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우리 집 고양이를 보고「이건 몇 대째 고양이입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2대째 입니다」라고 대답했으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2대째는 벌써 옛날에 지나갔고 실은 3대째가 되어 있었다.
초대는 떠돌이 도둑고양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꽤 유명했었지만 그와는 달리 2대째의 생애는 주인인 나조차 잊어버릴 만큼 단명했다. 나는 그 고양이를 누가 어디에서 데려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손바닥 위에라도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몸집으로 그가 내 곁을 돌아다녔던 당시를 아직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 가엾은 동물은 어느 날 아침 집사람이 이부자리 갤 때 실수하여 그만 밟아 죽이고 말았다. 끙 하는 소리가 들려 이불 밑에 기어들어가 있던 그를 꺼내어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는 그로부터 하루인가 이틀인가 후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에 온 게 바로 지금의 새까만 고양이이다.
나는 이 검은 고양이를 귀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고양이 쪽에서도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만 할 뿐, 별로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오려는 호의를 보인 적이 없다. 한번은 그가 부엌 찬장 속으로 기어들어가 냄비 속에 빠졌다. 그 냄비 속에는 참기름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몸뚱이는 마치 포마드라도 바른 것처럼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 번쩍이는 몸으로 내 원고지 위에 드러눕기까지 해서 기름이 원고지 바닥까지 줄줄 배어 들어 나를 상당히 곤란하게 했다.
작년, 내가 자리에 눕기 조금 전에, 그는 갑자기 피부병에 걸렸다. 얼굴에서부터 이마에 걸쳐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또 연신 발톱으로 긁는 바람에 부스럼딱지가 떨어지고 빨간 살이 드러났다. 나는 어느 날 식사중에 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바라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저렇게 부스럼딱지를 흘리면 혹시 애들한테 전염이 될지도 모르니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라고」
나는 집사람에게 이렇게 말은 했으나, 속으로는 병이 병인 만큼 완치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옛날,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서양 사람이 모 백작으로부터 혈통 좋은 개를 받아 귀여워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피부병으로 시달리게 되어 보다 못한 그가 의사에게 부탁하여 죽였다는 이야기를 나는 또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취약인가 뭔가로 죽이는 쪽이 오히려 고통이 없어 행복할지도 몰라」
나는 이말을 몇 번씩 되풀이했으나 고양이가 아직 내뜻대로 되지 않는 사이에 내 쪽이 그만 병으로 덜컥 드러눕고 말았다. 그리고 누워 있는 동안 나는 결국 한번도 그를 볼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고통이 직접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탓인지, 그의 병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다.
10월로 접어들어서야 나는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그를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의 흉물스럽던 피부에 본래대로 새까만 털이 돋아나고 있었다.
「어, 다 나을 모양이네?」
나는 병치레 뒤의 단조로운 눈길을 끊임없이 그에게로 쏟아부었다. 그러자 쇠약한 내 몸이 점점 회복해져 감에 따라 그의 털도 점점 짙어져 갔다. 그렇게 평소의 모습을 되찾더니 이번에는 전보다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의 병의 경과와 그의 병의 경과를 비교해 보고, 가끔 거기에 알 수 없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은 암시를 받는다. 그러고는 또 얼른 별 바보 같은 생각을 다 한다고 미소 짓응다. 고양이 쪽에서는 그저 야옹야옹 울기만하니 어떤 마음으로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 p. 116~119
소오세키는 모순이나 그늘, 또는 에고이즘과 불신으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인간 군상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파헤친 작가였다. 소오세키가 사유하고 있는 <유리문 안>이라는 공간은 소오세키 산방으로 불리던 그의 집 가운데 있던 서재이다. 그는 이 <유리문 안>과 밖을 자신의 내면 세계와 바깥 세계를 경계짓는 은유로써 사용하며, 담담한 어조로 유리처럼 투명한 마음의 산책을 하는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다음 길모퉁이에 왔을 때 여자는 또 '선생님께 배웅을 받다니 영광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자가 간단히, 그러나 또렷하게 '그렇습니다'했다. 나는 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여자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고 나서 백 미터쯤 더 갔다가 다시 집 쪽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오히려 오랜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향기높은 문학작품을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기분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락좌나 제국극장에 가서 의기양양해 하던 자신의 옛그림자가 어쩐지 한심하게 여겨졌다.
---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