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을 만들면서, 동시에 노동자계급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기존의 지주계급과 귀족계급, 그리고 농민계급은 주인공에서 점차 지분이 적은 조연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산업혁명이 중요한 것은 천년을 이어오던 영주와 농민 중심의 사회관계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이른바 2차, 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것들에서는 이러한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은 1차가 아니라 고유명사로 불려야 합니다. (29~30쪽)
조립라인과 장치산업에서 대량생산되는 물건들은 우리의 소비양식을 바꾸고 더불어 생활양식까지 바꿉니다. 대량생산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값싼 제품들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로 생산된 곡물에 항생제가 과다 투여된 공장제 밀집생산 방식으로 공급되는 달걀과 우유, 고기로 먹는 걸 해결하고, 화학섬유를 기반으로 몇 가지 표준 치수로 대량 공급된 옷을 입고, 대형 운송수단인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가서, 마찬가지로 대량생산 라인의 한 부품이 되어 노동을 하다가, 같은 설계도의 값싼 건자재로 지어진 표준적 모델의 집에 돌아와서 어느 집이나 똑같은 TV로 ‘브로드’캐스팅되는 방송을 보다,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현대형 도시 노동자가 우리 시대 일반의 모습이 된 것이죠. (55~56쪽)
21세기라고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근 20년 가까이 싸워온 결과 이제야 그들은 산업재해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2016년에는 반도체 관련 하청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유독물질인 메틸알코올에 의해 눈이 멀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떠한 자본주의도 시민과 노동자의 감시가 없으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이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질을 바꿔줄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습니다. (60~61쪽)
이 제초제와 관련해서는 유전자조작생물(GMO)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운 제초제를 만들고 이 제초제에 저항성을 가진 박테리아를 찾아 그 유전자를 농민들이 재배할 작물에 주입하여 유전자조작작물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들 둘을 농민들에게 팔지요. 이 강력한 제초제가 주변의 잡초뿐만 아니라 잎과 낟알을 갉아 먹는 곤충과 새, 쥐 등도 동시에 차단하는 효과를 보이니 농민들은 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종자 값이 비싸고 제초제도 비싸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수확한 곡식은 다음해의 종자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싹이 트지 않는 것이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종자회사인 몬산토 사의 라운드업Roundup 제초제와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 종자가 대표적입니다. 라운드업 레디 종자는 라운드업 제초제가 뿌려진 곳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된 작물이란 뜻입니다. (70~71쪽)
이제 전 세계의 바다는 거미줄 같은 항로로 얽혀 있습니다. 이 항로를 따라 수많은 배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자본도 함께 다니게 됩니다. 선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활발해지자, 이른바 선진국의 자본은 보다 적극적으로 인건비가 싼 곳을 찾아 공장을 세웁니다. 물론 아무 곳에나 공장을 세울 순 없습니다. 정부가 협조적이어야 하고, 항구시설이 제대로 갖춰져야 하고, 노동자들이 공장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숙련도가 갖춰진 곳이라야 하지요. 하지만 제3세계에는 그러한 자본의 요구를 기꺼이 따르려는 나라로 넘쳐났고, 이들은 곳곳에 진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일본이 시작이었고, 우리나라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 등이 여전히 싼 노동력으로 이들의 이윤을 열심히 채워주고 있습니다. (93쪽)
대기업에서도 중소기업에서도 노동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부는 로봇과 생산합리화로 노동자의 수를 줄이고, 일부는 비정규직으로 채워 넣습니다. 또한 이들 대기업이 네트워크와 빅데이터, 자동화 라인 등에 힘입어 기존에 진출하기 힘들던 분야로 진출하면서 중소규모의 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자들 또한 자신의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전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여타의 분야에서 이를 흡수하였기에 일방적으로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 해고와 폐업을 강요하면서도 전체 경제가 유지되기는 했습니다. 물론 개별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입장에선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들어 전체적인 경제성장은 정체되면서 동시에 인력 감축이 지속되다보니 일자리의 문제가 누구나 이야기하듯이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115~116쪽)
