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와 나의 즉흥적인 이 작전은 애초부터 혼나는 게 불 보듯 뻔했다. 순찰 중이던 점장이 근처에 있었던 데다, 매번 매장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곤 하는 호프만 씨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가시와기 씨도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꼬마 유리의 기운찬 표정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모든 걸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잘 지냈어?”
꼬마 유리가 잉꼬 유리의 머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러자 잉꼬 유리가 꼬마 유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유리, 주거.” ---「유리와 유리」중에서
“때마침 잘됐네. 모두에게 소개할게요. 오늘부터 두 달간 회계 업무를 봐줄 시카다 씨입니다.”
나와 고타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자가 일어서며 코에 털이 묻은 고양이처럼 킁킁거렸다.
“시카다 미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아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고타, 마키타 씨, 아카이 씨를 보는 눈도 그랬다.
인사를 마친 뒤 시카다 씨는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이 컴퓨터 쪽으로 갔다. 마키타 씨가 아카이 씨를 보며 인상을 썼다.
“저기, 시카다 씨. 자기소개를 좀 더…… 좋아하는 동물이라든지…….”
당황한 가시와기가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불쑥 말했다.
“동물이라면 다 좋아요.”
그 직후 나는 그날 세 번째로 심장이 멎을 뻔한 충격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더니 시카다 씨가 툭 뱉어 덧붙인 한마디 때문에.
“하지만 동물을 판매하는 펫숍은 정말 싫어요!” ---「고양이를 닮은 그녀」중에서
밤 9시가 넘었을 무렵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가시와기 씨의 이름이 떠 있었다.
“가가가가가쿠토! 지금, 나, 너, 집, 앞!”
받자마자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와 토막 난 단어가 들려왔다. 수신 상태가 안 좋은가 싶었지만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진정하세요. 무슨 일이에요?”
“집 앞이라고! 빨리! 문 열어! 무서워!”
“……무섭다고요?”
“어!”
“저기…… 지금 고타랑 단골 술집에 있는데요.”
“나, 갈게! 술집, 간다!”
전화가 뚝 끊겼다.
“왜 그래?”
(중략)
가시와기 씨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반쯤 이성을 잃은 채로 말했다.
“무서웠어!”
가시와기 씨를 방으로 데려와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우롱차를 주문했다. 여직원이 가시와기 씨 앞에 우롱차를 놓으며 “디스 이즈…… 우롱티”라고 말하는 바람에 고타가 즉각 설명했다.
“이 사람,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니까 안심해요.” ---「비 오는 날의 여우」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야. 나쓰카와가 알려줬지. 하아, 왜지? 소중하게 대해준 남자가 누구냐고 그러니까 제일 먼저 그 녀석이 떠올라버렸네.”
언짢지만 즐거운 듯이, 슬프지만 기쁜 듯이. 마키타 씨는 턱을 괴며 그런 웃음을 지었다.
나는 가시와기 씨를 억지로 일으켜 넷이서 다시 한 번 건배했다. 마키타 씨는 당연한 듯 가시와기 씨의 물을 소주로 바꿨고, 다시 요단강을 건너간 가시와기 씨를 보며 크게 웃었다.
“너희도 한창때 사랑 많이 해. 그러다 힘들어지면 이 누님이 같이 마셔줄 테니까.”
그러면서 마키타 씨는 씩씩하게 웃었다. 여러 가지로 잘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는 건 정작 자신이면서 어느새 우리를 격려하는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역시 이 사람은 멋지고 착하고, 최고였다.
그 후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노래방에서 함께했다. 지불은 역시 당연한 듯이 마키타 씨가 했고, 돈은 가시와기 씨의 지갑에서 나왔다. ---「영원의 사랑」중에서
가시와기 씨는 헛기침을 했다.
“구도 씨는 우리 매장을 신뢰해주셨어. 그리고 우리 매장은 손님을 신뢰하지. 더군다나 우리라면 반드시 이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해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도 있어. 그러니까 이 아이는 우리가 맡는다. 이 아이를 한평생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찾자.”
고타는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소리쳤다.
“그런 거 다 거짓말이야! 희귀한 견종 하나 들여놓고서 손님 끌고 싶은 거잖아!”
그 귀를 찌르는 쇳소리를 성난 목소리가 막아섰다.
“적당히 해!”
그렇게 외친 건 가시와기 씨가 아니었다. 마키타 씨도, 구도 씨도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중략)
고타의 눈에는 분노가 스며들어 있었다. 분노의 대상은 나뿐 아니라 가시와기 씨와 구도 씨, 마키타 씨, 그리고 그 자신에게조차 향해 있는 듯했다.
고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아이를 맡는다는 말이요. 점장님, 이거 업무상 명령입니까?”
나는 가슴이 욱신욱신 아려왔다.
“그래.”
가시와기 씨가 굳건하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케이지 꺼낼게요. 가격표는 나중에 붙여주세요. 실례했습니다.” ---「사모예드와 시로타로」중에서
강사는 “‘나는’으로 시작해 ‘라는 인간입니다’로 끝나는 문장을 다섯 개 써보세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글을 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뻥, 하고 수업에서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샤프펜슬을 한 손에 들고 억지로라도 글을 써나갔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인간입니다.’
이 문장은 꼭 초등학생의 자기소개 같았다. 이런 자기소개를 하는 초등학생은 보통 사육사 당번을 시킬 게 뻔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냈지만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자, 모두 쓴 것을 보여주세요. 왼쪽 제일 앞사람부터.”
강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몰래 수업을 빠져나갔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만들면서 깨닫고 말았다.
나는,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구나.
---「인간이라는 동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