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메라를 처음 접하고 즐겼던 초등학교 시절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야 다시 카메라를 손에 들 수 있었다. 평소 사진작업을 많이 했던 남편의 중? 대형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한동안 갈망했던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현상된 필름을 찾기 위해 충무로로 향하는 날까지 나의 배 속에서 늘 나비가 날아다니는 기분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 사진은 기동성이 뛰어난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중략)???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풍요로움과 소중함이야말로 내가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로 인한 즐거움을 오래도록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의 소재는 나의 생활반경으로부터 당분간 그리 멀리 벗어나지는 않을 듯싶다.
2. 내가 제법 야무지게 젓가락을 사용하기에 이르렀을 때부터는 남편의 요리가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밤마다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야식들을 순식간에 만들어주어 나와 배 속의 사가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날은 동그랗고 굵게 썬 양파 그리고 마마이트 소스와 마늘로 양념을 한 다진 고기를 센 불로 볶아낸 요리가 등장했다. 후식으로 테이블 위에 두었던 파인애플을 보자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고, 순간 남편은 셔터를 눌러버렸다.
3. 갓 태어난 사가를 상당히 어색한 듯 바싹 긴장된 어깨로 끌어안거나, 조심스레 아이를 향해 내쉬는 숨소리,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입가에 세로로 붙이고 잠자는 아이 옆을 지나는 남편의 모습은 이전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고 또한 나의 새로운 모습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첫 째 딸 사가의 손톱을 잘라주던 날, 긴장된 나의 머릿속에서는 조심 그리고 또 조심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아기의 손톱이 톡톡 소리를 내며 조금씩 잘려나갈 때마다 마른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결국 사가의 연약한 피부를 잘라내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응급차를 부르라고 남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규모 있는 응급장비와 의사, 간호사까지 대동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급히 차를 몰고 나간 남편의 손에 들려온 것은 유아용 소독약이 전부였다. 다행히도 사가는 처음부터 한번도 울지 않고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죄책감에 휩싸인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4.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앞장서서 걸어가는 사가와 사라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손녀들???. 이들이 나와 점점 멀어져 회색 점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이들을 뒤쫓아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에는 이미 작은 구멍을 뚫어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낚싯줄을 드리워 놓고 있었다. 각자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동안만큼은 견딜 수는 있는 정도의 추위였다. 하지만 셔터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가락은 이미 얼었는지 감각이 없어져 버렸다. 사실 이날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가져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안개 낀 겨울 호수를 가로질러 작은 얼음구멍을 들여다보며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을 사가와 사라 덕분에 되살릴 수 있었다.
5. 사가야 사라야!
너희는 앞으로 읽고, 쓰고, 계산하고 또 재미있는 놀이와 악기 그리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만나게 될 거란다. 또한, 앞으로 많은 도시를 거쳐 살게 되면서 이 세상의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보고 느끼며 너희가 생각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단다. 지금 당장은 엄마와 아빠 곁에서 어리광부리며 사랑을 듬뿍 받는 귀여운 딸들이라면 충분해. 사가와 사라가 엄마 옆을 지나며 옆구리를 슬쩍 간지럼 태운다거나 엄마가 너희들이 잠들 때 엉덩이를 부드럽게 두드려 주는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직 서로 모르지만, 언제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항상 너희가 필요로 할 때 귀를 기울여 주고 사랑하는 일이란다.
사랑하는 사가와 사라에게
엄마가....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