕대를 누르고 있는 루프스의 손끝에도 묻었다. 유채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루프스의 입아귀가 비틀렸다. 역시 수인이나 마레 위르나 동물이나 맞아야 말을 잘 듣는다. 누군가를 복종시키는 데 폭력과 공포가 가장 효과적임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루프스는 유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한없이 약한 암컷 마레 위르이지 않은가? 루프스는 유채의 다친 어깨를 쥐고 있는 손의 악력을 더 강하게 했다.
“아악!”
“그러니, 내게 아양을 떨어봐, 레티티아.”
마침내 유채의 입에서도 울음소리가 났다. 어깨의 고통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유채의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오고 나서야 루프스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애완동물이면 애완동물답게 주인한테 꼬리도 흔들고 재롱도 부리고 아양도 떨어야지? 안 그래, 레티티아?”
루프스는 잔인한 말을 속삭였다. 유채는 어깨의 고통에 루프스의 말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루프스가 유채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자신의 가슴팍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한쪽 손을 들어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가련한 레티티아. 미안하지만, 나는 우는 암컷은 별로 안 좋아해.”
루프스는 피가 배어 나온 유채의 입술을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나는 내 물건에 흠집이 나는 것도 싫어해.”
“……당신이 한 짓이잖아.”
유채는 이를 악물었다. 저 남자의 장단에 놀아나기 싫었다. 자신은 저 남자의 애완동물도 아니고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짓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갑작스럽게 이 이상하고 요상한 세상에 떨어진 막 수능을 끝낸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었다.
루프스는 아직도 고분고분해지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유채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피를 끓게 하는 무언가는 오랜만이었다. 저 건방진 눈동자가 제 앞에서 유순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한 수인으로서의 정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저 건방진 암컷 마레 위르가 제게 복종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레티티아, 너는 복종하는 법부터 배워야겠군.”
루프스는 유채의 목에 걸려 있는 구속구를 손으로 쓸었다. 장수를 잡을 수 없을 때는 말을 쏘는 법이었다.
“레티티아, 네 시중을 들어주던 암컷 토끼. 이름이 블루…… 벨? 이었던가? 그 아이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있나?”
유채의 눈에 갑작스럽게 광채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유채는 블루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지 못했다. 씨알도 안 먹히는 발악이라는 것을 알아도 유채는 루프스에게 소리쳤다.
“블루벨이 잘못되면……!”
“내 명을 어긴 그 건방진 암컷 토끼는 지금 지하 감옥에 있지, 춥고 더럽고 험한 곳에 말이야.”
루프스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그의 몸 위에 있던 유채도 움직이게 되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상처가 터진 어깨는 욱신거렸다.
“약하디약한 토끼 일족은 그 지하 감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죽겠지.”
“블루벨이 뭘 잘못했다고 그 애를 죽이려고 해!”
유채는 멀쩡한 왼쪽 팔로 루프스의 멱살을 잡았다. 블루벨은 저자의 명에 따라 삼 일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자신에게 약간의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준 잘못밖에는 없었다.
“여기 내 침실에서 머무르며, 나를 만족시켜 봐, 레티티아.”
루프스가 유채의 팔을 떼어내면서 속삭였다.
“재롱을 떨든, 애교를 피우든, 암컷인 것을 이용하든 상관없으니, 나의 펠릭스 다우스로서 주인인 나를 즐겁게 해봐. 그럼 그 암컷 토끼를 풀어주지.”
유채의 눈빛이 흔들렸다. 루프스는 그런 유채의 눈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저 건방진 암컷 마레 위르는 자신의 펠릭스 다우스로서 굴복할 것이다. 그가 키운 사나운 맹수들도 그에게 굴종했는데, 힘없는 암컷 마레 위르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루프스는 유채의 건방진 눈을 도전적으로 바라보았다.
“어디 한번 애교를 떨어봐. 나의 귀여운 펠릭스 다우스 레티티아.”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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