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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데레의 정석 2

츤데레의 정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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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558g | 145*200*35mm
ISBN13 9791104916236
ISBN10 110491623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봄기운이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따스한 날씨와는 정반대되는 차가운 표정을 한 남자가 바로 여기 있다.
“아야, 아무래도 부러진 뼈가 아직 덜 붙었나 봐.”
말 같지도 않은 유미의 꾀병에 이겸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러나 투덜거리는 그를 바라보는 유미의 표정은 봄 햇살처럼 상큼하기 그지없었다. 유미는 답답한 병원에서 퇴원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첫 등굣길을 이겸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쁜 듯이 보였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큰 사고와 상처를 겪은 것치고 그녀의 얼굴엔 전혀 어두운 기색이 없었다. 큰 교통사고로 다친 몸과 마음의 상처가 제법 컸을 텐데도, 언제나 그랬듯 유미는 명랑하게 아픔을 잘 이겨낸 것 같았다.
“꾀병 부리지 마. 깁스 뺀 지가 언젠데.”
이겸은 민망함에 헤헤 눈웃음을 치는 유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미소에 이겸의 눈꼬리가 가늘게 늘어졌다.
“그럼 내 가방 좀 들어주라.”
이겸은 코 먹은 소리를 내며 백팩을 건네는 유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지못해 그녀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겉으론 싫은 척하지만, 제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주는 이겸의 모습에 유미의 콧잔등에 살며시 주름이 피어났다.
‘치, 어차피 들어줄 거면서.’
양어깨에 책가방을 하나씩 둘러메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유미의 얼굴에 절로 밝은 웃음이 감돌았다. 이겸은 앞서가다가도 가끔씩 몸을 돌려 유미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짜식.”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이겸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유미는 인자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말이 있듯 유미는 몇 번 더 이겸의 마음을 확인해 본다고 손해 볼 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리도 좀 아픈 것 같아.”
유미의 말 한 마디에 이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아픈 날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것은 명백한 확신이었다. 이겸이 저를 좋아한다는 확신.
유미의 입술이 기쁨에 차올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유미가 괜히 자리에 멈춰 서 멀쩡한 다리를 톡톡 두드리자 등만 보이던 이겸의 몸이 서서히 그녀가 서 있던 쪽으로 돌아갔다. 유미는 허리를 숙여 웃는 얼굴을 숨겼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겸이 저보다 키가 한참 작은 유미를 흘긋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 뭐라고?”
“여태 잘 걸어와 놓고. 갑자기 아픈 척 하지 마.”
그는 이미 그녀의 가방을 들어준 것만으로 과하게 친절을 베푼 상태였다. 이 정도 차갑게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것이라 여긴 이겸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홱 몸을 돌렸다. 일부러 유미에게 보이려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던 이겸에게 폭탄과 같은 한 마디가 날아들었다.
“업어줘, 이겸아.”
막 몸을 돌리려던 이겸은 그 자리에 멀거니 선 채, 저를 향해 두 팔을 최대한 넓게 벌리고 선 유미의 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까불어.”
이겸이 아무리 일부러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아도 유미에겐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는 친구가 그 큰일을 겪고 다시 등교하는 이 감격스러운 날에, 어쩜 그렇게 험한 말을 입에 담니?”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는 유미를 보며, 이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속도 모르고, 유미는 자칭 최대의 무기라고 자부하는 살인미소를 한껏 입가에 띄웠다. 양쪽 볼에 쏙 하고 보조개가 움푹 패여 우물을 만든다.
“목발 구해다 줘?”
“뭐? 뭘 구해?”
유미의 얼굴을 가득 채운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게 아니면, 휠체어?”
“내가 환자냐!”
“그래. 잘 아네. 이제 너 환자 아니야. 그러니까, 괜한 꾀병 부리지 말고 제대로 걸어.”
저 할 말만 쏟아낸 이겸이 그대로 큰길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유미는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집어넣었다.
‘꼭 잘 나가다가 한 번씩 이렇게 빅 엿을 먹인다니까!’
