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내가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의 이야기. 나는 오래전부터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이미지를 모두 소유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추상적인 표현주의나 드리핑의 스타 예술가들을 가소롭게 생각했다. 나는 바보 같은 광고, 상품 로고, 간판, 네온을 좋아했다. 대량 소비를 상징하는 이미지, 만화, 잡지, 정형화된 할리우드 스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그널을 좋아했다.
노동은 기도다.
‘노동은 기도다.’ 앤디 워홀이 1947~1949년에 수학한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 표어. --- 「오프닝」 중에서
초상화가 워홀이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을 요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그가 독실한 동방 가톨릭교회의 신자(따라서 교황제 예찬자)였기 때문일까? 물론이다. 워홀은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교황의 과장된 유명세가 교황이 갖는 유일성 때문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파피즘Popism'에서 그 사실을 익살스럽게 인정했다. --- 「포프 스타」 중에서
워홀은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백화점은 미술관이 될 것이고 미술관은 백화점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오늘날 적중했다. 쿨하스(프라다), 피아노(에르메스), 포잠박(LVMH), 게리(이세이 미야케)와 같은 거장들의 협력으로 설계된 매장은 미술관처럼 엄숙하게 관람하는 명소가 되었고, 미술관은 더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전시회를 열어 방문객들이 매장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배회할 수 있게 되었다.아트 마켓이나 비엔날레의 개막식 행사를 패션쇼가 빛내고, --- 「‘그라운드 제로’에서 ‘제로’까지 ’」 중에서
한쪽에서는 진지한 청교도 정신, 인문주의적 네오가테키즘이 버티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본에 대한 이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맞서고 있다. 사기꾼의 정체를 드디어 밝혀냈다고 기뻐하는 첫 번째 사람들은 늘 질서, 의미,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시니컬한(하지만 더 정직하다) 두 번째 사람들은 돈, 돈, 돈, 돈만 생각한다. 게다가 시장도 당찮게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1960년대에 워홀은 「꽃Flowers」이란 작품을 울트라 바이올렛에게 1,000달러를 받고 팔았다. 1979년 고든 로클리Gordon Lockley는 그 작품을 4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반 카프Yvan Karp가 12만 5,000달러를 불렀다. 1980년 워홀은 작품의 가격을 20만 달러로 추정했다. 현재 이 작품의 가격은 100만 달러를 상회한다. --- 「앤디 워홀 주식회사」 중에서
“난 아무것도 없는 무덤을 늘 상상하곤 했다. 비문도, 이름도 없는 무덤. 그 위에 ‘상품’이라고 써줬으면 좋겠다.”
앤디 워홀, 「아메리카」, 1985년 --- 「앤디 워홀 주식회사」 중에서
“나는 우정을 믿지 않는다. 다만 누릴 뿐이다”라고 했던 프루스트처럼 워홀도 친구들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이 신경증, 괴벽, 퇴폐 기질, 억압에서 벗어난 개인의 찬란한 조형성을 노출시키도록 내버려두었다. 팩토리에서는 모든 것이 능동적이었다. 모든 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이어지는 낮과 밤은 그야말로 구분할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것은 삶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상호 침투하는 예술과 같았다. 불투명한 ‘실크스크린’, 백지, 공테이프, 공필름 등 채워야 할 화면과 같은 최적의 장소였던 팩토리는 무형ㆍ다형ㆍ인물 워홀에게는 유일하고 독특한 경험의 장이었다. ‘가능성’ 자체를 무한히 실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팩토리와 거기에서 파생된 ‘사업’의 단골들이 지껄이는 날선 객설 너머에 본질적인 침묵의 소리를 듣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실험은 워홀에게 중국인이 말하는 '무' 즉, 텅 빔과 같았다. “나는 우리가 여기 팩토리에서 텅 빈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건 참 멋진 일이다. 나는 여기서 이 빈 공간이 되는 게 좋다. 혼자서 일할 수 있으니까.” --- 「팩토리」 중에서
누구나 조명을 받고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을 ‘이름을 알리다’라고 한다. 텔레비전의 발명과 성공의 바탕에는 오늘날 보편화한 자기애의 욕망이 깔려 있고, 현대 사회는 그 욕망을 일반화한 주관화 과정, 즉 유명인이 되기로 내면화했다. ‘유명인’은 미디어가 어둠 속에서 끌어내 사람들 눈에 보이게 만든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시성은 보통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또 보이는 것(즉 팔리는 것)만 존재한다고 간주되며, 팔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보여야 한다. 즉 ‘홍보’되어야 한다. --- 「인터뷰/쇼 비지니스/텔레비전」 중에서
