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은 국가중심주의 모델의 지양을 요구한다. 국가지상주의와는 정반대로 촛불의 시대정신은 시민이 주체이고 국가가 객체임을 선포한다. 촛불의 바다를 평화적 축제로 승화시켰던 시민적 주인의식이야말로 우리가 정체(政體)의 주인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21세기 시민정치의 불꽃인 촛불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불꽃축제가 무기한 계속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와 국가안보를 시민정치의 열정으로 해결하는 데는 본질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촛불 그 너머’로 나아가야만 하는 까닭이다.
--- p. ‘삶의 정치와 성찰적 시민사회-진리정치 비판’(윤평중) 」중에서
광장은 시민들이 공동선과 공동체의 문제점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또 이러한 담론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광장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토의를 가능케 하는 공론영역의 지속적인 재생산에 있다.56 우리는 2016/17년의 촛불시위가 공론영역의 민주적 의미와 기능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언로가 막히거나 권력에 의해 왜곡되면, 광장은 언제든지 공론영역을 회복하고 활성화하려는 시민들에 의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혁명은 공과 사를 구별하고, 권리와 의무를 조화시키고, 시장과 광장을 균형 있게 발전시킴으로써 성숙한 시민사회를 실현하는 민주적 시민의식을 폭발적으로 확장할 것이다. 국가가 형성되고 시장이 활성화됨으로써 탄생하기 시작한 시민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에 눈을 뜰 때 비로소 책임 있는 개인으로 발전하기 시작할 것이다. 성숙한 개인들만이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든다.
--- p. ‘우리는 어떻게 시민이 되는가?-성숙한 시민사회의 실천철학’(이진우)」중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요컨대 문제는 개인이다. 자주적, 자강적, 자조적, 자립적 개인이 우리들 모두에게 마음의 습속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주기적인 ‘민주주의 코스프레’나 간헐적인 ‘민주화 푸닥거리’ 상태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정치적 비효율을 앞으로도 운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한국민주주의의 미래는 공동체주의를 신봉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것에 있다.
--- p. ‘‘마음의 습관’과 한국의 민주주의’(전상인) 」중에서
역사적 맥락에서 단절된 이국 땅 외딴 곳에 덩그라니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은 지구적 기억공간 속에서 타자의 기억과 연대하지 못하고 국민화된 배타적 기억의 핍진(乏盡)함을 쓸쓸하게 보여준다. 중국인-한국인-필리핀인 세 소녀가 손을 꼭 잡고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연대를 상징하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위안부 조각상과 독일 소읍 비젠트 공원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일본군 위안부 한국인 소녀상의 대조적 모습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기억의 지형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20세기 역사 과정에서 식민주의와 전쟁, 분단과 독재를 겪은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지구적 기억 공간 속에서 타자의 고통과 만나고 연대하면서 보편적 인권의 기억으로 진화할 때, 한국 사회는 이웃과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기억구성체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p. ‘‘기억’: 21세기 한반도의 열려 있는 기억 문화를 위하여’(임지현)」중에서
시민성은 시민들이 서로를 견제하지만 배려하고 관용하는 정치적 평등 관계에서 필요한 실천이다. 따라서 시민성은 민주주의를 촉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며, 갈등과 경쟁의 정치를 포용하고, 다원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를 지향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활동, 개입, 헌신, 의무, 봉사에 의존하며,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시민적 자질, 태도, 실천 등을 추구한다. 바버(1984)는 이를 두고 강한 민주주의로 명명하는데, 이는 시민들이 정책들을 두고 공적으로 숙의할 것을 요구한다(Barber, 1984). 그러나 공적 숙의는 필수적으로 어느 정도의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시민성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 시민성은 말하기뿐 아니라 듣기를 요구하며, 그 실천은 시민들로 하여금 갈등에 대응하고, 숙의 과정에 방해가 되는 권력의 실체를 알게 해준다. 민주적 대화는 시민성을 요구할 뿐 아니라 이를 생산하기도 하며, 시민성은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갈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용’으로서 발현되기도 한다(Barber, 1999: 40). 대저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에 공히 존재하는 시민적 덕성을 가진 사람의 특징에 대한 이념형을 제시하는데, (1) 개인적 권리를 존중하는 것, (2) 자율성에 가치를 두는 것, (3) 다른 의견과 신념에 관용하는 것, (4)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 (5) 시민적 공감을 소중히 여기는 것, (6) 공동체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Dagger, 1991).
--- p. ‘한국인의 습속(習俗)과 시민성, 그리고 민주주의’(김석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