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 유통기한이라고? 그따위 폐품들을 이제 와서 어디에 쓰겠느냐고? 이봐, 함부로 지껄이지들 마. 세상엔 그것이 자신의 온 생애이거나 평생의 족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끝내 벗겨낼 수 없는 굴레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그 저주받은 시간에 사로잡혀 평생 유령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말이다……--- p.22
극심한 통증 때문에 투여한 다량의 진통제 탓이었을까. 막바지 순간까지 케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노라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그러다가 임종이 닥쳐왔을 때 그는 거짓말처럼 고요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보, 나 이제는 갈게. 나를 좀 바닥으로 내려줘.” 그녀가 몸을 부둥켜안아 간이침대에 내려주자 그는 다시 뇌까렸다. “아래로, 조금 더 아래로……” 그것이 케이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p.302
“억울한 죽음은 억울한 원혼을 만들지만, 또한 살아남은 자에겐 원통한 기억을 만드는 법이야. 원통한 기억은 산 자의 가슴속에 핏덩이 같은 한을 만들고, 그래서 평생을 고통과 슬픔에 짓눌려 살아가도록 만들지. 죽은 자나 산 자나 똑같이 어둠 속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이야. 죽은 넋들은 바다 밑 캄캄한 심연에 갇혀 있고, 산 자들 역시 끔찍한 분노와 상실의 기억 속에 붙잡혀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야…… 그런 까닭에 혼령들은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어다니는 것이야. 아직도 어둠의 기억에 갇혀 피 흘리고 있는 혈육과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서는 차마 떠날 수 없기 때문이지. 산 자의 슬픔과 고통이 혼령들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아. 그리하여 천지에 가득한 고통의 윤회, 슬픔의 쳇바퀴는 영원히 멈추지를 않아.”--- p.331
턱을 부들부들 떨며 어리둥절 쳐다보는 소년의 눈망울이 유난히 검고 맑았다. 가라니까, 새꺄. 최병장이 엉덩이를 걷어차자 소년이 마을 쪽으로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쏴! 지금이야! 쏘라니까! 문태는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논둑 위로 소년의 몸뚱이가 푹 고꾸라졌다. 따라와. 아직 뒤처리가 남았어. 그래야 후환이 없거든. 잘 기억해둬. 배를 움켜쥔 채 도랑물에 모로 처박힌 소년은 아직 숨을 헐떡였다. 당겨, 임마. 문태는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뭔가 철버덕 얼굴로 튀어올랐다.--- p.360
“그래. 결코 지난날들을 잊어서는 안 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부디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임철우의 『백년여관』에서 적실한 표현을 얻고 있는 ‘두 죽음 사이의 윤리’는, 주체가 죄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만나 자신의 책임의 자리를 찾아간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80년대적인 것이라 부른 것, 혹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표현된 민주화를 향한 집단적인 열망과 나란히 놓여 있다. ‘행위’로 이행해간 윤리의 모습은 이십여 년 넘게 ‘두 죽음 사이의 윤리’에 매달려 있던 한 작가의 집요함에 의해 포착된 것이겠으나, 그것은 또한 동시에 임철우를 통해 구현된 한국의 80년대적 정신, 그 집단적 의지와 열망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_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임철우는 다정한 작가이다. 그의 다정함은 늘 깨어지고 뒤틀어진 사람들의 상처를 응시하고 안아준다. 웅웅한 바람 소리를 품고 있는 저 ‘백년여관’의 늙은 은행나무처럼 그에게 섬은 한과 그리움의 공간이다. 이 공간 속으로 부나비처럼 날아드는 군상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섬은 그러므로 사연 많은 이들에겐 마치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같은 상징적 체계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인간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마침내 인간 조건에 대한 최후의 질문과 마주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_김영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