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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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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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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656쪽 | 722g | 140*188*35mm
ISBN13 9788959795550
ISBN10 895979555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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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내가 고양이가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고양이든 아니든 이런 판국에 뭘 따지겠는가, 어쨌든 떡이라는 마물이 떨어질 때까지 해봐야겠다는 일념으로 허둥지둥 온 얼굴을 할퀴듯 휘저어본다. 앞발의 움직임이 너무 심하다 보니 자꾸만 중심을 잃고 뒤뚱거린다. 뒤뚱거릴 때마다 뒷발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 되니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아 부엌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그 와중에도 내가 이렇게 잘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세 번째 진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평소에 능히 해낼 수 없던 일도 해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하늘이 돕는다고 한다.’
다행히 하늘의 도움을 얻은 내가 열심히 떡 마물과 싸우고 있는 동안 발소리가 나고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은 낌새가 있다. 이 대목에 사람이 와버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더 안간힘을 다해 부엌을 뛰어다닌다. 발소리는 점점 커진다. 아아, 유감스럽게도 하늘의 도움이 부족하다. 결국 아이들에게 들켜버렸다.

나는 얌전하게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듣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엾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는 자들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억지로 입을 놀려서 이상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웃거나 재미있지도 않은 것을 재미있다고 하는 것밖에 별달리 재주도 없는 족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인이 고집 세고 편협한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말수가 적어서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조금은 두렵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방금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갑자기 경멸하고 싶어졌다.
그는 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을 수 없을까. 지지않으려고 오기를 부려서 쓸데없는 말을 떠벌리면 무슨 득이 된다고. 에픽테토스가 그런 짓을 하라고 써놓았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주인도 칸게츠도 메이테이도 태평한 족속들이고 그들은 수세미꽃처럼 바람에 흩날려 초연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은 역시 세속의 명예와 이익도 챙기고 욕심도 챙긴다. 경쟁심, 이기자는 마음은 그들의 일상 담소 중에도 언뜻언뜻 드러나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면 그들이 평소 매도하고 있는 속물들과 한 통속의 동물이 되는 것은 고양이 눈으로 보면 딱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그 언동이 보통의 그렇고 그런 자들처럼 판에 박힌 구석은 띠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막상 다행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세 사람의 담화가 재미없어졌으므로 삼색털 미케 얼굴이라도 보러 가봐야겠다 하고 고토 선생네 뜰 입구로 돌아간다.

“그야 거짓말이었지요. 저한테 남작 숙부가 있으면 지금쯤 국장 정도는 되었겠지요.”
하고 태평스럽게 말한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주인은 신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 표정을 짓는다.
“어머 어쩜, 진지한 표정으로 잘도 그런 거짓말을 갖다 붙이시네요. 선생님도 어지간히 허풍이 뛰어나시네요.”
안주인은 매우 감탄하는 기색이다.
“저보다 그 여자 쪽이 한수 위던데요.”
“선생님도 만만치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부인, 저의 허풍은 단순한 허풍에 불과합니다. 그 여자의 것은 죄다 속셈이 있고 꿍꿍이가 있는 거짓말이지요. 아주 고약해요. 원숭이의 잔머리에서 갈라져 나온 술수와, 타고난 웃기는 취미를 혼동하시면, 코미디의 신도 안목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이르니까요.”
주인은 눈을 내리깔고 “어떨까.” 하고 말한다.
안주인은 웃으면서 “마찬가지지요.”라고 말한다.

주인이 백년해로를 약속한 부인의 정수리 한가운데에는 동그랗고 커다랗게 머리가 빠져 있었다. 거기다 그 빠진 자리가 따뜻한 햇볕을 반사하며 때를 만난 듯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뜻하지 않은 대목에서 이런 이상한 대발견을 해냈을 때의 주인의 눈은 눈부심 속에 충분히 놀라움을 나타내며 선명한 광선으로 자신의 동공이 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쳐다보고 있다.
주인이 이 대머리를 봤을 때, 처음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불단에 몇 세기 동안이나 장식되어 있던 등불접시이다. 그의 일가는 진종으로, 진종에서는 불단에 신분에 걸맞지 않는 돈을 들이는 것이 관습이다. 주인은 어릴 때 그 집의 창고 안에 어두컴컴하게 장식되어 있던 금박이 두껍게 칠해진 불상을 넣는 장이 있고 그 장 안에는 언제나 신주(놋쇠)로 된 등불접시가 매달려 있고, 그 등불접시에는 낮에도 희미한 불이 켜져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주위가 어두운 가운데 이 등불접시가 비교적 명료하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어린 마음에 이 등을 몇 번이고 봤던 인상이 불현듯 안주인의 대머리에서 떠올라 튀어나온 것일 게다.
등불접시는 1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관음상의 비둘기가 떠오른다. 관음상의 비둘기와 안주인의 대머리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것 같지만, 주인의 머리에서는 둘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아사쿠사에 가면 반드시 비둘기에게 모이를 사주었다. 모이는 한 접시에 분큐전(에도막부 때 분큐 연간에 만든 동전 화폐) 두 개로 붉은 토기에 들어 있었다. 그 토기가 색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이 대머리와 아주 닮은 것이다.
“과연 닮았는걸.”
주인이 사뭇 감탄한 듯이 말하자 안주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뭐가요?”
“아니, 당신 머리에 커다란 대머리 자국이 있구만. 알고 있어?”
“예.”
안주인은 의연하게 일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한다. 별반 두려운 기색도 없다. 초연한 모범부인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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