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가업인 전파상을 물려받으며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막대한 부채도 고스란히 떠안으셔야 했다. 할아버지가 지신 빚은 어마어마했다. 당신의 이름으로 얻으신 빚에 더해 친척들의 빚보증까지 서주며 불어난 부채가 무려 3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업을 물려받고 나서 몇 채의 건물을 팔았지만, 그것으로도 빚은 절반 정도밖에 갚지 못하셨다. 여전히 30억 원의 절반에 가까운 거액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죽자사자 일에 매달리셨다. 실제로 그 무렵 나는 아버지가 느긋하게 쉬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던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희망을 포기하고 자살하셨다.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 회한으로 얼룩진 사건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그분이 돌아가신 뒤 나온 보험금으로 청산했다.
한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처음엔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숨겨진 빚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당신의 남동생, 즉 내 작은아버지의 보증을 서시는 과정에 생긴 빚이 4,000만 원에 달했다. 작은아버지는 행방불명 상태였다.
나는 아버지의 형제분들에게 빚을 나누어 갚자고 울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매정하게 거절했다. 결국, 그 빚은 박복한 어머니가 갚으셔야 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빚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후 다시 남은 가족들의 몫으로 떨어졌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작은아버지의 빚까지 가엾은 어머니가 온전히 떠맡으셔야 하는 암담한 현실이었다.
“아, 돈, 돈! 돈 때문에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생기는가!”
톨스토이의 이 말이 뼈에 사무치는 슬픔으로 내게 다가왔다.
― 본문 중에서 (67~68p.)
바야흐로 돈으로 돈을 사고, 이자가 이자를 낳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본주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3년마다 세계 외환 거래를 발표하는데, 2013년 1일 거래액은 평균 5조 3,450억 달러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세계 무역액(수출과 수입의 합계액)의 평균 거래액이 2013년에 1,000억 달러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액수인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JETRO 2014년판 참조).
오늘날, 날마다 전 세계 무역액의 53배 이상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인터넷을 통해 외국 채권과 해외투자 자본거래, 투기자금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세계를 누비는 돈은 현물이나 지폐, 또는 화폐의 모습이 아닌 디지털 화면에 찍히는 숫자로 전자 공간 속을 누빈다. 그 누구도 이 돈을 규제할 수도 없고, 심지어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21세기의 돈은 과연 신인가? 아니면, 인간을 홀리는 요물인가? 물론 돈은 신도 요물도 아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이자 시스템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의지를 갖고 바꾸려고 꾸준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돈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던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다.
저명한 동화작가이자 철학자인 미하엘 엔데(Michael Ende)는 말한다.
“돈의 힘은 대단히 강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79p.)
“돈도 노화해야 한다”라는 실비오 게젤의 말은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당신은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마음 한구석에 ‘아무리 그래도 돈의 가치는 영원한 법이야’라는 생각의 씨앗이 비죽이 싹을 틔울 수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에서 가치가 줄어드는 돈이라는 예를 퍼뜩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계에 ‘노화하는 돈’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작은 마을이 그 역사적 무대다. 세계 대공황 이후 벌어졌던 일이다. 이 마을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짊어져야 했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대공황의 악영향 탓이었다. 이 마을의 인구는 4,300명에 불과했다. 이곳에 무려 500여 명의 실업자와 1,000여 명의 예비 실업자가 있었다. 돈이 돌지 않아 순환이 정체되었고,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지속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촌장은 현행 화폐와 병행하여서 한 달에 1%씩 가치가 줄어드는 돈을 발행했다.
이 돈을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가치가 줄어든다. 그러자 주민들은 앞다투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물건을 사들였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번 사람도 버는 족족 그 돈을 썼다. 돈이 돌면 경제효과가 커진다. 실제로 경제활동은 몇 배로 활발해졌다. 또 돈을 빌려도(가치가 줄어드는 돈이었기에) 이자가 붙지 않는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마을은 산더미 같은 부채를 모두 말끔히 청산했고 실업자도 사라졌다. 이 실험적인 사업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개입해 금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실비오 게젤이 주창한 ‘노화하는 돈’이라는 개념은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가 주창했던 이론과도 닮았다. 슈타이너는 게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다. “돈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는 엔데의 말은 강력하고 또 타당하다. 그의 말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일본의 잔혹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기업가 클린트 W. 머치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돈은 비료와 같다. 골고루 뿌리면 도움이 되지만, 한곳에 쌓아두면 악취를 내뿜는다.”
― 본문 중에서 (81~82p.)
자산관리사들은 하루 24시간 돈 버는 테크닉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터라, 실제로 효과가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아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자칭 자산관리사라는 사람들이 항상 못마땅하다. 돈 버는 테크닉을 운운하기 전에 고객의 인생 계획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객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으고 싶어 하며 왜 모으고 싶어 하는지, 또 모은 돈을 무엇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목적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다. 돈에 관해서라면 눈앞의 푼돈에 얽매이는 ‘수단 중심의 사고’가 아닌 미래의 삶의 방식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 혜안은 바로 ‘목적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다. 10억 원 정도는 모으고 싶다는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인생 계획을 세워놓았기에 10억 원이나 필요하냐”라고.
내 질문에 그는 우물쭈물하며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분명한 목적 없이 무작정 돈을 모으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내가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재정 계획을 세우기 전에 인생 계획부터 세워라.’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돈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1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곰곰이 고민하고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목표액을 모으는 일을 달성한 뒤 빈둥빈둥 놀며 지낼 생각이라면 10억 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런 생산적인 일도 보람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빈둥 노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돈을 모으는 일과는 상관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일하는 게 좋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그렇다. 게다가 몸을 움직여 부지런히 일하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관점을 바꾸면, 일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 본문 중에서 (108~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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