유미는 이겸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제 손바닥 안에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결국 제자리걸음일 뿐인데 말이다. 그걸 그가 한시라도 빨리 알아주길 유미는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알았어! 꾀병 안 부릴게. 신이겸! 거기 서!”
예나 지금이나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겸의 빠른 걸음을 쫓아 유미는 허겁지겁 잰걸음으로 그를 뒤따랐다. 그의 뒤를 쪼르르 쫓아가는 유미의 모습이 흡사 주인의 걸음에 맞춰 뛰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딱 두 달 만의 등교였다. 학년이 바뀌고 난 다음 거의 바로 사고가 났고, 그 사고로 인해 유미는 그동안 학교에 출석하지 못했다. 분명 사고 전과 같은 학교, 같은 교문, 같은 복도인데 유미에게는 이 모든 게 어쩐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고작 두 달인데.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말이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선 유미는 교실 문턱 앞에서 쉬이 걸음을 떼지 못했다.
교실 미닫이문을 열어놓기만 하고 그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유미의 머리 위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갈 거야, 말 거야?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유미는 이 낯선 환경에 ‘신이겸’이 함께라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양어깨에 나란히 다른 색 가방을 멘 이겸이 팔꿈치로 유미의 등을 앞으로 슥 밀었다.
“어, 어!”
생각에 잠겨 있던 유미는 갑작스러운 이겸의 손길에 떠밀려 저도 모르게 교실로 한 발짝 발을 들여놓았다. 이겸은 스쳐 지나가듯 유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는 수고롭게 둘러메고 온 유미의 가방을 그녀에게 휙 집어 던졌다. 유미는 갑작스레 품으로 날아든 자신의 가방을 받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교과서는 웬만하면 사물함에 좀 넣고 다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온 게 싫은 건지, 아니면 유미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싫은 건지. 이겸은 유미의 바로 옆에 서서 혼잣말 하듯 투덜거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겸은 손을 들어 한 차례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유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인 듯 순간 허공에서 손을 멈칫거렸다. 그러고는 당황한 낯빛으로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방금 뭐였지?’
유미는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들어 제 옆에 선 이겸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한없이 냉랭하게 굴던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겸의 손길과 말투는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유미는 차오르는 기대감으로 이겸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왜? 우리 이겸이 내가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는 게 싫어요? 응? 그랬어요?”
유미는 입술을 한껏 내밀고, ‘그래, 그래, 우쭈쭈’ 하는 표정으로 이겸을 향해 말했다. 만약 손에 가방이 들려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줬을지도 몰랐다. 눈빛으로 엉덩이를 희롱당한 이겸은 눈꼬리를 올리며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싫어.”
순식간에 이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갑작스레 달라진 그의 표정에 유미는 또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겸이 살며시 몸을 낮춰 유미의 귓가에 제 입술을 갖다 대었다. 가까워지는 이겸의 체향에 반응한 유미의 심장이 펄떡거렸다.
“봐도 모르는 거 무겁게 들고 다니면 뭐 해? 몰랐어?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면 키 안 커.”
유미는 이겸에게서 무언가 달콤한 말이 돌아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얼굴도 못생겼는데, 키라도 건지려면 분발해야지. 안 그래?”
비아냥대는 이겸의 목소리에 유미의 미간에 빽빽하게 주름이 잡혔다.
“가방 좀 들어줬다고 유세는!”
유미가 입술을 비쭉거렸다. 아마도 그녀는 이겸의 반응에 실망한 듯 보였다. 이겸이 아직 덜 자란 듯 자신보다 한참은 아래에 있는 유미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한참 더 커야겠다, 너.”
이겸은 제 가슴팍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유미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대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걸어갔다.
“키 큰 여자가 좋다고? 취향이 그쪽이었어?”
유미는 이겸의 뒤통수에 대고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겸은 유미의 질문엔 대답도 하지 않고 비웃음을 흘려보냈다.
‘뭔데? 그래서 뭐, 키 큰 여자가 좋다고? 아니면 내가 좋다고? 대답은 해줘야 할 거 아냐.’
