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과를 전공한 작가의 관심은 학교였다. 이 소설에서도 한국 특유의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이 겪는 경쟁, 차별에 대한 내밀하고 불안한 심리가 감각적인 문체로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궁금했다. 저마다 잘난 아이들이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 갇힌다면 자신의 상처들과 어떻게 대면할까? 어쩌면 작가는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힘겹게 견뎌내는 고교생들을 다룬 학원 미스터리 스릴러가 부재하다시피 한 현실이 더욱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소설은 국내 학원 미스터리물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이 되었다. 작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작가 데뷔프로그램에 발탁되어 놀라운 집중력으로 불과 6개월 만에 소설을 탈고했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가공할 사건들 속에서 독자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작가적 역량을 유감이 발휘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영화제작부라는 D클럽의 속성과 잇닿아 있는 건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할 목적으로 영상을 기록하고 남기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지식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것들은 겹겹이 패스트리처럼 쌓여 새로운 종류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들 역시 그렇게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속아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나라는 존재를. “다들 들어와. 나도 엊그제 내려온 터라 집 안이 좀 어수선하긴 하지만. 이해해줘.” 다른 여자애들이 까르륵 웃었다. 유리잔들이 쟁강쟁강거리는 소리 같았다. 연서는 제일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현관을 받치고 있는 대리석을 보며 연서는 처음 이 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날을 떠올렸다. --- p.16
그러나 이 저택의 가장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예측 불허한 방향으로 꺾여 있는 복도들과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는 많은 계단들이었다. 1층의 현관홀에서 이어지는 중앙계단을 제외하고서라도 저택의내부에는 각각의 층들을 잇는 많은 계단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3층과 1층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계단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쓸모없는 게 많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시야를 가렸다. 갑자기 꺾인 복도,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있는 계단들. 그래서인지 구경을 다니는 내내 알 수 없는 뭔가가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표를 찌르는 것 같지 않아?” 뭐라고? 민호가 되물었다. 연서는 아까보다 조금 더 조용히 말했다. “이 집 말이야.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 --- p.35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천둥소리?” “아니, 좀 더 가까이서 들리는…….” 연서가 고개를 들었다. 빗소리 사이로 뭔가 다른 소리가 섞여서 들리고 있었다. 그건 아주 빠르게 이쪽을 향해 커지고 있었다. 연서가 수정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덤불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도망쳐!” 덤불 속에서 뛰쳐나온 건 다름 아닌 민호였다.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민호가 튀어나온 덤불 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고 연서와 수정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떨어진 손전등이 그들이 서 있던 장소를 비추다가 곧 나타난 커다란 검은 그림자의 발길에 땅 속으로 짓밟혔다.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귓가에 커다랗게 울렸다.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잔 나뭇가지들이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