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수단시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장자가 말한 '소요유'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소풍인 줄도 모르고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풍의 의미를 잘 이해하도록 하고, 왜곡된 목적 관념을 버려라.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라. 우리는 우주의 저 어두운 한 켠에서 수천수만 년을 대기하고 있다가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별, 이곳 지구로 잠시 '소풍'을 온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우리가 바빠야 할 이유가 무엇 있겠는가!--- p.68 「소요유逍遙遊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이야기」중에서
장자에 의할 때 '물物'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 우주는 '기氣'로 가득 차 있었다. 물物이란 형체를 가진 개별적 존재이며, 기氣란 형체가 없는 우주적 존재이다. 기氣가 모이면 물物이 되고, 물物이 흩어지면 기氣가 된다. 즉, 만물은 모두 기氣로 이루어진 것이다. 요컨대, '만물일기萬物一氣'이다.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를 배후에서 이론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사상이 바로 이 '만물일기사상萬物一氣思想'이다. 나비의 꿈 이야기는 이 만물일기사상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장주와 나비는 각자 다른 형상을 가진 개물個物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 물物이라는 형상을 한꺼풀 벗기고 나면 장주와 나비는 모두 동일한 하나의 기氣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의 관점에서 볼 때 양자는 서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 p.129 「제물론齊物論편, 나비의 꿈 이야기」중에서
직관은 그대 내부에 들어 있는 빛이다. 그것은 한시도 꺼진 적이 없는 영원한 빛이며, 한순간도 그대로부터 떨어진 적이 없는 본래 밝은 빛이다. 잠시 그대가 망각했을지언정 그것은 언제나 그대 안에 있다. 지식은 남이 먹다 버린 찌꺼기이다. 지식에 의지하지 마라. 직관에 의지하라. 양생의 도를 터득했던 고금의 모든 현인들은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앎을 버리고 사물과 하나가 되었다. 지식이란 원래 사물을 쪼갬으로써 얻는 인식이다. 지식은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지식은 언제나 일방적이며 부분적이다. 요컨대 모든 지식은 하나의 의견이다. 그것은 사물의 참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의 상象을 결하고 있다. 앎을 버리고 사물과 하나가 되라. 그것이 진정으로 사물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다. --- p.169 「양생주養生主편, 발 잘린 장군이야기」중에서
[장자]는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섭렵될 수 없는 책이다. 이 점에서[장자]는 불경이나 기독교의 성경과 대비된다. [장자]를 펼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를 보더라도 어려운 말이 거의 없다. 장자는 자신의 사상을 개진하면서 철학적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는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철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불경은 그렇지 않다. 불경은 어렵고 난해하다. 거기에는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고도의 철학적 개념들이 가득하다. 후기의 대승경전들은 이와는 달리 현란한 언어로 난해한 철학적 개념들을 구사하고 있다. 대신 불경은 처음 이해하기가 어렵지 한 번 이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철학적 개념 안에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언외言外의 뜻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할 것은 없다 .--- p.201 「인간세人間世편, 자고子高 이야기」중에서
여기서 이 우화를 통해 장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것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양식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중략)... 유교가 내세운 인간에 대한 이런 기준들은 깊이 음미해볼수록 천박하며 속물적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인간을 인간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구화하는 것이다.--- p.222 「덕충부德充符편, 신도가申徒嘉 이야기」중에서
이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어떤 사물에도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천지간의 모든 만물은 지금 하나의 형상을 하고 서 있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고유한 실체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일체의 만물은 모두 이 우주로부터 여러 가지 물질을 잠시 빌려와서 한시적으로 하나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때가 되면 우리는 주인한테 그 물질들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것을 장자는 '가어이물 탁어동체假於異物 託於同?'라고 부르고 있다. 여러 가지 물질異物을 잠시 빌려 하나의 몸체同?를 이루어 거기에 가탁假託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른바 '가탁假託의 철학'이다.--- p.252 「대종사大宗師편, 방외지사方外之士 이야기」중에서
혼돈칠규란 결국 '주객양분主客兩分'을 말하며, 타성일편이란 '주객합일主客合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객양분이면 물아物我가 상충하여 도처에서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며, 주객합일이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그 자리에서 바로 천국을 느끼게 될 것이다.
--- p.285 「응제왕應帝王편, 혼돈칠규混沌七竅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