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조지
는 거대한 거북이다. 그가 무대에 등장한다. 수억 년을 산 거대한 거북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무대에 오른다. 잠시 숨을 돌린다. (이 역시 거북 개념의 잠시를 말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로 포효한다. 그리고 포효한다. 그리고 포효한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다시 부르짖는다. 다시 한숨을 쉰다. 그러는 동안 몇 분이 흐르고, 몇 시간이 흐르고, 몇 주가 흐르고, 몇 년이 흐른다.
이제 슬픈 음악이 들린다. ? -----. 음악이 아무리 슬퍼도 조지만큼 슬프지는 않다. 음악은 조지에게 가닿지 않는다. 그의 멜랑콜리와 고독은 인간의 상상을 벗어나는 곳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의 멜랑콜리와 고독은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세계에 아주 우울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우울함과도 같지 않다. 조지는 그의 종속 중 마지막 남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변하고 또 변하는 동안 마치 나이테처럼 굵은 주름이 하나둘 깊이 새겨졌다. 한 세기, 한 세기 그의 이마에 새겨졌다. 조지는 모든 것을 경험했다. 모든 것이라면 좀 거창하기는 하다. 그러나 조지 역시 거창한 존재다.
고독한 조지 나는 태어났고 걸음마를 배웠고, 읽는 법을 배웠고, 쓰는 법을 배웠고, 수秀도 받아 보았고, 가可도 받아 보았고, 월반도 해봤고, 낙제도 해봤다. 술에도 취해 보고, 토하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술에 취해 토할 때 그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주기도 했다. 그 다음 그녀와 섹스했다. 콘돔을 쓰기도 하고 콘돔을 쓰지 않기도 했다. 이따금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가 되었고, 남편이 되었고, 이혼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첫 번째 아내와 나중에 다시 결혼했다가 또다시 이혼했다. 여자들과 결혼하고, 남자들과도 결혼했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회 복지사로 근무했다. 청소년 사회 문화 요원으로도 한 해 동안 활동했다. 외국에도 가 봤다. 군에도 입대했다. 독일제국 군, 소련 군, 러시아 백군, 미군, 대영제국 군, 대영제국 해군, 대영제국 공군, 볼셰비키 군, 멘셰비키 군, 로마 군단, 혁명 군단에서도 복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편에서 싸우기도 했고 저편에서 싸우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미국 남북전쟁에도 참전했다. 스페인 혁명전에도 참전했다. 모든 시민전쟁에는 다 참전했다. 삼십년 전쟁에서도 백년 전쟁에서도 싸웠다. 영원한 전쟁에서도 ㅆ웠다. 프랑스 혁명을 위해 싸웠다. 트로이 목마도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구사한다. 괴테와 편지도 주고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티렉스 멤버 한 명과도, 어떤 프랑스인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프리드리히 실러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밖에 많은 이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도르노, 버틀러, 옐리네크, 스티브 잡스하고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여자 친구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대 서사극을 썼다. 독일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백만 유로를 땄다. 미국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 인가] 프로그램에서도 백만 달러를 땄다. 아프가니스탄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서도 백만 아프가니를 땄다. 축구 세계 챔피언이었고, 핸드볼 세계 챔피언이었고, 골프 대회에서도 세계 1위를 했다. 테니스 대회, 탁구대회,사이클 대회에서도 세계 1위를 해 봤다. WBF, WWF, WBC, WBA, WWC, WWA, WCA, WWW, IBO, EBO, WTF의 유럽 대회, 세계대회에서 라이트급, 중량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메달을 땄다. 라푼첼의 머리채가 바닥에 닿는 것을 보았다.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아 보았고, 평화상, 과학상도 받아 보았다. 나는 배우였다. 나는 내 껍질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계속 할까? ---「슬픔과 멜랑콜리」중에서
부고
박본 (1987-2012)
박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지구상에 살았던 또 한 명의 인간을 잃었습니다. 그는 누구나 하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남보다 잘한 적도 있고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남들처럼 먹고 마셨으며 다행히 섹스도 해 봤습니다. 담배도 많이 피웠습니다. “피우든 안 피우든 결국은 누구나 죽어”라는 모토 하에.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후의 삶이 복된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현세의 삶과 교환한 것이 결국 잘한 일이었기를 희망합니다.
---「박본을 애도함」중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 남조선 대통령은 사소함에 사로잡힌 듯합니다. 북한 선전 문구가 새겨진 손수건을 건넵니다. 조금 부끄럽습니다. 누나가 눈물을 닦기 전에 그 문구를 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근혜 누나, 말이지. 정말 쉬운 일이야. 통일 아니면 쾅? 최선이냐 최악이냐지. 어쩌면 좋겠어? 누나, 정말 쉽다니까. 우리 그냥 하자고.” 누나가 이럽니다. “그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야. 정말이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내가 영혼을 다해서 말하는 건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그녀의 눈물로 솟아올랐던 희망이 단번에 다시 사라지는 걸 느끼지만, 뭐 생각지 못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배낭에서 마지막 무기를 꺼내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안녕하세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꼬마야, 몇 살이니?
암에 걸린 어린아이 여덟 살하고 석 달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저런! 학교 다니겠네?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아니요, 이젠 안 가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왜?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암에 걸렸거든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정말? 그거 큰일이구나. 무슨 암인데?
암에 걸린 어린아이 전부 다요. 암이란 암은 모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애구, 그거 정말 안됐구나. 뭔가 내가 해 줄 것 없니? 소원 있어? 초콜릿 줄까?
암에 걸린 어린아이 싫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장난감? 플레이스테이션?
암에 걸린 어린아이 싫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아무것도?
암에 걸린 어린아이 제 소원은 통일이에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정말 그것밖에 없어?
암에 걸린 어린아이 오로지 통일이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꼬마야, 미안하구나. 그게 안 될 것 같다. 근혜 아줌마가 그러는데 그건 정말 안 된대.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아, 그래요? 알았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짜증 난단 말입니다. 제 소원도 오로지 통일입니다. 그런데 근혜 누나는 “정말 안 돼. 미안해.” 이 말만 자꾸 한단 말입니다. 그건 누나가 대통령 직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 상실했다는 분명한 증거란 말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겁니다. 이 세상의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이제 무너질 때가 된 겁니다. 그렇게 간단한 결정을 왜 못합니까? 이 행성은 대체 왜 이 꼴입니까? 저는 그녀의 팔을 쓰다듬고 어깨를 잡은 뒤 눈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그랬더니 제 눈에서도 문득 눈물이 떨어집니다. 단추를 누릅니다. 엄청난 굉음이 들립니다. 근혜와 찌질이 통일부 장관이 창가로 달려갑니다. 밖에서는 폭발음이 지속해서 들립니다. 그런데 어디에서고 파괴되는 기미는 없습니다. “아, 저기.” 마침내 멀리 고층 빌딩 유리창에 하늘의 오색 불빛이 반사되는 걸 발견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기 아름다운 폭죽이 터지면서 이런 글을 씁니다. “이 바보 멍청이들아!”
---「으르렁대는 은하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