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남아도는 재산을 사용하는 일곱 가지 좋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가 대학을 세우는 것이고, 둘째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병원이나 기타 구호소를 설립하는 것이며, 넷째는 대중을 위한 공원이나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핍스 씨가 기증한 온실도 좋은 사례일 것이다. 다섯 번째로, 강연이나 음악 공연, 혹은 모임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도 좋다. 물론 무료로 대여하면 좋겠지만 소액의 대관료를 받아도 상관없다. 여섯 번째로는 공공 수영장이 있고, 마지막으로 특히 가난한 지역에 종교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좋다._39쪽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런 종류의 교육기관을 설립하려는 생각은 원래 우리의 유일한 아들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들 녀석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에서 여기 학교를 세우고, 릴랜드의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 것입니다._74쪽
스탠포드는 실용적인 지식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학생들에게, “학자가 되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건전한 아이디어도 개발해보십시오. 그리고 후일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이 학교에서 꼭 얻어가야 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를 위해 스탠포드 대학은 일반적인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 외에도 도시공학, 기계공학, 전기공학, 속기, 타이핑, 농업 등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대학에서“조직 및 협력할 권리와 그 이점”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는 개인들이 상호협력하는 조직을 결성할 때 이를 보호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이런 조직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의 독점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의 조직을 보호하는 법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노력한 결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_77쪽
필라델피아에서 지라드는 일할 때는 차갑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는 꼭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1793년 7월 하순 지라드가 사는 집 근처인 워터 가 인근에서 치명적인 황열병이 발생했다. 도시는 일순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문을 닫았고, 교회마저 신도를 받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으면 떠나갔다. 흑인노예들이 통나무를 실은 마차 위에 시체를 얹어 묘지로 실어 날랐고, 그곳에서 장례식도 없이 시체를 묻었다. …(중략)… 이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는 와중에 발행되고 있던 유일한 신문 〈페더럴 가젯Federal Gazette〉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실었다. 시청 소속 사회복지사들도 다 죽거나 도시를 떠나서 세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부시 힐에 있는 병원에서는 누구든 오염을 정화하고, 혼돈을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 목숨이 위태로운 작업에 지원했다. 놀랍게도 그 중 한 사람은 부유하고 무뚝뚝한 외국인 스티븐 지라드였다._100~101쪽
프랫은 오랫동안 기술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남녀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태생에 상관없이 인간은 사회에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수학이나 영문학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선생이나 사무원이 되는 건 아니다. 분명 사회 여러 분야에서 기술자와 목수, 숙련공이 필요한 것이다._129~130쪽
학생들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을 배우겠지만, 그 다음에는 당연히 돈을 어떻게 저축해야 하는 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가진 돈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가를 배워야 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돈을 버는 데 그치지 않고, 절약과 적절한 자금관리를 통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_134쪽
로웰 인스티튜트는 공개강좌를 통해 대학이 대중들을 찾아가게 했을 뿐 아니라, 이 거대한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했다. 재단은 젊은이들에게 쓸모 있고 명예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껴 지식을 습득하게 했다. 도시의‘황무지’들이 점점 더 많은 이민자들로 채워짐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지식과 윤리적 지원을 위한 센터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_160쪽
당장 쓸 수 있는 돈으로는 가난한 농가 출신의 학생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짓도록 했다. 이곳 학생들은 졸업 즉시 200달러의 융자금을 받을 수 있으며, 매년 5퍼센트의 이자를 갚으면 5년 후 200달러 전체를 선물로 받게 된다. 또한 자신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젊은 부부들이 얼마나 출발에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여성을 위해 300달러의 지원금을 배정했는데, 지금도 매년 이 돈을 받는 신부가 100명이 넘는다. 스미스가 사망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지금도 수많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그가 남긴 유산의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다._170쪽
학교는 기부자의 뜻을 고려하여 산업교육의 커리큘럼을 세심하게 작성했다. 제임스 릭의 유증대로 학교는,“훗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산업적 기술을 철저하게 가르치기로”했다. 전 학기를 다 마치는 데는 4년이 걸린다. 학생들은 3학년 1학기가 되면 전공을 정해서 남은 기간 동안은 그것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일반적인 과목 외에 전문분야로, 대목일, 대장간, 몰딩, 기계 및 건축 설계, 목공예, 의상, 모자제작, 요리 등이 있다. 이 학교를 나오면 대개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고 한다. 교사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_210~211쪽
릭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광범위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는 것이 훌륭한 인간이 갈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인생의 말년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자체로는 내면의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_225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