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는 통상 미술을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 여기고 있다. 즉 미술 감상의 행위는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술을 “읽는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며, 마음으로 느끼는 다분히 소극성을 띠고 있다. 반면에, 그림을 ‘읽는’ 행위는 구속을 요한다. 글쓰기의 엄격한 논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기’가 정서에 토대를 두면서 감정과 상상의 자유로운 날개를 펼치는 것이라면, ‘읽기’는 지성에 토대를 두면서 절차탁마와 다듬기의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보기’와 ‘읽기’는 독립적인 해석 행위는 아니다. 색채와 이미지는 기호와 언어 행위로 발화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림의 ‘읽기’를 통해서 해석(감상)의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우선, 모딜리아니의 '자화상'과 로트렉이 그린 '고흐 초상'을 살펴보자. 모딜리아니의 '자화상'의 화면 구성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 탁자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세, 왼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놓고, 45도 각도로 화면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옆모습을 그 구도로 잡고 있다. 또한 얼굴과 앉아 있는 몸통의 비율은 1:3으로 배치하고 있다. 팔레트는 자신이 화가임을 나타내는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은유이다. 화면의 색채 구성은 상단의 좌우를 황토색으로 비율과 구성, 밝기를 거의 동일하게 배치하고, 반면 중, 하단으로 내려오면서 색채는 점차 어두워지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은 주지만 어두운 색채가 압도하고 있다. 얼굴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어두운 색에서 풍기는 인물의 정서는 다소 차분하면서도 음울하다. 그의 시선은 관조적이면서도 우수에 젖어있는 듯하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이고 포지티브한 눈빛은 아니다. 얼굴 표정에서 무기력과 소극성이 느껴지지만 다문 입술에 엷은 미소는 자칫 그러한 해석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의 자화상은 화가가 살아온 무절제한 삶의 편린들, 숱한 기행, 가난, 음주, 마약, 그러나 예술가적 감성과 고독 속에 낭만과 자유 등이 서른여섯 살로 요절한 그의 삶 속에 모두 녹아 있을 터이다.
----[그림의 숲에서 동서양을 읽다}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서구 조각의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전통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이 제작한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의 청동문의 입구에 조각되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지옥의 문'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의 구도를 보여준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서 심판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혼자 “벌거벗고 바위 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몸을 수그린 채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최후의 심판의 날, 지옥의 아비규환 속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소란과 혼란 속에 홀로 관조하듯 몽상하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사유에 잠겨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삼국시대 6-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 조각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금동일월식반가사유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접어 올리고, 왼손은 올려놓은 다리를 잡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뺨에 오른손 손가락을 기대어 놓고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미소까지 짓고 있는 이 사유상의 얼굴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지옥의 고통과 절망을 관조하는 모습이 아니라,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깨달음의 염화시중의 미소만 보일 뿐이다. 사유상의 미소는 진정 인간의 진리를 깨달은 해탈의 미소인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남 프랑스의 프로방스에 있는 산을 그린 작품이다. 그의 산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산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산을 그린 색채들이 촘촘하고 짧은 터치로 산과 바위, 나무숲과 하늘이 뚜렷한 윤곽 없이, 분리되지 않고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놓고 있다. 여기에는 대상을 구분해주는 명암과 원급법도 없다. 그는 눈을 통해 보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머리로 느끼고 마음으로 재구성된 그의 산을 창조해 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산이 다른 각도, 햇빛을 받는 정도, 그 산을 보고 느끼는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산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서울의 인왕산을 그린 작품이다. 산기슭과 중턱에 덮인 구름 사이로 드러낸 인왕산의 장엄한 모습을 강렬하고 인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수목이 울창한 숲, 검은 빛을 머금은 바위들, 계곡 사이사이 에워싸고 있는 구름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동양화의 정서를 장엄하게 그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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