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런 바닥 얕은 탁류 같은 나날들을 써내려간 것이다.
나는 이렇다 할 취미도 관심도 꿈도 야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미녀와 야구 정도밖에 없다.
미녀와 야구를 보고 있으면 즐겁다. 미녀와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즐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야구선수가 되어 미인 아내를 얻는 것이 내게는 최고의 행복?
아니, 아마 그건 그것대로 따분한 일이 아닐까. 아니, 아니, 따분할 리가 없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각성하지 못한 탁류의 뇌(腦)로 날마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저자 서문」에서
서브컬처의 자리에서 온몸으로 밑바닥을 훑으면서, 혹은 온몸으로 밑바닥을 훑었기 때문에, 스스로 망가지고 욕을 먹으면서도, 타고난 감이라고 할까 재능과 노력으로 어느 덧 문화를 선도해버리는 인물을, 그런 문화 야인의 기질(氣質)을, 보았다. 인간의 밑바닥에 뜨끈하게 흐르는 정이나 긍정, 의리 같은 것과 함께.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나는 흔들렸고 좀더 열렸고 또한 너그럽게 풀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명랑해졌다.
그의 소설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성서(聖書)’라고 어느 비평가가 심히 뻥을 치더니만, 음, 이거, 이거, 대단한 책일 수. 있다. ---「역자 후기」에서
인간 존재는 소소한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 사회의 나사못 따위는 결코 되지 않겠노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어른이 된 뒤에 돌아보면 완전 나사못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소한 나사못이라도 좋다. 문제는 그 가치다. 이를테면 지구에 구멍이 나고 거기서 철철철 독액이 흘러나와 자그마한 나사못이 된 내가 거기에 끼워져 지구의 위기를 밤낮으로 구원하고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말할 것이다.
“아, 릴리 군, 수고가 많네. 자네 덕분에 우리 지구는 살아났어. 자, 그럼 수고해!!”
이건 위대한 업적이다. 하지만 나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요는 개인의 존재 가치다. 일의 크고 작음이 아니다.---pp.32~33
항상 생각하는 일인데,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순수하게 뭔가에 열중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흔히 눈에 띄는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의 대부분은 열심히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속한 야심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런 걸 본인은 ‘순수하게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이라고 착각하고 눈을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에는 그게 자꾸만 미친놈으로 보인다.
가로등에 몰려드는 나방처럼 그저 빛이 잘 드는 좋은 자리를 동경할 뿐이어서, 만일 거기서 홀랑 타버려도 그걸 도전이랍시고 당당히 가슴을 내민다.
하지만 본질 부분을 향해 날아갈 용기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갖고 있지 않은 건 그나마 괜찮은 편이고, 그게 아예 보이지도 않는 나방이 대부분이다.---pp.71~72
항상 평화의 사상에 젖어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이 계절에는 죽어도 괜찮을 사람이 자꾸 불어난다. 시시껄렁한 박애보다, 소중한 사람들만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 죽어도 괜찮을 쪽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p.74
허거걱!! 50센티의 화장지로 닦은 뒤, 다시 접고, 그리고 그걸 또 접어서 쓴다고!! 처음 한 번 접어 쓰는 건 괜찮다고 해도 두 번째로 또 접으면 그건 거의 정사각형이 아닌가.
닦는다기보다 오히려 찍는 거다. 너무 위험하잖아!! 그건 그냥 똥을 뭉친 공으로 항문을 찍어 누르는 것일 뿐이다. 항문에 주사위를 감추고 입소하는 도박꾼도 아니고, 그게 뭔가.
“뭘 어떻다고 그래!! 기껏 화장지 하나 가지고!!”
“안 돼!! 아깝잖아!!”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멸한다.’ ?아서 코난 도일(1859-1930. 영국 작가)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은 푸른 숲을 마구잡이로 채벌하는 종이 마귀를 만났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p.95
“나, 혹시 암이면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해줘.”
“응, 암이래.”
“이그, 그걸 그렇게 쪼르르 말하면 안 되지!!”
“엄마가 말하랬잖아!!”
