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즉에 자살이 아닌 걸 아셨단 말씀입니까요?” “시신을 살피진 않았지만, 방 안의 상황에 모순이 있더구먼.” “모순이라굽쇼?” “그래. 방을 치운 지 열흘이나 되었다면 바닥에 먼지가 제법 앉았을 걸세. 설마 오 도령이 치우진 않았을 테니 발자국이나 흔적이 남아야 정상이지. 그런데 깨끗이 닦여 있었네. 누군가 들어왔다가 발자국을 지웠다는 말이 아닌가? 그도 아니라면 오 도령의 발자국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터. 그것만으로도 자살이 아님은 분명한 일일세.” 들어보니 대단한 추리도 아니었지만, 박태수는 미치지 못한 관찰이었다. 이제 사태는 크게 확산될 판이었다. 반가의 자제가 살해당했다면 남해 관아뿐만 아니라 감영에서도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게 불 보듯 뻔했다. (중략) “스승님, 자살이 아니라면 정황이 아주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자살로 위장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방 안에서 나왔을까요? 사방 문이 다 안으로 잠겨 있었는데요.” 박태수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빠져나올 틈이 있겠지요. 고작 연못가 정잔데, 그리 꼼꼼하게 지었겠습니까요.” 김만중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상세하게 살펴보니, 사람이 빠져나올 만한 틈은 없었네. 의심스러우면 박 포교가 가서 살펴보게나.” 김만중이 단호하게 선을 긋자 박태수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렇다면 이치가 맞지 않은뎁쇼. 시신이 친절하게 범인이 나가자 문을 닫아걸었을 리는 없고 빠져나올 구멍도 없다면, 범인은 어떻게 방에서 나왔을깝쇼?” 김만중도 답답한지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러니 그것을 알아낼 때까지는 사인을 숨겨야 하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