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식적 언어는 구체적 느낌과 감정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마치 우리의 몸이나 마음에서 기원하는 사적 실체인 것처럼 느끼거나 생각하도록 우리를 오도한다. 그러나 만약 앞의 베이트슨의 표현 속에 제시된 간단한 사례들을 좀 더 생각해보면,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때 우리가 언급하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이나 연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또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킨 신체적 느낌과 관련한 어떤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맺는 관계의 특별한 성격,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우리의 느낌과 감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아와 타자 그리고 자아와 세계 간의 관계유형이다. --- p.10~11
실제로 다른 신체적 지각과 함께 우리의 느낌과 감정은 특정한 상황 내에서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수단들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내내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감정적으로 행위 하고 반응하는 습관적 방식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습관은 그 자체로 과거의 관계 및 행위유형의 침전물이며, 그 습관 역시 변화에 열려 있고 또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에 적응해야만 한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감정적으로 백지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 --- p.22
내가 여기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집단과 계급들 간의 권력 균형이 변함으로써 사회관계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유형이 발전하여 사람들의 감정 또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을 찾아내고, 다시 그러한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언어적·사회적 관행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구체화하고 틀 짓고 형성한다. 하지만 신체적 느낌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확실히 서구에서 신체적 느낌은 우리에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 p.9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통해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느낌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단어 역시 하나의 기호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충격, 놀람, 화, 혐오, 증오, 매력, 좋아함, 사랑은 단지 단어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자주 경험하는 느낌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해 갖는 의미를 그들의 동작, 제스처, 표현과 관련지어 근감각 이미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러한 기호와 단어의 의미들은 선행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복합체의 한 요소이다. 단어는 느낌과 감정에 형태, 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과 감정은 사회적 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그리고 그것과 함께 언어의 형식과 사회적 관행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한다 --- p.128
우리가 형성하는 심적 이미지는 감정적 경험의 매우 중요한 측면이며, 우리는 그러한 이미지를 구성하는 일을 하기 위해 뇌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그러한 이미지의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가 없다면,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삶의 드라마의 바탕을 이루고 또 우리가 행하는 것을,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까닭을 규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상황에 신체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정적 삶은 단지 무의미하고 공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삶이 존재하지조차 않을 수도 있다. --- p.175
다른 사람 및 세계와의 보다 비개인적인 관계유형에 기초한 합리적 사고형태조차도 느낌, 감정,상상이라는 요소의 흔적들을 포함한다. 합리성은 감정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감정 없는 합리성은 합리성이 더 이상 이성으로 인식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자아와 세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완전히 비개인적인 비감정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기준에 기초한,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감정적 이성을 이용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비개인적이고 보다 공평하게 균형 잡힌 관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 p.217
다른 것들과 함께 우리의 많은 감정적 요소가 감정규칙에 순응하지 않으며, 그 규칙이 설정한 대로 잘 관리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감정적 곤경에 의해 심히 영향을 받아 동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일터와 놀이터 모두에서 기대가 출현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요령과 솔직함 모두를 복잡하게 혼합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감정은 반복과 감정적 상황에 대한 습관적 성향을 통해 유형과 질서를 드러내는 육체화된 의미 만들기와 관련된 것이지만, 감정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유동적이고 불확정적이고 변화 가능성이 있는 현재의 순간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현재는 극적인 사건과 새로움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에 상상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한 다양한 맥락에서 모순, 역설, 딜레마에 직면하고, 이것은 우리에게 상충하는 충동들에 대해 대화적으로 성찰할 것을 강요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는 일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 p.261
사람들이 자극하고 유도하고 유인하고자 하는 시도에 반응하는 방식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감정은 사회적 관계와 권력 관계의 다중 네트워크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복잡한 유형을 하고 있고, 그러한 복잡성이 정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하고, 그리하여 그것에 반대하고 저항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0
사회적 관계는 항상 전개되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관계유형을 바꾸어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과거의 감정적 성향을 현재의 환경과 상황으로 가져오지만(우리 자신의 전기의 궤적에 따라 형성된 이전의 가치와 동일시의 렌즈를 통해 맥락을 평가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미래로 나아가기 때문에 항상 유동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항상 변한다. 느낌과 감정은 이러한 역동적인 변화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느낌과 감정은 관계형태에 의해 생겨나면서도 그 관계형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정은 사회관계를 묶어주면서도 그것을 위협하고, 동일한 과정 속에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재형성한다. --- p.292~293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상상 속에서 반영하고 굴절시키는 다성적·대화적 주체성을 지닌 느슨하게 구조화된, 그러므로 연속적이고 다양하고 분명하지 않고 양가적이고 창조적인 자아들이다. 즉, 자아는 자신과 타자 간의 소통 속에서만 출현한다. 자아와 그것의 세상에 대한 지각의 중심에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채색하는 감정적 울림이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객관적 또는 합리적 사고 양식은 무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대화적인 성찰적 의식 ― 서로 다른 상황 내에서 다양한 정도로 성찰적인 ― 에 열려 있는 보다 비개인적인 태도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 그리고 우리의 자아와 세상에 대한 우리 자신의 느낌은 여전히 우리가 아는 모든 것과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한다.
--- p.297~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