유미는 이겸이 키 큰 여자를 좋아한다면 바로 오늘부터 어떻게든 키를 1cm라도 늘일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설사 생물학적 한계에 부딪친다고 하더라도 유미는 그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싶었다. 이겸은 제게 너무도 완벽한 취향이기에 그 정도 수고로움쯤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유미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사이 자리 배정이 새로 되었다. 유미의 자리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창가 자리였다. 그 자리가 좋은 이유는 원하던 자리여서라기보단 옆 분단,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 앉은 이겸이 잘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미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대각선으로 보이는 이겸의 뒤통수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겸은 확실히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편이었다.
‘왜 나한테만 그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유미는 이겸이 제게만 불친절한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원래 사랑에 서툰 남자들은 괴롭히는 것이나 심한 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는 한다. 사춘기 소년은 특히 더 그런 편이라고 했다. 이겸은 툭툭 되는 대로 말을 내뱉으면서도 결국 유미가 원하는 걸 무시하지 않고 다 들어주었다.
유미는 이겸이 제게 마음이 있지 않고서야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할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섰다.
‘짜식. 좋으면 좋다고 하지.’
유미는 유리창에 반사된 이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그려놓은 것처럼 진한 눈썹과 한쪽만 깊게 진 외쌍꺼풀이 매력적이었다. 그 아래로 곧고 길게 뻗은 콧대가 그의 인상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매력은 앵두같이 빨갛고 도톰한 입술이었다. 그걸 굳이 표현하자면,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 적당할 것이다.
유미는 저도 모르게 유리창에 비친 이겸의 얼굴선에 손가락을 뻗어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런데 그때, 이쪽을 쳐다보는 이겸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정확히 그 창에 비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빛이 어떻게 친구를 바라보는 거냐고. 좋아하는 이성을 바라보는 진한 눈빛이지.’
유미는 그가 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중함과 진중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고백하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혹여 고백에 실패해서 친구 관계마저 끊어질까 봐. 또는 마음이 맞아 사귀었다 하더라도 헤어져 버릴까 봐. 무수한 이유로 포장된 이겸의 마음은 결국 첫 포장지마저 벗겨내지 못한 원상태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였다. 세월아 네월아 그의 고백을 기다리느니, 자신이 먼저 고백하는 것.



우뚝 솟아오른 분홍빛 벚꽃 나무 아래. 유미는 눈처럼 곱고 부드러운 벚꽃 잎에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널 많이 좋아해.”
새하얀 얼굴에 오목조목 들어찬 예쁜 이목구비, 볼에 앙증맞게 폭 파인 보조개하며, 뭇 남성들의 로망인 등허리를 덮을 만큼 길게 떨어지는 생머리까지. 누구든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예쁘다거나 사랑스럽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유미가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은 적은 있어도, 자신이 직접 고백을 하는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 이겸의 앞에 마주 서 있는 자체만으로 유미의 가슴은 더할 나위 없이 벅차올랐다.
“뭘 해?”
유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이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좋아한다구.”
유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유미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갔다.
“누가? 네가, 나를?”
예쁘고 여린 여고생의 풋풋한 고백을 받은 이겸의 표정이 이상하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어딘가 슬퍼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러한 표정을 동반한 이겸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계속되는 이겸의 반문에 유미는 수줍게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어 올려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들의 좁은 간격 사이로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불었다. 피부에 와 닿는 봄바람의 감촉은 더 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하나, 이겸과 유미, 두 사람 사이에 부는 바람은 어쩐지 냉랭하기만 했다.
“그래. 내가, 너를…… 좋아해.”
이번엔 확실하게. 제대로 들으라고. 또박또박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하는 유미의 음성이 미약하게 떨렸다. 의사 전달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겸의 입술을 비집고 또 다른 질문이 흘러나왔다.
“날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좋아하냐고 되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유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유미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왜?”
이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하고 멍하게 서 있는 유미를 추궁하기에 이르렀다. 뭔가를 기대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동도 없는 눈동자로 한참이나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간만큼 유미의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벌어지지 못했다. 그러자 이겸의 입매가 기분 나쁜 형태로 비틀어져 올라갔다.