워홀의 소심함은 전설적이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눈으로 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쇼 전문가들(스타, 유명 인사, 아이돌, 아이콘이 주관하는)이 파티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쇼는 쇼인데 매번 똑같고 비앙카, 할스턴, 리자, 룰루, 다이앤, 트루먼 등 늘 변하지 않는 인물들이 주관했다. 이 또한 워홀에게는 흥미로웠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워홀은 몽유병 같은 반복 속에서 단조로움과 지겨움을 통해 경험의 심오함에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란 다름 아닌 현상계의 진리에 대한 경험이었다. --- 「파티보이」 중에서
거절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지나친 육체 억압으로 인해 성적인 면에 그리 재능이 없었던(워홀은 다른 사람이 몸을 만지는 걸 질색했다) 워홀은 초감수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섹스나 감정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섹스는 ‘아무것도’ 아니고 감정은 무언가를 걸기에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워홀이 ‘사랑’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로 혼동해서 사용했던 섹스와 감정은 행동이 부재한 ‘텅 빈’ 제물을 바치는 형식, 몽환적인 되새김, 부재에 대한 상상, 결국 ‘승화’를 통해 그의 정신을 강하게 지배했다. --- 「섹스머신 사절」 중에서
워홀에게는 추론하는 이성에서 우러나온 사고는 하나도 없다. 늘 전광석화와 같은 본능, 무류ㆍ본능(번쩍이는 번갯불의 즉시성)뿐이다. 그가 가진 지식도 정신의 것이 아니라 본능인 것이다. 수용하고 유연하며 순발력을 막을 수 있는 편견, 선호 혹은 욕망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약했기 때문에 강했고, 유연했기 때문에 강직했던 워홀은 자아를 상실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했고 포기함으로써 얻을 것을 얻었다. “욕심을 거두는 순간 바라던 것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원리가 절대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러나 “정신이 홀로된 날, 나는 사람들이 내 후세라고 부르는 것을 얻었다”고도 했다. --- 「도」 중에서
워홀에게는 평범한 민주주의의 산물로 통하는 게 언제나 유리했지만 그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고도 예리했다. 그가 차지하게 된 상징 위치가 갖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차원이 바로 그 증거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는데, 그가 잘 요리할 수 있었던 요인들이 최근 굳어졌기 때문이다. 워홀이 그런 차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해피엔딩의 동화와 같은 그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예술로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교묘하고 능란하게 조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바로 그런 동화, 즉 ‘미국식 생활 방식’과 돈을 꿈꾸지 않은가. 1977년에 아메리칸 드림을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워홀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돈은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고 대답했다. 옳소! --- 「달러트」 중에서
‘유명인의 죽음’과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없다. 사고를 다루는 미디어에 의해 무명씨가 잠깐 유명세를 탈 수 있고, 유명인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홀은 죽은 이들의 이미지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인류를 지배하는 죽음 앞에 누구나 평등함을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증가하는 반복적 죽음은 언제나 비극적이고, 평범해지며, 무관심과 익숙해진 공포, 진부해진 ‘운명하셨습니다’의 표현 속에 계속 쌓여만 간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끔찍한 이미지라도 보고 또 보면 감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재앙'연작이 단색 패널에 부착되면 부인할 수 없는 죽음이 갖는 무효, 부재, 허무의 특성을 더욱 강화한다. 워홀의 예술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이 번호로 전락한 모든 육체, 모든 장소,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만드는 형이상학적 체제를 보게(다시 말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중요한 사람도 없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어지는 게 아닐까.
--- 「죽음은 재앙이 아니다」 중에서