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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의 연인들

가고시마의 연인들

박수진 | 다향 | 2018년 03월 2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1 리뷰 29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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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608쪽 | 140*210*35mm
ISBN13 9791131589090
ISBN10 113158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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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질듯 반짝이는 별들이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어서 이 자리에서 빠져나오라고. 그녀가 몸을 돌려 이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안녕, 여왕님. 내가 좀 늦었지?”
시노하라 류우지였다. 그는 올 블랙 슈트로 완벽하게 차려입고,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눈부시도록 하얀 셔츠 위에 광택이 도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흐트러뜨린 숱 많은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긴 신사다운 모습이었다.
시노하라는 사토 치즈코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세나를 데리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켄지의 시선이 집요하게 두 사람을 따라왔다.
“시노하라. 너도 이 파티에 초대받은 거야?”
“유감스럽게도 초대를 받았지. 그런데 여왕님은 항상 의외의 자리에 나타나네.”
그는 밝은 조명 아래서 그녀를 찬찬히 훑어봤다. 파티장의 조명을 받고 있는 그녀의 섬세한 어깨 라인과 가슴부터 촘촘히 박혀 있는 스팽글 비즈가 눈이 부시게 빛났다. 허리부터 골반까지 드라마틱하게 라인이 내려오는 연분홍색 머메이드 스타일의 실크 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아찔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다. 우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서는 산호 장식이 달린 머리핀이 반짝였다. 사랑스러운 실크 드레스를 입고 완벽한 메이크업을 한 그녀의 모습은 이 파티장 안의 모든 여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왕님, 오늘은 정말 남자들을 매혹시키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 같은데?”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도 무척이나 어색하니까.”
“며칠 동안 못 본 사이 너무 달라져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
“그러게. 못 알아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발이 아파서 어디 앉아야 할 것 같아.”
시노하라는 사람이 별로 없는 테이블로 그녀를 이끌었다. 세나는 간신히 의자를 빼고 기운 없이 주저앉았다. 몸이 편해지자 켄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던졌던 차가운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했던 켄지의 말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그녀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양주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작은 양주잔에 연갈색 액체를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시노하라가 그 모습을 서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독한 액체가 식도를 태울 듯 맹렬한 자극을 남기며 그녀의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빈속에 마신 독한 술이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세나는 망설이지 않고 한 잔을 더 따랐다. 역시나 한 번에 삼켜 버렸다. 시노하라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뚫어질 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게 누구신가. 시노하라 류우지.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 보는 이름이야.”
마쓰자카 료스케가 자신의 술잔을 들고 합석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순간 불꽃이 일었다. 시노하라는 팔짱을 낀 자세로 그를 노려봤다.
“이 숙녀분은 사토의 파트너였던 것 같은데?”
“마쓰자카, 그냥 조용히 사라져라.”
“시노하라, 얼굴 좋아 보인다. 그런데 내가 한 말 벌써 잊었어? 넌 절대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는 말.”
“입 다물어.”
“히로미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세나는 테이블 밑으로 불끈 쥔 시노하라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남자는 당장이라도 주먹질을 할 것처럼 긴장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술잔에 이번에는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싸움의 승자를 위하여, 건배!”
그녀는 술잔을 들고 두 남자를 차례로 바라본 후 망설임 없이 잔을 비웠다.
‘세 잔째.’
시노하라는 그녀가 마신 술잔을 속으로 세고 있었다. 마쓰자카 료스케는 그녀가 잠시 해제시킨 긴장 상태가 머쓱했는지 말없이 자신의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세나는 다시 자기 잔에 가득 술을 따랐다. 시노하라가 그녀를 말리려는 순간 사토 켄지가 다가왔다.
“은세나, 지금 뭐 하는 거야?”
사토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뭘 하긴. 술을 마시고 있지. 파티에 왔으니까.”
그는 시노하라와 마쓰자카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참으로 못마땅한 조합이었다.
“너 많이 마신 것 같다. 그만 마셔.”
사토가 그녀의 술잔을 빼앗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나는 오늘 술을 마셔야겠어. 그러니까 말리지 마.”
세나는 사토 앞에 놓인 자신의 잔을 도로 가져와서 그대로 털어 넣었다. 사토, 시노하라, 마쓰자카의 눈빛이 동시에 번득였다.
‘네 잔째.’
시노하라는 다시 속으로 그녀가 마신 술잔을 셌다.
“너 무슨 일 있어? 왜 그러는 거야?”
사토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
세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그냥 매우 특별한 날이야.”
취기가 오른 세나와 세 남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파티에 모인 아가씨들은 질투 어린 눈빛으로 이들의 테이블을 주목하고 있었다. 시노하라 전자의 후계자 시노하라 류우지, 사토 코이치 의원의 아들 사토 켄지, 도쿄 중앙병원 원장의 아들 마쓰자카 료스케가 다 같이 모여 한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이 기묘한 광경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경대, 게이오대의 별들이 모두 참석한 사쿠라지마의 여름밤 파티는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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