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에 붕괴할 것이라고 보았던 북한체제는 그동안 두 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중반에 그랬던 것처럼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 북한체제의 붕괴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2인자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김정은이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북한을 개방하고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교하고 스마트한 대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2012년체제’의 구축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진행된 2000년대 북한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본질적 성격과 과도적 성격 사이에서의 방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담론 달성을 위해 북한 경제의 현실을 수용한 실용적 경제정책과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전통 경제시스템의 복원·강화 정책으로 회귀하면서도 실리를 버리지 못하는 전술적 진자운동의 반복이었다. 이는 아마도 사회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달성했다고 착각했던 김일성 시대에서 내려와 사회주의를 재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은 김정일 시대의 이행기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북한 역시 장기적으로 여타 사회주의 국가가 밟은 체제 이행의 경로(The path of transformation)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역사성에 규제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200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의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현실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경제난 이후 국가에서 제공했던 공교육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학부모가 부담하게 되면서 학교 내에서의 교육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학생들 중에는 형식적으로 10년제 초등 및 중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려 문맹인 경우가 늘고 있다. 한편 수재학교인 제1중학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지름길이 되면서 일반중학교 학생들의 대학 진학 기회를 현격히 제한하여 중등학교의 서열화라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 대중화의 기반인 인민교육체계와 국가경쟁력의 근간인 수재교육체계의 조화로운 발전, 최근 확산되고 있는 사부담 공교육비의 증가와 국가의 공적 영역 간의 조화 문제, 가정 배경에 따른 교육 기회 불평등과 계층 간 위화감의 감소가 북한 교육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마디로 ‘세련되어진다’고 표현을 하는데, 주로 인기 있는 것이 몸에 딱 붙는 바지, 가슴이 파인 옷, 머리핀, 말투, 헤어스타일 등이다. 청소년들의 경우 남한 영상매체에서 배운 남한 말투를 따라하는데, 소년단 지도원에게 발각된 경우도 있었고, 보안원이 말투를 통해 CDR 유통의 출처를 캐기도 한다. 헤어스타일은 일명 ‘거지머리’(끝을 길게 하는 스타일)가 유행했다. 사례2의 경우 평양에 가서 본 남한식 헤어스타일의 사진을 찍어와서 미용사에게 주며 그대로 해달라고 했다.
옷차림새의 경우 쫑대바지(몸에 딱 붙는 일자형 바지)가 유행이었다. 단속에 걸리면 보안원이 길거리에서 바지를 찢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를 수선하거나 새로 구입해서 다음 날 또 입고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남한 춤이나 노래를 배워서 친구들끼리 따라하는 경우도 있으며, 술자리에서 생일파티 문화를 따라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제작하고, 2001년 개봉된 [자강도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의 어려운 상황을 직설적으로 그려낸 예술영화이다. [자강도 사람들]의 주제의식은 “고난의 행군이 끝나도 쉬지 못하고 인민들을 이끌고 있을 온몸으로 고난의 행군을 견디고 있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을 다하자”는 것이다. 주제는 여전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표현 방식은 달라졌다. 드러내기 어려웠던 현실을 솔직히 드러낸다. 옥수수 알갱이를 세어서 40알씩 나누어주고, 먹을거리가 없어 ‘니탄(泥炭)’을 캐러 나갔다가 탈진해 죽어나가는 인민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죽은 동료를 언 땅에 묻고 돌아와 죽은 이를 추모하면서 풀뿌리, 나무뿌리로 대용식품 품평회가 열린다. 지긋지긋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이제는 ‘고난의 행군’에 대한 승리 의식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도 이겨냈는데, 지금의 어려움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