이렇게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물론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바꾼 것도, 여전히 팍팍한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바꾼 것도 아닙니다만, 아이폰이 나오고 불과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세상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은행도, 증권사도, 뉴스도, 만화도, 게임도 모두 모바일이라는 손에 잡을 정도로 작지만 거대한 플랫폼 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도태되고 있습니다. 물론 생존경쟁의 냉엄한 결과지요.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이 10년 동안 모바일의 광풍 아래 휩쓸린 사람들에 대해 정부는, 이 나라는 무엇을 했나요? (148쪽)
결국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산업사회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고용 없는 성장’이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덜 일하고 기본적 생활이 보장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되겠지요. 한편으로는 현재보다 더 많은 ‘돈 안 되는 일’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재 자원봉사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모든 노동인력을 거둘 수 있을까요? 결국 핵심은 개인별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72쪽)
과연 스마트 그리드를 실시하면, 우리의 전기 요금은 줄어들까요?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은 쌉니다. 산업용도 싸고 가정용도 싸죠. 싼 것도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금이 비싸지면 그걸 감내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오롯이 기업의 배를 불리는 데 들어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스마트 그리드가 되고 민영화가 된다면, 전기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는 비싼 요금을 물고,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는 싼 요금을 물게 된다고, 그러니 잘 아껴 쓰면 적은 비용이 될 거라고 하는데 이게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언제 비쌀까요? 여름 한낮 그늘에 있어도 더위를 견딜 수가 없어 다들 에어컨을 빵빵 틀 때 비싸겠지요. 산업체나 기업체, 관공서 등은 EMI 설비를 통해 쌀 때 저장해놓은 전기를 쓰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돈을 더 들여가며 그런 설비를 할 수 있을까요? 특히나 저소득층에서? 결국 가난한 이들은 더울 때 에어컨 틀지 말고, 추울 때 전기장판 스위치를 올리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민영화가 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188쪽)
만약 가정용 로봇이 이 모든 일을 대신하는 사회가 되면, 즉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 이런 그림자 노동은 사라질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페미니즘 운동이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며 변화시키고 있지만, 수천 년을 기득권으로 살아온 이들의 저항은 여전합니다. 집안 일이 쉬워진 건 좋은 일입니다만, 그것이 여성이 가정의 그림자 노동을 거의 전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덮어버려선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좋아지고 가정용 로봇이 들어와도 그걸 운영하는 노동이 여전히 여성이어선 제대로 된 혁명이 아니죠. (236쪽)
인공지능도 두렵지만 이런 인공지능을 이용해 개개인에 대해 조목조목 파악하려는 기업이 사실 더 무섭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우리가 온라인으로 좀 더 많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스스로도 모른 채 데이터가 됩니다. 어떤 광고를 하면 피드백이 올 확률이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데이터 말이죠. 우리는 과연 이 시대에 우리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빅데이터의 일부가 되는 다수와, 그 데이터로 이윤을 확보하고 권력을 만드는 소수로 나뉘는 시대는 아닐까요? (263쪽)
물론 기본소득은 아직 제안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심심찮게, 그리고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소득 말고도 다양한 방식이 제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4차 산업혁명이 진정으로 ‘혁명’이 되려면, 그로 인해 얻게 될 이익의 가장 큰 부분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데에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당위입니다. (292~293쪽)
2017년 중반에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 건설’ 문제에 대한 공론화조사가 약 3개월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공론화위원회와 시민참여단이 3개월에 걸친 토론과 몇 차례의 여론 조사를 통해 ‘이미 건설 중인 5, 6호기는 건설하되 앞으로 원자력 발전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과 배치되는 이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물론 이 방식도 한계가 있고, 약점이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치가 ‘국회’나 ‘청와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국민 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실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론화 방식 말고도, 법안을 만들기 전에 여론조사를 하고, 토론회를 하며, 공청회도 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해서 할 수 있으면 더 편리하겠지요. (299~300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