유미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겨우 이 사랑의 소중함을 알았다. 지독히도 오랜 시간 동안 이겸만 짝사랑 해왔다.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겸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99.9%의 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고백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겸의 싸늘하고 차가운 반응에 유미는 몸을 움찔 떨었다.
“왜…… 라니?”
유미는 이겸의 입에서 무미건조하게 흘러나온 질문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데에는 딱히 커다란 이유가 없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했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는 유미를 보며, 이겸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할 거면서. 무슨 고백을 하겠다고. 웃기지도 않네.”
유미가 치아로 아랫입술의 정 가운데를 지그시 누르고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첫 번째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진심이 이토록 무참히 짓밟히는 건 몹시 불쾌했다.
“사랑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이유가 왜 없어.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사랑이 어디 있다고.”
유미는 단 한 번도 그를 향한 사랑에 이유를 갖다 대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유 없는 사랑은 없다고 말했다. 그 말 한 마디에 그녀의 온 세상이 다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이유 없이 널 사랑해. 정말이야!”
유미가 호소하듯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말해보았지만.
“웃기지마.”
낮게 목소리를 내는 이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넌 날 사랑하지 않아.’
이겸은 차마 속에 담은 말은 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감춰냈다.
“사람이 진심을 고백하는데 왜 그렇게 재수 없게 굴어? 지금 내가 너한테 장난하는 걸로 보여?”
유미의 마음속에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감정이 그 정점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럼 나는 장난하는 걸로 보여, 공유미?”
눈이 내리는 것처럼 그들 머리 위로 순식간에 벚꽃 잎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진심을 고백하는데, 최소한 잠깐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마음 졸여 고백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조차 없는 이겸의 행동에 유미는 화가 났다.
“생각 같은 걸 뭐 하러 해,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이겸은 평소 유미에게 까칠하게 굴기는 했지만, 이렇게 사람 마음을 무참히 짓밟을 만큼 못되지 않았다.
‘왜?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아프게 말하는 거야.’
유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고백을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듯 행동하는 이겸의 반응에 유미는 결국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그시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쓰디쓴 피 맛이 났다.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입술을 내리 누르는 힘이 조절되지 않고 더 세진 탓이었다.
“그리고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것은 ‘싫다’는 거절의 말보다 더욱 가슴 아픈 말이었다. 실낱같은 희망과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것이었다. 눈망울 가득 눈물이 들어찬 유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유미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그의 메마른 검은 눈동자가 그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그게 누군데?”
눈물을 집어삼킨 유미가 이겸에게 물었다. 거기까진 묻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미는 자신의 고백을 이렇게 단칼에 잘라낼 만큼 좋아한다는 그 대단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네가 안다고 달라질 건 없어.”
순식간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향한 질투심이 뻥 뚫린 유미의 마음을 채웠다.
“누가 됐든 아직은 ‘좋아하는 사람’인 거네. 맞지?”
유미가 확인하듯 물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이겸이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없는 세상을 견디고 호흡하는 일은 유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헛된 기대는 버려. 어차피 우린 안 돼.”
이겸은 확실히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유미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그게 유미를 착각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그가 지금 유미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제 좀 확실히 알겠다.”
유미가 두 눈에 그렁그렁 들어찬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우는 유미의 모습에 이겸의 동공이 살며시 흔들렸다.
“나중에 나한테 차일까 봐 몸 사리는 거지?”
“뭐?”
당당하게 흘러나오는 유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겸은 절로 말문이 막혔다.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친구와 연인 사이도 다르겠지. 그게 두려운 거잖아. 사귀고 나서 내가 너한테 실망할까 봐.”
아직도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는지, 간간이 훌쩍거리며 유미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이건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황당함을 넘어선 놀라움에 이겸은 경악했다.
‘역시, 저 녀석.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어.’
이겸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짚었다.
순간, 이겸의 속에서 울컥 설움이 북받쳤다.
