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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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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72g | 127*210*11mm
ISBN13 9791187413820
ISBN10 11874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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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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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가 없는 밤

주말의 그녀가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땀 흘리고 있을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축제를 보고 있어
어둠 없는 밤이 거기 있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사라진 도시에서
샴페인을 터트리지
시간도 어둠을 불러오지 못해
그냥 저 혼자 돌고
곳곳 어둠의 흔적마다 빛이 가득하지

저 엉덩이 큰 사람들
밤에도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 없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사막의 긴 건기,
물끄러미 축제를 바라보는
인디오 노파의 미소,
몇 겁의 공전에도 분리되지 않는
적도 어느 작은 도시의 가난을

모르지, 258만 킬로미터의 공전으로도
좀처럼 섞이지 않는
어둠과 빛의 관계를


늦은 바다에서

이제,
보내야 할 때입니다

지난 시간의 흔적
얼룩이었다가, 무늬였다가
추억으로
가슴 가장자리에서
소용돌이치더라도

당신은 물결의 무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파도였다가
어느 저물녘 밀물지는 바다였다가
점점 멀어지는 수평선 바라보는
해안선이었다가

아침이면
다시 낯선 이방인이 되는

하루하루를 저어가듯
이제, 당신을 놓을 때입니다

아득한 생의 능선에서
또 다른 능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볼 시간입니다

저물어가는 시간의 바다 끝에서
멀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볼 시간입니다

벼랑 위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우두커니
지워져가는 당신을, 그렇게
바라볼 시간입니다


페루의 눈물

그녀가 우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시집 온 여자

마추픽추의 허물어진 돌담
거기, 서 있는 노파

서로 마주 보고 있네, 지구 반대편의
눈빛과 눈빛이 만나는 경계에
수평선 하나 생겨나네

알겠네
이곳에 썰물이 질 때
그쪽에는 파도가 치는 이유
해안선이 둥글게 슬픈 이유

지난해
채석강 해안에서 언뜻
발등 적시고 사라진
노파의 얼굴에서 출렁이던 파도
파도를 닮은 그녀의 뒷모습

서로를 지워가는
어머니와 딸

누구인가
비라코차의 슬픈 전설 속으로
나를 자꾸 등 떠미는 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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