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3분.
딸깍, 문이 열리고 찐빵이 들어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찐빵이다. 그녀의 별명이 찐빵인 이유? 매일 아침마다 부운 얼굴로 부은 얼굴로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밤마다 뭘 그렇게 먹고 자는지 그녀의 얼굴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찐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찐빵의 뺨을 언제고, 꼬집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그였건만, 오늘도 그 일을 해보지 못할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만 하게 변해버린 이런 상황이라면, 당분간은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한참만에야 그를 찾아낸 찐빵, 역시 찐빵다운 반응이다. 벌거벗은 자신의 나신을 보고 붉게 변하는 찐빵의 얼굴이란, 가히 예술적이다. 상황이 그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더 찐빵을 황당하게 만들어 끝을 보는 거였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손해 보는 것이 많은 날이었다.
엠보싱 화장지를 두르고, 빨대를 쪽쪽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두툼한 책 위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연신 그를 바라보고 있는 찐빵.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저기 그러니까, 박사님이 왜, 그렇게, 그런, 모습을,…….”
“내가 어제 놀라운 발명을 보게 될 거라고 했지?”
그의 말에 찐빵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지?”
“네? 네.”
실수를 인정할 수 없다. 찐빵 앞에서는 죽어도 실수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당분간은 이 상태로 있기로 했어.”
“왜, 왜요?”
“어릴 적부터 걸리버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
그의 대답에 찐빵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넌 어릴 때 엄지공주처럼 되고 싶다, 뭐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있어요.”
“그래. 그거와 같은 심리야. 당분간은 소인 걸리버가 되어 살아볼 생각이니까, 적극 협력하도록!”
마지못해 찐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단 찐빵에게 들킬 위험은 해결을 했고, 이제 원래의 모습대로 변할 방법을 모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볼펜을 잡는 것부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찐빵이 착안해낸 샤프심으로 필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6시가 가까워 오도록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놀랍던 집중력은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엠보싱 화장지라고는 하나 밑이 허전하고, 깔끄러운 옷은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찐빵, 마치 자기가 우위에 선 듯한 착각을 하고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맘에 들지 않았다.
“찐빵?”
“네. 박사님.”
“퇴근하자.”
퇴근이라는 말에 소니의 얼굴엔 단번에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유독 웅지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해서인지, 퇴근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퇴근 준비하고 나 데리러 와.”
“네?”
사무실로 향하던 소니가 웅지의 말을 듣고 사색이 되어 돌아섰다.
“무, 무슨?”
“날 이곳에 그대로 두고 가려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버려두고? 넌 혼자만 맛있는 밥 먹고, 편안하게 잠자겠다는 말이지? 불쌍하고 가련한 날 버려두고? 지금 진정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
“하, 하지만…….”
오늘 하루 내내, 웅지를 위해서 소니는 밥을 먹여주고, 화장실을 데려가고 모든 수발을 들고 있었다. 턱없이 작아져 버린 웅지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크고, 무엇하나 사이즈가 맞는 것이 없어서 찐빵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혼자서 해낼 수가 없었다.
“넌 내가 밤새도록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밥도 굶고, 나체인 채로 너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집으로 가서 나를 돌봐주든가, 아니면 너희 집으로 날 데려가든가 둘 중에 하나야. 그게 싫다면, 찐빵 넌 해고야!”
찐빵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말. 그것은 바로, 해고라는 말이다.
“전 외박하면 혼나는데요.”
“그럼 방법은 하나네.”
“하, 하지만…….”
“해고당하고 싶어?”
눈을 부릅뜨고 웅지가 소니를 째려보자, 소니가 움찔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네, 알겠습니다.”
“잠깐!”
“네?”
뒤돌아서서 나가는 소니를 다시 부른 웅지가 손짓을 해서 소니를 다시 제 앞으로 오게 만들었다.
“손!”
오늘 하루 내내 교육한 대로, 소니가 자신의 손을 책상 위에 내밀었다. 웅지는 얼른 그녀의 손바닥 위로 올라섰다.
“주머니에 넣어.”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