“너 있잖아…… 아무래도……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사고 나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거나…….”
“뭐?”
울음 섞인 유미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지? 머리가 다친 게 아니면, 미친 거야?”
이겸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유미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눈썹을 팔(八)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난 다 알아. 네 마음.”
“너, 대체…….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이겸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황당해서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자기만의 착각에 빠진 유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하니까 당황한 거잖아. 남자답게 먼저 고백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고백해서 자존심 상해서 그러는 거지?”
흥분하여 점점 벌게지는 유미의 얼굴을 따라 이겸의 볼도 붉어졌다.
“병원은 네가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고백 받고 나니까 가슴이 두근거려 미치겠지? 응? 지금 네 심장, 괜찮은 거니?”
이어지는 유미의 물음에 이겸은 기가 찼다. 분명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싫단 소릴 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직진녀가 바로 공유미인 것을 이겸은 잠시 망각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대로 계속 대화를 나눴다간 유미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말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이겸은 그대로 휙 뒤돌아서 걸어갔다. 이럴 땐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야! 신이겸! 어디 가! 너 이대로 가면 끝이야, 끝! 내가 다시 너한테 고백할 날이 올 줄 알아? 기회가 있을 때 잡으라고! 이 바보야!”
제자리에서 발까지 동동 구르며 큰 소리를 내는 유미의 외침에도 이겸은 고개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다음 날. 학교 건물 뒤쪽의 인적이 드문 벤치. 구슬픈 음색이 조용한 공터에 가만히 울려 퍼졌다.
“울지 마, 유미야.”
벤치의 가장자리에는 눈물과 콧물로 뭉그러진 휴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유미는 눈물을 그쳤다가도 또다시 끅끅거리며 울었다. 그런 유미가 안됐는지 주하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내가, 어? 자길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를 깔 수가 있어?”
“이겸이도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말 못 할 사정? 그런 게 대체 있기는 한 거야?”
유미는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아니, 그 ‘위로’라는 단어조차 싫었다. 위로를 받는다는 건, 자신이 이겸에게 차였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걸 테니까.
“이 세상에 신이겸보다 잘난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난 신이겸이 아니면 안 돼.”
눈물, 콧물 다 뽑아내며 엉엉 우는 유미를 보며 주하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하가 잘게 떨려오는 유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래서, 신이겸이 절대 넌 안 되겠대?”
“‘절대’는 절대 아니었어!”
“여지는 남겨뒀단 소리네?”
유미가 동의하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겸이, 나한테 마음 있는 거 같지, 응?”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여자들 사이에 정해진 무언의 룰 같은 것이었다.
“너한테 마음도 없는 애가 그렇게 너랑 꼭 붙어 다닐 리가 없지!”
“그렇지! 날 안 좋아한다면서 왜 등·하굣길마다 같이 다니는 건데? 왜 내 부탁은 거절하지도 못하고 다 들어줘? 오늘 하루 종일 멀리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뭐였냐고!”
썸만 18년. 끝을 내든, 시작을 하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미쳐 날뛰는 심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글쎄, 나한테 이렇게 인상을 쓰고 그러는 거야!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하고 말이야”
유미가 난데없이 이겸의 흉내를 냈다.
“진짜? 신이겸이 그래?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누구? 누군진 안 물어봤어?”
여자라곤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녀석이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 유미는 물론이고 주하도 그게 누군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짐작 가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해.”
유미는 짐짓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그게 누군데?”
“나.”
유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막힌 한 글자에 주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설마 했는데……. 얘 진짜 중증이구나.’
유미를 위로하던 주하의 손길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배회했다.
“유미야.”
“응?”
“힘내…….”
때마침 울린 수업 종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주하를 구해주었다.
“주하야. 다른 사람한텐 나 신이겸한테 차인 거 절대 비밀이야. 알았지?”
“알았으니까. 눈물 좀 닦아, 코도 좀 풀고.”
주하는 잔뜩 풀이 죽은 유미를 다독거려 주었다. 과하게 길고 큰 한숨을 내쉬는 주하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깊어졌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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