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일 년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쓸 때, 작가는 내 어머니의 인생을 조명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이 작품을 선보이면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이제 내 이야기구나 싶어, 먹먹해졌다.
인간의 삶이란 누구의 삶이라도 생로병사의 틀 안에서 반복되는, 별다를 것 없다는 진리를 넘어, 여전히 그 존재 자체로 숭고하다는 진리도 다시 만났다.
_ 4페이지, 2017 작가의 말 중에서
누가 뭐래도 내 어머닌 내게 부처님이요, 예수님이요, 소크라테스에 세상 모든 성인과 현인들의 현신現身 그 자체셨다. 일자무식이어서 지식을 자랑할 일이 없으셨고, 수줍어 말을 못 해 수다를 일삼는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하셨고, 세상의 영리한 이치를 알지 못해 재물 한 푼 남기지 않으셨지만 생각 있는 자라면 생각해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을 자랑하는 성인과 현인이 어디에 있었으며, 재물을 모은 성인과 현인 또한 어디에 있었는가! 그저 무식하니 누구에게나 머릴 숙이고, 수줍어 말 못 하니 드센 말로 사람들 가슴에 비수를 꽂지 않고, 세상의 재물을 모을 만큼 영리한 이치를 알지 못하니 없는 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늘 자식처럼 형제처럼 자신처럼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기셨다.
_ 5페이지, 1996 작가의 말 중에서
인 희 평생을 으릉으릉대던 양반이, 약에 취해, 입가에 침 흘리는 것도 모르고.. 애처럼 자 네.. (고개 돌려 창가 보며, 집에 모시고 가, 어떨까 싶다, 막막한, 할머니나 제 처지나, 서글픈)
연 수 (백미러로, 오는 차 살피며, 운전만 하며, 담담히) 엄마, 이건 아냐. 할머니 치매 걸리고 3년 동안, 가족들 전부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시 6개월도 안 돼서, 집으로.. 엄마, 그냥 오늘은.. 할머니 휴가 나온 거라 치고, 할머니, 다시 요양원으로 모시자, 어? 내가 좋은 요양원 알아볼게.
인 희 (창가 보며, 서글퍼도, 일상적으로 덤덤히) 좋은 요양원? 어디? 니 아버지 말대로 약 많이 주는 데? (연수 보며) 모셔봐야 이제 뭐 얼마나 모셔. (창가 보며, 담담히) 정신만 들면, 전화해 우는 거, 달래는 것도 힘들고... 놔둬, 그냥. (할머니 머리에 검불이 붙은 것 떼어내며, 작게, 구시렁대듯, 서글픈) 우리 사이.. 정도 있고, 그쵸, 어머니?
_ 18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017 중에서
인 희 (모질게, 눈물 나도 아랑곳없이) 죽어!
정 철 미쳤어? 여보, 왜 그래, 정신 차려!
인 희 (할머니에게) 죽어!
정 수 (인희를 안고 꺽꺽 울고)
정 철 정신 차려, 여보!
인 희 (맘에 담아뒀던 모든 걸 터뜨리며, 악을 쓰고 울면서) 어머니,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나랑 같이 죽자! 나 죽으면 어머니 어떻게 살래?! 나랑 같이 죽자! 애비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넋 놓고 울고) 나랑 같이 죽자! 나랑 같이 죽자.. 어머니..
할머니, 얼이 빠진 듯, 고통스러워하는 인희의 절규를 멍하니 보고 있는 눈가에 얼핏 이슬이 맺히는,
_ 162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017 중에서
엄 마 자궁 들어내야 돼요?
정 철 ....
엄 마 (짜증) 들어내지 뭐, 그깟 것.
정 철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다) ?
엄 마 담배 좀 끄구. (하다가, 정철의 굳은 얼굴이 조금 무서워 달래듯) 이제 쓸데두 없는 자궁 들어내는데, 뭐가 어째서 그래요? 구파발 선자도, 평창동 걔 친구도 들어냈다는데, 뭐. 아이구 차라리 잘됐어, 혹시나 싶어 나두 조마조마하드만. 이제 이 나이에 애 날 일이 있어, 달거릴 할 거야? 아이구 난 그런 거 하나두 안 겁나네. 사는 게 무섭지, 그런 게 겁나나. 들어가요, 청승 떨지 말구, 추워. (혼잣말처럼) 아픈 데두 없이 병이 왜 걸렸대.
정 철 (마음이 아프다) ... 안 아퍼?
엄 마 (퉁박) 아프면? 뭐, 대신 아파줄래요?
정 철 (할 말 없고) ....
엄 마 (일어나 가고)
정철,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마냥 보다가 눈물이 그렁해 하늘을 보고.
_ 239~240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1996 중에서
연 수 (눈물 참으며) 전요, 아줌마,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 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나는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 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엔 안 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윤 박사 (연수를 애처롭게 보고)
연 수 (눈물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면서) 나 어떡해요, 나 어떡해!
_ 257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1966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