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신 작가의 장점을 고농축 상태로 즐긴다
한심함을 작품에 제대로 그려내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드물다. 거리를 약간만 잘못 조절하면 손쉽게 단순화한 조롱 또는 자학이 되거나, 반대로 어설픈 정당화와 동정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사에 정말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어떨까. 자신의 선택과 남들이 내린 선택의 연결, 필연과 우연이 대충 섞인 세상의 흐름 속에서, 한심함은 마냥 아름다울 수도 마냥 추할 수도 없는 현실의 입체적 단면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작품들은 엮여 들어가는 세상사와 각자의 한심함에 대해, 다양한 정서적 방향과 표현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출세에 눈 먼 속물 지식인이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속물 세상 속에서 일이 잘못 엮여 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빅맨」은 블랙코미디다. 생계를 목표로 길 위에서 즉석 만화 인형을 만들고 주문 만화를 그렸던 실패 경험을 희망적 에세이 풍으로 풀어낸 「길상」도 있다. 무력감 속에서 허망하게 육욕을 갈구했다가 조직적 괴롭힘 속에 파멸하는 해병 이야기를 종교 모티브의 실험적 형식으로 풀어낸 「욕계」 또한 독특한 암울함을 전한다. 가차 없는 풍자, 세심한 사연, 실험적 연출 모든 것이 합쳐지며, 다양한 각자의 방식으로 진상을 부리는 ‘개저씨’들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역작 「연결과 흐름」이 대미를 장식한다. 어떤 한심함은 나름 잘해보려고 했는데 비틀어진 욕망의 민폐가 되고, 어떤 한심함은 시원찮아도 자신의 생활은 꾸려나가는 생활력이 된다. 공장 노동의 현장, 중년 아주머니들이 챙기는 자신들의 삶, 심지어 반려견과의 성장담을 그려낼 때에도 늘 입체적 한심함을 직면해온 마영신 작가의 모든 장점을, 고농축 상태로 즐겨볼 차례다.
- 김낙호 (만화연구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함께 흐르고 있다
단편 「빅맨」은 코가 큰 중년의 시간강사가 “극사실주의”라고 칠판에 적고는 “요즘 화가들이 추상화쪽으로 많이들 가는데 사실 그건 뎃생 실력이 안 되는 애들이 자기 작품이 예술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거거든”하고 덧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편협한 주관을 학생들에게 내어 보이는 강사가 가진 삶의 태도야 뻔한 것이어서, 그는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교수들과 친분을 쌓고, 그 과정에서 호감이나 권위를 이용해 주변의 여성을 건드리고, 욕망을 핑계 삼아 작품을 완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영신은 그처럼 욕망에 충실한 주인공들을 마치 극사실주의로 뎃생해나가는 듯하다. 별로 정의롭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개인들이 그의 작품 여기저기에서 ‘발버둥’친다.
아마도 자기 자신이거나 주변의 웹툰 작가 중 한 사람일 듯한 「길상」의 ‘답십리 작가’도 그 중 하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캐릭터를 만들어 팔고 신발도 팔고 종로에서 노인들에게 만화도 그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미대 교수라고 하는 코가 큰 중년 남자에게 모욕을 당하고는 만화가 생활을 접기로 결심한다. 누구나 그런 일을 겪지만 그간 그려온 원화를 들고 나와 거리의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버팀도 임계에 다다른 듯하다. 마지막 원화를 나누어 주고 일어나던 그는 누군가가 답례로 가져 온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온기가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작업만이 너를 증명할 수 있다.”고 적고,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그림을 그린다. 커피 한 모금이 가져다준 힘, 어쩌면 인간을 일어서게 하는 것은 언제나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그런 작은 핑계인지도 모른다. 마영신의 단편집 『연결과 흐름』은 당장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예술이나 작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그런 작가나 작품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모두가 평범한 개인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과 함께 흐르고 있다는 동시성을 느끼고 나면, 마영신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곁에 남는다. 그 세상은 커피 한 모금으로도 연결되고 흘러간다. 그의 다음 작품에서 나와 당신은 어떻게 그려지게 될까, 나는 그의 궤적을 계속 쫓아가 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당신도 그렇게 될 것이다.
-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