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의 철학은 전통적인 그리스 철학을 모태로 삼기 때문에 독창성 면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벗어나 로마의 전통인 실천성을 가미한 독립적인 철학을 의식적으로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그 독자성이 인정된다. 만일 키케로가 없었더라면 그리스 철학에 버금가는 로마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p.8
물론 인간이 법적으로 평등하다는 주장은 근대사상가에 의해서 확립되었지만, 키케로는 자연법에서 시민법을 도출하면서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률적 기초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는 근대의 법평등주의 이론 및 법과 국가에 관한 자연법 이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 p.72
키케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대화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찬성과 반대라는 양쪽 측면에서(in utramque partem)’를 구현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키케로가 제시하고자 하는 이상적 웅변가는 진리라는 철학적 지혜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수사학의 기술을 사용해 그 진리와 지혜를 법정과 민회와 원로원에 참여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드러난다. --- p.84
철학적 삶에 지혜와 철학이 필요하다면, 정치적 삶에는 정의와 실천윤리학이 필요하다. 키케로는 우리의 삶은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의무에 대한 조언은 우리의 정치적 삶 속에서 최대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의무를 함양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바로 실천윤리학이다. --- p.121
철학 작품을 저술할 때, 키케로는 자신의 논거를 그리스 작품들에서 끌어온 다음, 그 주장을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박학다식에서 우러나온 예들로 설명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는 다른 모든 철학 학파의 관점에 대해 자유롭게 의문을 제기했고, 그 주장들을 하나씩 상호 비교했으며, 이성적으로 가장 일관되어 보이는 이론을 옹호했다. --- p.164
그는 적극적 종교 교조를 제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장 고귀한 학문 분야인 신학에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독자인 로마시민에게 맡겨놓는다. 그의 신학은 결과적으로 로마공화국의 덕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에 관한 논의는 초기 기독교 호교론자에 의해 이교도를 개종시키고 기독교의 유일신론을 옹호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p.198~199
키케로는 철학하는 즐거움은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철학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철학을 어느 정도껏 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철학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이들은 철학을 아예 부정하는 첫 번째 부류보다 오히려 못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 p.206
키케로는 다양한 철학 학파가 판치던 헬레니즘 시대에 “나 홀로 자유롭다”고 외친다(『투스쿨룸』, V. 33).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고선을 선택하는 데 우리 각자는 키케로처럼 “나 홀로 자유롭다”는 의식을 지니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 p.263
키케로는 특히 영혼의 병의 원인은 자발적인 믿음과 사회적인 규범에의 동조라고 재차 지적하면서, 오직 철학만이 영혼의 오류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철학을 배워 우리 스스로가 영혼의 의사가 될 때 정신적 행복은 물론 육체적 건강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위상인 ‘영혼의 치료사로서의 철학’을 새롭게 부각한다. --- p.300
그는 자신의 철학 세계에서 이상적 정치체제, 이상적 법률, 이상적 웅변가, 이상적 정치가, 이상적 정치교육을 꿈꾼 한편, 논리학, 자연학, 신학, 윤리학 등에서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이상적 시민이 생성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기준은 플라톤과 같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그런 유토피아적 이상이 아니라, 로마공화국에서 실현된 적이 있었거나 실현 가능성이 높았던 그런 실천적 이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로마적인 실천적 이상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교육을 이야기한다.
--- 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