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래도 나는 지금처럼 살까? No! 절대 아니다. No!라는 답을 내렸지만 나는 여전히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두 달이 됐으며, 어느덧 해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냥, 무엇이든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지질하게 살 수 없다는 ‘오기’에 생전 처음 배낭여행이라는 걸 떠나보기로 했다. 여태껏 해온 일의 결과물인 지금의 내가 싫었다. 바꾸고 싶었다. 다르게 살고 싶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중에서
돈이 궁할 때, 돈을 쓰러 여행을 간다는 건 바보 같은 결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돈을 벌 땐 돈 버느라, 돈 못 벌 땐 돈이 없어서 못 간다.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 도돌이표.
물론 여행 갔다 와서 “괜히 갔네. 돈만 썼어” 하며 후회할 수 있다. 아무 소득도 없고, 고생만 진탕 한 채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성공을 확신하면서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의 성패를 장담할 순 없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단 변하고 싶다면 다소 무모해 보일지라도 익숙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보자.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싶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그랬다. 숲을 보고 싶으면 숲을 떠나라고.
---「숲을 보려거든 숲을 떠나라」중에서
수영하다 지치면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었다. 출출해지면 맨발로 근처 상가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오고, 피곤해지면 맨발로 숙소로 돌아갔다. 맨발에 탱크톱과 핫팬츠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 또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 해본 일이다. 남의 시선 속에 갇혀 살았다.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해도, 조금만 튀게 입어도, 조금만 다르게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한 소리 듣기 일쑤 아닌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자유롭게 하는지 몰랐다.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남 눈치 안 보고 거리낌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 편했다. 배 좀 나오고 옷차림 좀 튀면 어떤가.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나 편한 걸…. 분명한 것은 케언스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것은 한국에서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케언스에서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다음에 또 호주에 온다면 꼬부랑 할머니일지라도 비키니 입고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더 이상 우물쭈물 몸 사리는 여행은 없다.
---「전생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들의 환생 장소」중에서
‘이래야지’, ‘이건 꼭 있어야지’ 하고 생각해온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무슨 근거로 단 일주일도, 한 달도 못 가 쉽게 바뀌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착했던 걸까. 옆에 사람이 있으면 잠을 못 잔다? 오히려 사람이 없으면 잠을 못 자겠더라. 아침엔 밥을 먹어야 한다? 빵 먹어도 맛만 좋고 소화만 잘되더라. 나중에 토스트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화장품은 제대로 갖춰 써야 한다? 오히려 안 쓰니 얼굴이 더 편해지더라. 짐이 없어지고 보니,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없어도 별 지장이 없었다. 하루이틀 지나자 오히려 편해졌다. 어디를 다닐 때도 몸이 가벼우니 이동하는 것이 가뿐했고, 그 무거운 가방을 어떻게 가지고 다녔나 싶었다.
---「어떤 구름이라도 그 뒤쪽은 은빛으로 빛난다」중에서
나는 왜 매사에 당당하지 못했던 걸까. 빌붙어 사는 것도 아니고 낼 것 다 내고 살면서, 학원에서도 내 할 일 다 해왔으면서…. 매사에 자신 없게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쪼그라든 나는 결국 살아갈 자신감조차 잃고 지질하게 이불 속으로 도망칠 생각만 했다.
나이 좀 많으면 어떤가. 직장 좀 잘리면 어떤가. 몸 좀 아프면 어떤가. 사지 멀쩡하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부모가 내 앞가림할 정도까지 키워줬으면 내 인생 내가 책임지고 살아낼 일이다. 답답한 현실에 도망갈 구멍만 찾던 한국에서의 나는 더 이상 없다. (…) 여행 다니며 어느 순간부턴가, 그것도 영어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하고 나도 놀랐다. 남 눈치 보느라, 알량한 자존심 세우느라 속으로만 꾹꾹 참아왔던 것들을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다소 실례가 되더라도 해야 할 말은 했다. 왜 그동안 ‘천사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조심 또 조심하기만 했을까.
---「떠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중에서
여행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 바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누가 그랬다.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그러나 성격을 바꾸고 싶으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라고. 첫째, 혼자서 배낭여행을 할 것. 둘째, 한 달 이상 다닐 것. 셋째, 더럽게 고생할 것.
겪어보니, 이렇게 하면 성격이 바뀐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적어도 마음 자세는 달라진다. 마찬가지 소리인가. 하여간 죽기 전에 적어도 이런 여행은 한 번 해볼 일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하이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떠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중에서
혼자 배낭여행 다니는 건 별게 아니었다. 27킬로그램의 짐 역시 별게 아니었다. 게다가 뉴질랜드에서는 캐리어를 잃어버려 7킬로그램도 안 되는 가벼운 짐을 지고 다녔다. (…) 해보지 않고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공포의 여행이 생애 최고의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생애 최고의 여행이 공포의 여행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전자의 경우라 너무 다행이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에서의 상황도, 어쩌면 막다른 골목이 아닐지 모른다. 그 막다른 골목이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일 수도 있다. 이제 돌아가면 맞닥뜨려야 할 한국에서의 현실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
---「터닝 포인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