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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260g | 138*205*10mm
ISBN13 9791156751601
ISBN10 115675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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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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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중쉬어! 차렷!”
난 볼에 바람을 한껏 넣었다가 한숨과 함께 푹푹 내뿜었다.
“이게 몇 달 신경을 안 썼더니 완전히 군기가 빠졌어!”
기복 씨가 말하는 군기의 삼대 정신은 신속, 정확, 절대 복종이다. 이 삼대 정신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기 때문에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흐느적흐느적 내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천장이 뱅글뱅글 돌고 거실 소파가 툭 튀어나왔다 푹 꺼졌다. 나는 푸르르르, 입술을 떨며 한숨을 쉬었다.
“얼씨구, 술 냄새까지.”
미성년자가 술을 마셨다면 마실 만하기 때문에 마신 거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정신은 말짱했고 겁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나지 않았다. 말도 막 나왔다. 술이 이렇게 마법의 묘약인 줄 알았다면 난 만날 만취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집도 학교 못지않은 곳이니까.
“싫-어, 싫-다-고. 어-쩔-건-데, 기-복-씨?”
난 부러 느릿느릿 대꾸하며 실실 웃었다.
“어쭈, 기복 씨? 아주 막 나가자는 거지? 이게 실실 쪼개기까지.”
엄마는 끼어들 타이밍만 엿보고 있고, 고미는 지루한 드라마를 재방송으로 또 보는 표정이었다.
“이런 나사 빠진 놈의 새끼. 앉았다 일어섰다, 십 회 실시!”
어라? 그 순간 주술에 걸린 듯 내 입에선, “실시!”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난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복창 소리 봐라, 실시!”
“실시!”
난 기복 씨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이 죽일 놈의 고질병. 내 머릿속엔 기복 씨 명령에 대하여 무조건 복종을 담당하는 센서가 있음이 분명했다. 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고 동작을 멈추었다.
“뭐야? 반항하는 거얏?”
--- p.36~37

“박수!”
난 자연스럽게 박수를 유도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나는 세계적인 헤어쇼의 피날레 무대에 선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려고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애들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먼저 통합 탁자 안에 있던 신문지 가운데를 뻥 뚫어 관중이에게 씌웠다. 이어 신종 독감 예방 차원에서 각 반에 하나씩 배당된 손 소독제를 분무기로 생각하고 관중이의 머리를 빗질하며 칙칙 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커트에 앞서 왼손에 빗을 쥐고 오른손에 가위를 쥔 채 간단한 춤을 선보였다. 어느새 교실은 흥분의 도가니.
그 기세를 몰아 현란한 손놀림과 함께 커트에 들어갔다. 애들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도덕 선생님도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난 관중이의 곱슬머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빗질을 하며 뒷머리 옆머리 앞머리 순으로 머리끝을 거침없이 쳐 나갔다. 중간중간 가위를 빙빙 돌리면서. 공중 묘기를 부리는 비행기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가위의 움직임에 관객은 연방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커트가 끝나자 칠판지우개를 헤어드라이어 삼아 머리카락을 털어 내고, 왁스로 스타일을 살려 냈다. 그리고 다시 가위를 빙빙 돌리면서 신공에 가까운 헤어쇼를 마무리!
순간 여기저기서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진이마저 나를 보다가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애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도덕 선생님도 순순히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조창대! 헤어숍!”
애들은 조창대 헤어숍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로 열렬히 환호해 주었다.
“마이 네임 이즈, 가위손!”
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 자를 만들며 외쳤다.
“가위손! 가위손!”
그때부터 난 명실공히 가위손이 되었다. --- p.116~117

서울역 대합실 매표소 근처에 앉아 드로잉북과 연필을 꺼냈다.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헤어 스케치에 몰입하는 게 최고다. (중략) 처음에 한 시간 남짓 걸렸던 게 이제 십 분으로도 충분하다. 남들이 영화를 보듯, 독서를 하듯, 운동을 하듯, 난 헤어 스케치를 한다.
작품 두 개를 완성해 갈 즈음,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부스스 깨어났다. 갈 길 잃은 사람들 같았다. 문득 로즈 헤어숍 라디오로 들었던 디제이의 말이 생각났다. 지구의 모든 육지 면적보다 넓다는 태평양. 새들이 그 망망대해를 횡단하려면 날갯짓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힘찬 날갯짓이 필요할 때는 처음 날아오를 때와 비행의 방향을 바꿀 때라고 했다. 나머지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활공하거나, 그마저도 버거울 땐 배의 돛에 앉아 쉬면서 때를 기다린다고. 자기 안에 힘이 차오를 때까지,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새한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누구나 가쁜 숨을 고르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저 길 잃은 사람들도 지금 그런 때를 보내고 있는 거다. 기죽을 필요도 우울해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 p.166~167

엄마가 거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발그스름하게 충혈된 엄마의 눈이 나한테서 기복 씨한테로 옮겨 갔다. 어느새 기복 씨는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가볍게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 자나 깨나 네 걱정이었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한참 뜸을 들였다.
“아빠 젊을 때는 이발사 하고 싶어 했어.”
눈이 번쩍 뜨였다.
“군대 있을 때 깎사로 유명했다더라. 상사들도 다 네 아빠한테 줄을 서서 깎았다나 봐. 제대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했어. 몰랐지?”
--- 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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