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미크는 수수께끼를 풀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부모님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은 이 싸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나. 모미크는 빨치산처럼 싸우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그래야 그들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안심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방법을 찾았다. 사실 위험한 방법이지만 모미크는 두렵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긴 한데 다른 방법이 없다.
(…) 어떻게 보면 ‘짐승’을 찾아내서 길들이고, 착하게 만들고, 마음을 고쳐먹게 하고, 사람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만들고, ‘저 멀리’에서 있었던 일과 녀석이 사람들한테 한 짓을 털어놓도록 설득하기로 결심한 것이 바로 그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모미크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지도 한 달, 안셸 할아버지가 온 날로부터 꼬박 한 달이 됐다. 모미크는 아무도 모르게, 집 밑에 딸린 작고 컴컴한 지하실에서 나치 짐승을 키우고 있다. ---「모미크」중에서
그리고 그때 모미크는 냄새나고 시커멓고 우스꽝스러운 무닌이 강한 바람을 타고 하늘을 향해 대각선으로, 어떻게 보면 불 수레를 탄 예언자 엘리야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 순간, 그가 ‘절대로 영원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 순간에, 모미크는 마침내 깨달았다. 무닌이 실은 라메드바브(삼십육 인의 의인) 같은 일종의 숨겨진 마술사였다는 사실을. 한나 제이트린이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마녀고, 안셸 할아버지가 지나간 일을 이야기해 주는 역(逆)예언자인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막스와 모리츠나 마르쿠스 씨도 비밀 임무를 맡고 있고, 우연히 여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모미크를 돕기 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위해 싸우기 전, 나치 짐승을 키우기 전에는 그들이 모미크의 눈에 띈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미크」중에서
그때 갑자기 그가 팔딱이고 버둥대면서 자신의 가는 몸을 쭉 늘려서 실체화되더니 엄청난 힘에 의해 뒤로 끌어당겨져서 휙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갔습니다. “브루노!” 나는 외쳤습니다. “잠깐 기다려!” 그가 얼어붙었습니다. 세상도 숨을 멈췄습니다. 바다는 강철빛 푸른색으로 변했죠. “브루노.” 나는 겸허하게 불렀습니다. “이런 순간에 널 붙든 나를 용서해. 하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혹시 안셸 바세르만이 나이겔이라는 독일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아니?”
브루노는 한쪽 아가미를 회전시키면서 두 눈을 감고 집중했습니다. “그건 정말 멋진 이야기죠. 암, 그렇고말고요.” 그의 이상한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다만 거기엔…… 하! 빌어먹을! 잊어버렸네요!” 그러고는 갑자기 다시 생각난 것처럼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건 그의 이야기의 정수였어요, 슐로마. 매번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내야 해요!”
“평생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도 기억할 수가 있어?”
“물론이죠. 사람이 자기 이름을, 운명을,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나의 슐로마,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브루노」중에서
다음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단둘이 아니었다. 공기가 부들부들 떨렸고 내 손이 별개의 생명체처럼 떨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들이 당겼다 밀었다를 반복했다. 나는 놀라서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뭔가를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손은 멈추지 않고 더듬었다. 그것이 허공을 찌르자 공기가 일정한 패턴으로 손가락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손이 공기를 약삭빠르고 고집스럽게 돌리고 휘젓자 되직한 물질이 만들어졌다. 갑자기 내 손끝에 물기가 생겼다. 내가 무(無)에서 이야기를, 감각과 말과 납작한 이미지와 배아 같은 생명체를 끄집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축축한 그 생명체들은 영양을 공급하는 기억의 태반 찌꺼기가 묻은 채 빛 속에서 깜빡이며 휘청이는 다리로 일어서려고 생후 1일 된 사슴처럼 비틀거리다가 마침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내 앞에 설 정도로 강해졌다. 안셸 할아버지의 정신에서 태어난 이 생명체들은 내가 그토록 열심히 읽고, 찾아 헤매고, 열렬하게 느꼈던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바세르만」중에서
“어떤 결정도 영원히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헤어 나이겔. 그리고 당신이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렇다고 암시하려는 듯한데) 매일매일, 매번 수용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죽일 때마다 당신의 결정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소장님, 당신은 새로운 말로 당신의 결정을 새로이 빚어야 합니다. 당신의 첫 소원,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정수가 그 말 속에서 울려 퍼지는지 안 퍼지는지 듣기 위해서 말이죠.” 이에 대해 나이겔이 대답했다.
바세르만. 나는 그 말이 조금도 두렵지 않으니까. 사실 마음에 들어. 그래서 네 하찮은 아이디어를 채택할 생각이야.” 바세르만: “매일매일입니다, 헤어 나이겔. 당신이 총을 쏴서 새로운 인간을 파멸시킬 때마다 매번요. 포로 스물다섯 명을 죽일 때는 스물다섯 번 해야 한단 말이에요. 결정 다음에 또 결정. 견디실 수 있겠어요? 스스로 약속하실 수 있겠느냐고요, 헤어 나이겔.”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중에서
ZMAN [즈만] 시간
지적 존재의 기본적인 자료. 그것의 최우위성과 막연함 때문에 모호하지 않은 정의는 허용하지 않는다. 현상의 박자와 지속을 의미한다.
1. 카지크의 시간
프리에트는 카지크가 도착한 날 저녁에 하얀 나비가 아기의 얼굴 위를 파닥이며 지나갔던 21시 00분부터 카지크의 시간을 계산했다. 남성의 평균 수명인 칠십이 년을 참고준거로 사용하여 카지크의 삶에서 한순간이 지날 때마다 보통 인간의 삶에서 십팔 일이 지나간 것으로 셈했다. 그 결과 카지크의 삶에서 일 초는 프리에트의 여덟 시간, 일 분 사십 초는 한 달과 같았다. 십 분이 경과하면 카지크에게는 육 개월이 흐른 것이며, 한 시간은 만 삼 년에 해당했다. 프리에트는 경악했다.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일은 그날 밤 그가 카지크의 시간의 질주를 멈추기 위해서 했던 두 번의 미친 시도일 것이다. 우선 그는 모든 불을 끄고(마르쿠스: “그가 멍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절박했기 때문에”) 시간의 폭압이 어둠 속에서는 약해지길 바랐다. 두 번째로는 새벽 직전, 즉 카지크가 약 스물한 살이었을 때, 물이 노화 과정을 늦출까 하는 헛된 희망으로 그를 다시 차가운 욕조 안에 담갔다.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