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더듬어 나가다가 그는 주춤 멈추어 섰다. 어느새 주교의 침대 곁에 있게 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달빛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흩어지더니 그 빛이 창을 통해 흘러들어와 고요히 잠들어 있는 주교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만족과 희망과 행복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하늘의 영광이 깃들어 있었다. 그 존엄한 얼굴에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었다.
장 발장은 쇠촛대를 손에 든 채, 빛나는 노인의 모습에 넋을 잃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일찍이 그런 모습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 신뢰에 가득 찬 잠든 주교의 모습은 그에게 공포심을 가져다주었다. 악한 짓을 하려는 순간, 의로운 사람이 잠든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의 양심이 꿈틀한 것이며 당황한 양심이 그에게 불안과 공포를 몰아온 것이다.
장 발장의 눈은 노인에게 못박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망설임의 기색이 또렷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마치 두 심연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파멸로 이끄는 심연과 구원으로 이끄는 두 심연 사이에서. 그는 바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거나 그의 손에 입을 맞추거나, 둘 중 하나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달빛에 벽난로 위의 십자가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그리스도가 두 팔을 활짝 펴고 한 사람에게는 축복을, 또 한 사람에게는 용서를 내리기 위해 두 사람을 안으려는 것 같았다.
갑자기 장 발장은 주교는 본체만체하고 침대 머리맡의 벽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자물쇠를 부수려고 쇠촛대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는 벽장을 열었다. 은그릇을 담아놓은 바구니가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배낭 속에 은그릇을 쑤셔 넣더니 바구니를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정원을 지나 비호처럼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나버렸다.
(……)
그 이튿날 비엥브뉘 예하는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마글루아르 부인이 허둥지둥 그에게 달려왔다.
“주교님, 주교님! 은그릇 바구니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암, 아다마다.”
“아이고, 다행이네.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아서요.”
주교는 조금 전 화단에서 주운 바구니를 마글루아르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옜소.”
“어머나, 속이 텅 비었네! 은그릇은요?”
“아, 그걸 걱정했던 거군? 난 잘 모르겠는데…….”
“어머나, 도둑맞았네요! 어젯밤 그 사내가 훔쳐간 거예요.”
그녀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주교님, 그 사내가 달아나버렸어요. 어머, 저기 담벼락이 무너져 있네. 저리로 도망간 거예요.”
“아니,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
(……)
식사를 끝내고 두 남매가 막 식탁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고 주교가 말하자 사람들 한 무리가 문 앞에 나타났다. 세 명의 헌병이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멱살을 잡힌 사람은 바로 장 발장이었다. 문 옆에는 헌병대장이 서 있었다. 그는 들어와서 경례를 붙이더니 주교에게 다가왔다.
(……)
“아, 당신이구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정말 잘됐군. 아니, 촛대도 주었는데 왜 식기들만 가져갔소?”
장 발장은 놀란 눈으로 주교를 바라보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그런 표정이었다.
헌병대장이 주교에게 말했다.
“예하, 그렇다면 이 사람 말이 사실입니까? 마치 도망치듯이 가고 있기에 붙잡아서 배낭을 뒤져보니 은그릇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아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겠지요. 간밤에 잠을 재워준 늙은 신부에게 받았다고요. 맞아요. 내가 준 거예요.”
“그렇다면 그냥 놓아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헌병들이 놓아주자 장 발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뭇머뭇했다. 그사이 주교는 벽난로로 가서 두 자루의 은촛대를 가지고 오더니 장 발장에게 내밀었다. 장 발장은 와들와들 떨면서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기계적으로 그 두 자루의 촛대를 받았다.
주교가 장 발장에게 말했다.
(……)
“잊지 마시오. 결코 잊으면 안 돼.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약속한 것을.”
꿈에도 약속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주교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사들였소. 나는 당신의 그 영혼을 어두운 생각과 징벌의 세계에서 끌어내, 하느님께 바친 거요.” --- p.36~41
“그렇다면 누군가 그 애를 치워준다면?”
“누구요? 코제트를요? 아이고 친절도 하셔라. 제발 가져가세요. 끌고 가서 삶아먹든 구워먹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느님께 감사할 노릇이지요.”
“그럽시다.”
“정말 데려가주시는 거예요?”
“그렇소. 당장 데려가겠소. 어린애를 부르시오.”
그는 숙박비용으로 5프랑짜리 은화 다섯 닢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때였다. 식당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테나르디에가 안으로 총알같이 뛰어들면서 말했다.
“아니 숙박비용은 26수만 치르면 됩니다. 방값 20수에 저녁식사값 6수. 대신 그 아이 문제는 좀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
“선생님, 그 애를 데려가시려면 1,500프랑이 필요합니다.”
나그네는 지갑을 열고 500프랑짜리 지폐를 석장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자, 코제트를 불러오시오.”
얼마 후 코제트가 들어왔다.
(……)
한편 1,500프랑이라는 거금을 손에 쥔 테나르디에는 금방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그들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놈은 백만장자 같은데! 그 열 배라도 거뜬히 뜯어낼 수 있었는데 그 정도만 받고 코제트를 내주다니! 천하의 테나르디에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 p.155~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