몇 년 전, 릴리 마망키(엄마)가 병이 났다. 갑상선 암이었다. 곧바로 규슈 대학병원에서 수술에 들어가 갑상선을 모두 떼어냈다. 그뒤 이모에게서 “네 엄마가 죽기 전에 하와이에 한 번 가고 싶다더라”라는 얘기를 듣고, 엄마와 이모들과 함께 저승길 선물 투어에 나섰다. 와이키키에서 활활 타오른 엄마는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이모가 다리가 부러졌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이모를 등에 업고 일본에 돌아왔다.---p.126
그날 밤, 진기한 광경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편의점에서 야한 잡지를 선 채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거기에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아버지와 엄마가 둘이 나란히 들어왔다. 바구니를 엄마가 들고 둘이 편의점 안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에로 잡지로 얼굴을 가리고서 뭘 사는가 하고 훔쳐보았다. 보리차와 전병을 사고 있었다. 몇 번밖에는 본 적이 없는, 부부다운 모습이었다. 엄마는 암에 걸린 주제에 무척 즐거워 보였다.---p.130
“나, 남자하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본 거,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게 하필 나여서 미안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뚱보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p.159
“오늘, 여학생들이 응원하러 우르르 몰려올 거야. 긴장하자!!”
투수가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한 번 모자를 벗고 검정 포마드를 처발랐다. 하지만 막상 시합이 시작되고 보니 ?떻게 된 영문인지 후반까지 1대 1의 꽤 괜찮은 시합을 하고 있었다. 우리 쪽의 1점은 내가 안타로 출루했을 때, 캡틴이 도루로 따낸 점수였다.
종반. 혹시 이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슬슬 퍼지면서 전원이 긴장해서 글러브를 자근자근 씹기 시작했다. 최종회. 동점인 채로 원아웃 1, 3루. 상대 팀의 마지막 찬스였다. 우리는 마운드에 모였다.---p.163
좋아, 그렇다면 이건 절대 없을 것이다! 똥!! 진부한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약간 다르다. 빵과자에 똥을 넣는 것 정도로는 이런 컬트한 시대에 아무도 놀라지 않아! 똥에 빵과자를 넣는 거야!! 어때요, 여러분!?
하지만 그래서는 그냥 똥이잖아…….---pp.211~212
그리고 항문을 벅벅 긁어댄 뒤의 그 충족감, 만족감, 해방감, 그리고 탈력감. 이만큼 달성감이 있는 충동도 딱히 다른 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며칠 전,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앞에 서있던 반바지 차림의 초등학생이 느닷없이 항문을 긁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녀석들이라서 대중의 면전에서도 이걸 한다. ‘항문의 가려움’에는 유난히 민감한 나는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녀석은 가려움증이 절정에 달했는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신호를 한 차례 넘겨버렸다. 덕분에 나도 함께 신호를 한 차례 넘겼다. 견딜 수 없어서 항문을 쥐어뜯는 초등학생과 그것을 응시하는 나이스 중년 사내. 이건 뭔 그림이지?
다 긁고 난 뒤에 반바지가 항문에 찰싹 먹힌 채로 걸어가시네. 역시 초등학생은 바보야. 나도 모르게 즐거운 기분.---pp.221~222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S라는 아이돌이 라이브 공연을 한다고 해서 소속사에 문의 전화를 했더니 “아이, 진짜, 이런 중딩들이!!”라고 명백하게 연하의 언니께서 느닷없이 내게 ‘중딩’이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그리고 어느 CD 판매회에서는 회장에 있던 레코드 회사의 프로모터가 자사의 CD를 구입해주는 사람들에 대해 “진짜 오타쿠들이라니, 재수없네……”라고 내뱉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는 말을 하자면 지겨울 만큼 많다. 아무튼 그자들은 중딩이나 어딘가 모자란 인간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밖에도 아이돌을 둘러싼 출판사, 방송국, 그리고 아이돌 본인조차도 팬에 대해 모욕적인 시선과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대체 누가 댁들을 먹여 살리는데!? 아니, 그런 말을 하기 이전부터 그쪽 업계의 장사 구조와 상도덕은 썩어 있었다. 실생활에서도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은근한 박해를 받고, 그것을 제공하는 자들에게서도 그런 취급을 받다니.
---pp.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