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의 타이포그래피적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꾸밈≫은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모더니즘을 반영했다. ≪꾸밈≫을 통해 아직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한국형 모더니즘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듈러 그리드를 통해 서양의 합리주의적 디자인관을 수용했으며, 소통과 작업의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기능주의 타이포그래피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정체되거나 부재했다고 생각한 한글 디자인 관련 담론이 1970년대 후반에 매우 활발하고 밀도있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셋째, 1970년대 후반 고도의 경제성장과 수출 중심의 산업화는 글자 디자인 영역에도 기계화 및 과학화라는 목표를 가져왔다. 경제·사회 분야의 변화가 글자 디자인에서는 효율성과 기능성의 추구로 대치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근대화’를 향한 열정의 반영이기도 했다.
56쪽, 전가경,「잡지 《꾸밈》의 타이포그래피적 의미」에서
서예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으로 간주되는 영자팔법(永字八法)에서는 노(努), 즉 세로획이 “활시위를 힘껏 당길 때의 형세와 같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 글자에 생기를 불어넣는 하나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이 긴장감, 붓글씨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목각활자에 부여하고 싶었다. 붓글씨를 다시 나무에 새겨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듯이, 그 형태에 다시 붓의 속성을 불어넣는다면 또 다른 형태가 태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104쪽, 채희준,「청조체」에서
그동안 한글 폰트는 대부분 국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다국어 문자에 관한 조화와 조정이 우리의 시각과 문법 규칙에 익숙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한글 디자인은 국내를 넘어 다양한 문자권과 교류해야 한다. 그래서 한글 중심으로 다른 문자의 디자인을 조정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여러 문자가 하나의 글자가족으로 구성될 때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다국어 관점에서 공부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160쪽, 류양희,「윌로우」에서
궁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글자 표정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이 바탕체와 궁서체 사이, 전통과 현대 사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사이, 차가움과 따뜻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길 바라며 옛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늘의 글자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궁체, 특히 궁체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옥원듕회연≫의 글씨를 계속 따라 그리며 그 형태를 몸으로 익혔고, 그것이 자연스레 체화되어 ?새봄체?로 나타나도록 했다. 또, 어떻게 하면 궁체를 현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원전에서 글자꼴을 선택해 나갔다.
198쪽, 이새봄,「새봄체」에서
영감을 논하기에는 문자라는 대상이 갖는 선천적인 제약이 너무 많고, 참고 자료를 통한 구체적인 분석과 실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글 글자체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공간 안배’이다. 자면에만 신경 쓰다 보면 여백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글은 기하학적인 인상의 자소를 복합적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자면 형태의 특징보다는 자면 배치 과정에서 분할되는 여백에 신경 써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218쪽, 양희재·장수영,「펜바탕」에서
이들 글자체를 기획한 당시는 사회적인 혼돈과 변화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광화문은 촛불로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뉴스에서는 늘 새로운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광경은 다음의 구절에서 서술하는 1960년대와 많은 구석 닮아 있었다. “4.19혁명과 산업화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는, 민주화를 열망하며 혼돈의 시기를 보낸 동시에 산업적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시스템이 형성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재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 거울 같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실수는 되풀이되고, 우리는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현재를 통찰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며, 지금은 과거의 사유를 돌아봄으로써 현재의 사유를 성찰해야 하는 시기라 판단했다. 이를 계기로 과거의 것을 복원해, 시대를 환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작업물을 선보이고자 했다.
226쪽, 김진희,「시대의 거울」에서
트루타입이나 포스트스크립트 타입 1 같은 일반 컴퓨터 윤곽선 폰트 형식과 달리, 메타폰트는 굵기가 일정한 펜 획으로 구성된다. 메타폰트 파일은 각 글자의 내부와 외부, 바깥 형태와 카운터를 선으로 그려서 윤곽선을 규정하지 않고, 기본적인 펜 획이나 글자 뼈대만 기술한다. 어쩌면 메타폰트 글자는 특정 형태를 갖추기 전에 나타나는 유령 같은 존재로 상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글자는 확정된 좌표와 윤곽선 형태가 아니라 방정식으로 규정된다.
343쪽, 최성민,「덱스터 시니스터: 활자에 관한 메모」에서
비엔날레 속 타이포그래피들은 객관적 사실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는 기록성 이면에 내재한 몸의 자취를 주관적 관점에서 ‘해석’한 ‘기억’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각각의 기억은, 본래 문자의 세계에 정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두터운 망각의 지층 아래 갇힌 몸의 존재를 상징적, 우회적, 파편적으로 그려냈다.
390쪽, 최명환, 「지금, 여기의 타이포그래피: ?타이포잔치 2017: 몸? 전시 리뷰」에서
여성은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에 관여한다. 그러나 막이 열리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면 이들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 자리는 이들의 몫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여성의 자리는 ‘실무자’와 ‘어시스턴트’ 사이, 상반되어 보이지만 흔히 겹쳐지는 이 두 단어 사이의 비가시적인 영역에 할당된다. ?W쇼?는 이 같은 편집의 작동을 거스르려는 시도다. 편재하는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중심과 보조의 위계를 일시적으로 무효화하는 것만으로 풍경은 다르게 나타난다.
402쪽, 윤원화,「어떤 목록 읽기: ?W쇼?그래픽 디자이너 리스트? 전시 리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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