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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창비 청소년 시선-1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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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45*210*20mm
ISBN13 9791186367865
ISBN10 118636786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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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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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이 좋아 너를 닮은 공
우린 해가 기울어도 공을 던지지
나는 공이 좋아 허공을 흔드는 공
너와 함께 공중으로 손을 뻗으면
아직 몰라도 되는 허공이란 없지
나는 공이 좋아 광활한 허공
공중에서 너와 부딪치는 전율
나는 뛰어오를 거야,
너와 함께 어떤 것도 반짝이는 지금

― 「농구공」


자두나무 아래서
평상에 그 아이와 앉아서
음료수도 마시고 영화 이야기도 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 것인데
갑자기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그 아이의 연둣빛 새 옷은 젖으면 안 되니까
평상 밑에 있던 비닐우산 하나를 펼쳐
자두나무 위에 살짝 걸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사 온 빵을 함께 먹는데
비가 한 방울씩 더해 오니까
들고 있던 스케치북과 수학 연습장을 연결해
자두나무 위에 또 걸었다.
다행히 비가 잦아들면서 한풀 꺾인
평상의 물방울들을 양말로 쓱쓱 닦으면서
그 아이의 눈빛을 슬쩍슬쩍 살폈던 것인데
그 아이의 눈 속에 내 눈이 들어갔는지
나는 그 아이가 이제 그만 가자고 할까 봐
고개를 돌렸다가 까르르 웃었다가 할 사이에
평상 위의 빗방울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렸다.

― 「자두나무 아래서」



서울대에 합격한 녀석이
고민이 있다고 했다. 심각한
표정은 아니어서 먼 산을 보며 들었다.

학력 차이가 조금 있어도 괜찮을까요.
무슨 상관일까.
전문대에 다닌다면요.
천문대에 가 본 적 있느냐, 어떤 별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지
다른 사람 눈보다 둘의 눈 안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비슷해서 좋은 것은 더 비슷하게 하고
달라서 좋은 것은 더 존중해야겠지.
말처럼 잘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제대로 할 자신 없으면 그만둬야지.
아니, 그건 아니고요.
세월이 흐른 뒤에 알 수도 있겠는데
그거 모르고 살아가는 이가 대부분이야.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지식과 학력과 권력 같은 것들이
별들처럼
순결하게 나누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 「잘못된 상담」



빵의 기본은 식빵
밀가루에 대한 계량과
반죽을 치는 속도와 시간에 따라
식빵의 결이 다르지. 아무 생각 없이
우연의 손길로 반죽한 밀가루를
네모난 발효기에 넣고 40분 정도 발효시킨다면
빵도 쿠키도 아닌 슬픔의 물질이 나오는 것
채 익지도 않고 갈라지는 식빵의 틈,
여길 봐 반죽의 온도는 27도
수천 번의 연습으로 우연의 횟수를 줄여야 해,
갓 구운 식빵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선
잠들지 않는 풀빛과 소낙비와
은행잎과 흰 눈송이의 배합이
모두 이 반죽 안으로 녹아들어야 해.
바람처럼 가볍고 촉촉하고 달콤한
식빵으로 대동단결하려면
어디에도 없는 천연의 부드러움을 찾아야 해.
나는 소망하지, 빵을 굽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잘 몰라도
내가 구운 빵을 매일 너에게 주고 싶다는 것
정말이야, 나의 실습 일지엔
부풀어 오른 뜨거운 생각으로 가득하지.

― 「삼청동 식빵집 실습생」



고등학교 마치면 절에 가고 싶어요.
절이라니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냐?
오래전부터 머리를 곱게 깎고 싶었어요.
무슨 말이야, 머리 깎기 전에
심지 약한 그 마음부터 먼저 깎아야지.
그러자 걱정할 것 없다며 빙긋 웃더니
짧지 않은 마지막 겨울 방학 때
너는 정말 경주 근처 어느 산사로 들어갔지.
아니 너, 똥강아지, 세상 몇 년 살았다고
소동파나 이백 흉내를 내면 안 되지.
대학 가고 군대 다녀오고
그때까지도 흔들림 없는 길이라면 그때 결정해야지.
갑자기 겨울이 서두르고 눈발이 흩날리고
두 달 정도 아무 소식이 없다가
2월 어느 졸업식 날, 학교에 다닐 때보다
머리카락을 더 짧게 깎고 너는 나타났지.
그리고 빛나는 졸업장을 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하며 사는 것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공부 같다고 말했지.
그래,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
어딘가 또 다른 곳에서
더 빛나는 너의 가슴을 보고 싶다.
예외 규정이 많아 자꾸 빗나가는 나의 문법 시간.

― 「문법 시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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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라면 누구라도 그 뜨겁고도 꽃 피는 시간, 아니 빗나간 ‘엇’의 시간을 거치기 마련이다. ‘엇’은 말 그대로 ‘어긋나게’ 또는 ‘삐뚜로’의 뜻을 지니지만 시에 있어 그것은 단순한 부정이나 비판의 측면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태도와 방법으로서 부정의 생성을 함의한다. 그러한 ‘엇’의 시간을 성찰하는 것은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시인은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아이에게’ 묻는다.
김상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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