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 한 수 배운 8년 전 이날을 나는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눈과 귀가 비로소 열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끈기가 없고 돈만 밝히는 철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나는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 힘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막막함, 전망 없는 미래, 밥벌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건 이들 앞에 놓인 사회적 불평등이었지,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무게감과 압박감은 아니었다. 나는 섣불리 ‘안다’고 착각했고, 이게 나의 가장 큰 오류였다.
내 생각과 달리 이들이 원한 건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소속된 일터로 향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자기가 번 돈으로 일상을 지속하는, 언제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마다 반복되는 ‘평범하고 안전한 일상’ 말이다. 그러려면 일을 체험하고 배우는 인턴십 같은 ‘가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유지하는 ‘진짜 일’이 필요했다. --- p.31~32
우리도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공정하게 돈 버는 회사인 동시에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이며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장인의 마음으로 음식을 맛있게 정성껏 잘 만드는 곳,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 지역과 사회를 잇는 회사 말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그런 회사가 진짜 존재하므로 우리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해 보기로 했다.
그 첫걸음은 회사의 주인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누가 주식을 소유할지, 임원인 이사는 누가 할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누가 주식을 소유할지, 임원인 이사는 누가 할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사우스 마운틴 회사처럼 일하는 사람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모두의 회사,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주인이 되기로 결정한 구성원 4명은 각자 120만 원을 회사에 투자한 뒤 그 값만큼 주식 120주를 받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이사는 회사를 함께 소유하고 함께 책임지며 함께 이익을 나누는 권리와 의무가 있는데, 이 제도의 이름은 ‘청(소)년 주식 소유제’다. --- p.77
‘셰프에 버금가는 사회적 위치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은 지금의 위치를 벗어나자는 성공 신화를 부추긴다. 그래서 개인이 자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능력을 쌓아서 자신을 탈바꿈해야 하는 무한 경쟁의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것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원리인데, 지금 사회에서 이 게임은 자본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
이런 사회 문제 때문에 소풍가는 고양이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는 그 문제의 시작점에 다시 서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고쳐먹고 질문을 바꿨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바꾸니 두부 가게 사장님과 대장금이 사회적인 위치 따위에 압도되지 않고 묵묵히 일궈 온, 품위를 잃지 않은 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니 그런 상인들이 보였다. 지금의 위치를 벗어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구성원들을 설득해 일을 꾸몄다. 일명 ‘지역에서 사랑받는 가게 되기’. --- p.112~113
소풍가는 고양이는 이들에게 혼란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게 하는 사회적 장소였다. 이곳에 머무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철없어 보이지만 유머가 있고, 대단한 근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쉽게 기죽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쩔쩔매지만 헤쳐 나갔다. 이곳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젊은 개인들에게 무엇으로 기억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나는 청소년 전문가도, 사람의 성장과 발달에 능통한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온몸으로 표출하는 성장통 같은 몸부림을 같이 겪고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응원하고 지켜볼 뿐이다. 힘겹게 살아 내는 노동이 아니라 성찰하고 보람을 느끼는 노동이 대학 진학보다 나은 선택이었기를 바라면서.
---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