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넙죽 잘생긴 호박 신기하다 어찌 이리 클까 늙은 호박이라고도 하는데 대청마루에 둥굴둥굴 쌓아 두고 올라타고 자른 호박 황금빛 실타래 속 갸름한 호박씨 널어 말려 호박씨 까고 두터운 누런 갑옷 벗겨 나박나박 썬다 흰 쌀가루와 훌훌 섞어 시루에 안치고 시룻번으로 입막음하여 푹 찐다 시루 깰까 조심조심 혼자 들어 쏟으니 구수하고 달큰한 노랑 꿀 호박떡 숟가락으로 퍼먹고 시룻번은 구워서 아이들 과자 가장자리 진 떡은 어머니 잡숫고 아픈 허리 나으신다 했다
맛없는 것이 맛있다는 어머니 사랑--- 청둥호박 중에서
달래 된장찌개가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사발에 보리밥이 보고 있다 달래 쫑쫑 썰어 넣은 양념간장 따끈한 밥에 비벼 먹고 날 김에 밥 먹고 싶어 기다린다
콧김에 나는 매운맛 주술에 병든 이도 깨운다는 작은 마늘 소산답다 작고 동근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긴 흰 수염뿌리--- 흰 수염 달래 중에서
한복선 시인의 시문학 작업은 그간 자신을 다듬고 조율했던 음식문화의 정수를 시어로 버무리는 일이다. 마치 접시 위에 시를 올리는 경이로움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음식문화와 시문학의 접목은 매우 이질적인 대상이 하나로 합치되는 낯선 작업이다. 그것은 어떤 대상들과도 하나가 되는 시정신이며 물아일체의 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