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장塗裝 재료로서, 시대에따라 거듭된 발전을 이루어 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끊임없는변화와 시도를 거쳐 20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특히 옻 산지인 우리나라에서는 옻을 식용으로도 사용하였고,고대로부터 여러 기물에 옻칠을 한 칠기漆器를 만들어 사용하였다.이를 생활에 접목하여 방수와 방습의 완벽한 도료로서 활용하게된 그 시원은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낙랑 지역에서 다량의 칠기가출토된 바, 중국 한나라의 발전된 양식의 칠기가 문화의 교량지였던 낙랑을 통해 우리나라에 이입된 것으로 보는 막연한 추측이 한동안 있었다. 그러나 옻칠 연구자들의 고대 칠기품 발굴 연구 성과를 통해, 기원전 3세기경부터 우리 자생 칠기가 제작되었음이 밝혀졌고, 그 후에도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이 다양한 출토 유물을 통해 확인되었다.놀라운 것은 원삼국 시기까지의 우리 초기 자생 칠기에서 이미 바탕 재료로 나무, 금속, 도자, 천 등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것이대부분 조선 시대까지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초기 칠기의 표면에는 주칠과 흑칠이 사용되었으며, 가구는 물론 신발과 낚싯바늘 등에까지 매우 광범위한 칠기 사용이 확인된다. 특히 기원전 1세기의광주 신창동 유적과 창원 다호리 칠기 발굴품 중에는 매우 얇은 나무를 돌려 붙여서 만든 통형 그릇이 있는데, 이는 새로운 목공 기술을 말해 준다. 즉 기원전후에 우리나라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목칠 공예 기술이 발달하고 있었던 것이다.삼국 시대를 거쳐 조선을 지나는 동안 우리 옻칠 기술은 더욱발전하여 평탈, 나전 등과 같은 다양한 장식 기법들도 나타났다. 나라에서는 옻칠을 관장하는 관서를 만들거나 국가 소속의 칠장들을 법으로 규정하여 발전을 도모하였다.
--- 「공저자 조훈상 외 3명; 머리말」중에서
만드는 방법은 채취한 옻액에서 천(삼베, 면포 등)을 이용해 입자가 큰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천을 펴서 안쪽에 옻액을 넣고 돌려 짜면서 칠통에 받는다. 그리고 걸러낸 옻액에 솜을 잘게 찢어 넣는다. 솜과 옻액이 골고루 섞이도록 나무 막대기로 계속 저으면, 걸쭉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 칠통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해 하루 정도 재운다. 이 과정에서 옻액 속의 미세한 이물질이 솜에 들러붙는다. 24시간 후 나무 막대기로 밑에 가라앉은 솜을 골고루 저은 뒤에 천을 이용해 솜을 걸러 낸다.
--- 「1장 ‘옻칠을 말하다’」중에서
옻액 채취는 6월 초순부터 10월 말까지 이루어진다. 입목立木 상태에서 사람이 이동하며 채취한다. 주로 6년생 이후부터 채취하며, 권장 수령은 8~10년생 시기이다. 홈을 내고 흘러나온 옻액을 채취한다는 방법은 같지만, 내는 홈의 수, 채취 간격 등에 따라 세부 방법이 나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채취 방법으로는 지칠 기법(가지내기 기법)과 화칠 기법이 있고, 현대의 개량 채취 방법으로는 살목채취법(살소법殺搔法), 생채취법(양생법養生法), 쌍긁기법(고소법鼓搔法) 등이 있다.
--- 「2장 ‘옻칠을 꾸리다’」중에서
기물의 바탕 재료 없이 베와 토회칠로만 형태를 만든 후 여러 번 옻칠을 하는 기법이다. 나무와 점토, 스티로폼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모양틀을 만든 후 그 위에 옻칠과 천을 겹겹이 쌓아 올려 형태를 만든다. 형태가 완성되면 내부에 있는 모양틀을 제거하고, 옻칠로 장식해 완성한다. 완성이 된 작품은 크기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보존 기간이 매우 길며, 다른 재료로는 불가능한 형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3장 ‘옻칠을 하다’」중에서
인류사에 있어 금속의 발견은 석기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아시아에서 이용된 옻칠 역시 당시 상류층만 쓸 수 있는 최고급 소재였다. 이러한 두 재료의 조합은 강도 강화, 부식 방지 등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줌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옻칠이 된 금속 유물은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좋으며, 현대의 금태는 여러 가지 재료, 색채와 어우러져 더욱 다양하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 「4장 ‘옻칠을 누리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