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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속구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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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0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55쪽 | 232g | 125*204*20mm
ISBN13 9788927802723
ISBN10 892780272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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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승원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정육점의 예수」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어둠과 설탕』(200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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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속구 심장

내가 사는 도시 우울한 불빛과 새하얀 남루가 골목마다 녹아 흐르는 타일에 묻은 수증기 미끈거리는 비누 등이 예쁜 여자 나이는 언제 광란의 밤이라는 프랑스 노래 과잉으로 듣는 이를 유쾌한 수치로 물들이는 제목 긴 머리에 잠옷 입은 여자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집이 괴물이라는 게 새로운 담론인가 해가 떠오르면 성장(盛裝)을 하고 바삐 집을 나서는 시민들 사랑한다는 말은 아주 쉽다 문제는 사랑이지 사랑은 난제다 아버지 덕에 고도성장하는 애들은 김가나 이가나 마찬가지

--- p.19 중에서


회현소녀대

서반아어에 ‘어머니가 없다’는 숙어는
부재가 아니라 혼돈과 지옥을 의미한대요
이상한 동그라미 안에 우릴 던지고
엄마들은 암흑 속으로 떠났어요
지옥에서 매일 천국을 생각하는 건 소설이구요
지옥에선 지옥만을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세계의 전부니까

--- p.55 중에서


현대라는 어휘에 대한 단상

태어난 생물은 모두 어김없이 죽지 혼자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어두운 하늘이 조도를 차츰 높이는 때
길가의 얼음이 사라지고 볕이 맑아지는 때
손톱을 차례로 물어뜯는다

불타는 신음 축축한 신음 다시 만나는 날까지

--- p.70 중에서


258번지의 차고

그 주택가 그 집 만이천 개의 하루를 보낸 방문객이 거실에 서 있다 그에게는 얼굴이 없다 가구들의 냄새가 서로 부딪친다 전화벨이 헛기침처럼 한 번 울리고 끊어진다 벽에 걸린 그림은 그믐이다 차가운 빛이 감돈다 잠겨 있지 않지만 서랍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거실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의 냄새가 흐른다 절단된 국화가 물속에 담겨 있다 가시는 식물에만 나지 않는다 공기 중에 있다 전화벨이 한 번 고양이처럼 울고 끊어진다 수화기를 들면 두 사람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린다 암흑은 연결되어 있다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있는 방들 어둠이 손잡이를 만지작거린다 옷가지나 가구가 얼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마당에서 감나무가 바람소리를 낼 때 계단은 차갑게 웃는다 텅 빈 상자가 상악(上顎)을 열고 있다 자동차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차선 차로에서 급정거 음을 내고 있는가 전화벨이 단말마처럼 울리고 끊어졌다

--- p.91


Super Moon

지난봄, 달아나는 기분으로 밝은 빛 아래를 걸었다.
꽃길을 지나면서 스물이 되던 해를 떠올렸다.
당시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기차역 앞 슬롯머신 업소에서 놀다 밤이 되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술에 취했다.
역겨울 정도로 비싼 구두, 야하고 천박한 셔츠, 파마넨트 머리.
그때 몇 년에 걸쳐 주변 사람 하나, 둘, 일곱 명이 차례로 죽어갔다.
구두보다 훨씬 싼 나를 한남대교에서 끝내려 했다.
눈 오던 밤, 검은 강물이 어서 내려오라고 청했지만 사양하고 혼자 춤추러 갔다. 이후 나의 비겁은 출발했다.
요즘도 그 다리 위를 달리면 달콤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장소.

(…)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무엇인가?
스미스를 듣는 남자와 오스카 와일드를 읽는 여자.
눈으로 말할 때 진위는 별개다. 눈빛은 웃음, 울음과 함께 연기의 기초다.
구토는 더없이 순수하다.
목련, 라일락, 국화, 코스모스, 동백. 이대로 지속될 수 없다.
퇴경 전후 옥외전광판에서 읽을 말이다.
일곱 살 무렵 마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눈에 들어간 먼지처럼 모른 체할 수 없는,
거짓말이 혈관처럼 흐르고 속임수의 심장이 울창하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지자 누구도 위로를 바라지 않았다.
부끄러운 에세이를 다 쓰고 달이 뜨는 밤, 모두 회피하고 먼 곳에 혼자 있을 거다.
고립.

--- p.96 중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

길 셀 수 없는 길들 샐 수 없는 차도
짧은 시간 혼란 속에서 구름을 향유하고 피 섞인 침을 뱉을까 망설인다 재미로 사는 거다
안식이 사라지고 뜻 모를 물체가 자라고
잘 안 되는 이유를 말해보자면 지구가 돈다는 걸 믿은 탓이지
방 안을 찬찬히 봐라 허술한 걸 모아왔구나
모두 이 어둠 속에서 네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 p.1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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